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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2/13
    이문옥 전 감사관 "내부고발 법적보호 강화해야"
    자작나무숲
  2. 2006/02/13
    공익제보자는 왕따?
    자작나무숲

이문옥 전 감사관 "내부고발 법적보호 강화해야"

“공익제보자는 배신자 소리가 아니라 의무이행자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문옥 전 감사관.
시민의신문 
이문옥 전 감사관.

1990년 감사원 감사비리를 고발했다 파면당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 그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

“당시는 ‘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망하지 않는다’ ‘땅만 있어도 망하진 않는다’는 말이 유행하던 때였죠. 정부에선 한달이 멀다 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가 없었구요. 재벌 계열 기업체 23개를 선정해 조사했더니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이 43%나 됐습니다. 재벌이 부동산투기 주범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갑자기 감사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거예요. 들어보니 당시 이종기 중앙일보 부회장이 감사원 사무총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결국 감사를 중단하고 보고서 낼 수밖에 없었다.” 이종기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매형이고 X파일 녹음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해 금융감독원에서 비업무용부동산 비율이 1.2%라고 보고했는데 이씨가 조사한 결과는 43%였다. 이씨는 감사결과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했고 한겨레신문은 1990년 5월 이 사실을 보도했다. “재벌이 로비해서 감사원 감사를 중단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사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족과 동료만 생각했으면 못했겠죠. 죽을 각오 하고 한 일이었습니다.”

감사원은 잘못을 시인하는 각서와 사표를 종용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씨가 허위사실을 언론에 유포해 정부의 공신력을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구속했다. 파면 처분을 당한 이씨는 이후 6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1996년 4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판결을 받았고 그해 10월에는 파면처분청구소송에서도 승소해 복직할 수 있었다. 그는 감사교육원 교수로 근무하다 1999년 정년퇴직했다.

그는 공익제보를 한 이후 “전화가 뚝 끊겼다”며 “사회에서 고립됐다는 외로움이 가장 괴로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다 기억한다. 그는 “나와 가까이 지내면 피해본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통화라도 하면 도청당한다고 믿으니 어느 누가 선뜻 전화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금융기관에 융자신청 서류 내면 이문옥 이름 석 자만 보고 바로 퇴짜 당했습니다. 전염병 환자 대우를 받듯이 사회에서 격리돼 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위축되기 쉽죠. 나같은 경우는 오히려 더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고 시민단체 활동도 열심히 했으니 약간은 특이한 경우이지요.”

구속 6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 난 이씨는 구치소에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제도를 소개하는 칼럼을 읽게 된다. “눈이 번쩍 트이더라구요. 경실련 경제부정고발센터 대표와 양심선언자모임 회장을 하면서 양심선언자보호특별법 제정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부패방지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지요.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했지만 세상이 바뀌면 나는 언제든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패방지법을 만들지도 못했는데 정년퇴직한다고 정부에서 주는 녹조근조훈장을 어떻게 받나 싶어 훈장수여도 거절했지요.”

정년퇴직하고 나서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부정부패로 피해받는 사람은 서민대중이고 잘사는 사람은 부패로 덕본다는데 생각이 미치니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노조와 손잡으면 부패추방운동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작용했다. 그는 2002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10년에 걸친 노력은 결국 부패방지법이 2002년 국회를 통과하면서 결실을 맺었다. 그는 “부족한 게 많은 법이긴 하지만 제정과 개정을 거쳐 조금씩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패방지법이 부패추방을 위한 실질적인 힘을 가지려면 공익제보 대상을 기업과 민간단체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분식회계는 곧바로 탈세로 이어집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게 되지요. 사립학교재단의 부정과 비리도 결국 피해자는 국민 전체입니다. 부패방지가 전 사회적으로 녹아들어가려면 기업 내부고발이나 사학재단 내부고발도 법적으로 보호해줘야 하지요. 물론 감사원 독립도 중요하구요. 공무원노조의 책임도 큽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3일 오전 7시 3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6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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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는 왕따?

“2년 가까이 점심을 혼자서 먹었습니다. 동료들이 나와 얘기 한마디만 해도 불이익을 주는 분위기로 몰고 갔지요. 출근할 때마다 ‘지옥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구요. 그렇게 발이 무거울수가 없습니다. 따가운 눈총과 냉소, 모멸감으로 일터에서 ‘왕따’를 만들어 말려 죽이는데 징계보다 더 무섭더군요.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우울증 불면증, 결국 당뇨증세까지 생겼지요. 해고됐더라면 가정파탄나고 모든 게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심재봉 화백

지난 2003년 대한적십자사가 부실하게 혈액관리를 하고 있다고 고발했던 대한적십자사 직원 김용환씨(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 공익제보 혹은 내부고발이라고 부르는 용기있는 행동을 했음에도 그는 2년 넘게 온갖 고통을 당해야 했다. 김씨는 “심지어 노동조합까지 나서서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나를 해고하라고 촉구하고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것을 보며 느끼는 상실감”을 기억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심신이 쇠약해지던 차에 허리를 다쳐 6급 장애를 입은 김씨는 2004년 6월 10일부터 지금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휴직 중이다. 그는 “처음엔 꾀병 부리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더니 나중에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지금껏 문병은 고사하고 전화 한통 없다”고 대산적십자사에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공익제보자가 당하는 고통은 크게 인사상 불이익과 인신공격이다. 공익제보자들은 좌천, 파면같은 인사상 불이익도 큰 고통이지만 “온갖 모략과 멸시, 따돌리기”라고 말한다. “원래 인간성이 좋지 않았다, 승진 못한 불만 때문에 그런 거다,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 언론플레이한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공익제보자를 벼랑으로 내몬다. 조직 전체가 ‘왕따’에 공범이 된다는 것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최상천 전 사료관장에 대해 사업회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인사상 불만이 원인이고 원래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공익제보로 인해 2003년 해고당했다가 법원 판결로 복직된 김태진 산업기술평가원 선임연구원은 “공익제보자를 도려내는 방법은 상식을 뛰어넘고 상상을 초월한다”고 증언한다. “엄청난 물적 자원이 기관장이나 단체장에게 있습니다. 공익제보자를 해고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몇 억원을 쓰데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공익제보자가 겪는 스트레스와 순간순간 닥쳐오는 후회가 너무나 견디기 힘듭니다. 조직 우두머리들은 대놓고 말은 안해도 분위기를 보이지 않는 살얼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고발 자체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절도,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걸 수 있는 건 다 겁니다.”

정신적 고통은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 철도청 비리를 언론과 시민단체에 제보했던 조항민씨는 감봉과 지방전출 조치를 당한 후 2000년 7월 자살했다. 그와 함께 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가 지난해 복직한 황하일씨는 조씨가 “주위의 따돌림과 징계, 특히 가정불화로 큰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공익제보는 공직자 의무

부패방지법 제26조는 “공직자는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다른 공직자가 부패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되었거나 부패행위를 강요 또는 제의받은 경우에는 지체없이 이를 수사기관ㆍ감사원 또는 청렴위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해 개정된 제32조 1항은 “누구든지 이 법에 의한 신고나 이와 관련한 진술 그 밖에 자료 제출 등을 한 이유로 어떠한 신분상 불이익이나 근무조건상의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실제 청렴위는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조직에서 벌어지는 ‘왕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1992년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를 고발했다 구속된 적이 있는 이지문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당시 육군 중위)은 “법이 아무리 공익제보자를 보호하더라도 사회가 이들을 보듬어주지 않으면 공익제보 활성화는 먼나라 얘기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시민단체나 노조를 대리인 형식으로 해서 공익제보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익제보가 사회를 지킨다

지난 2000년 7월 주한미군이 포름알데히드를 기지에 있는 하수구를 통해 한강으로 몰래 흘려보낸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준 적이 있다. 한국계 미국인인 현직 주한미군 군무원이 시민단체에 제보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이 사건은 공익제보가 사회를 지킨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공익제보자들은 “공익제보자 한 명만 있었어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또 말한다. “공익제보자들이 조직적으로 왕따당하고 징계를 당해도 누구하나 관심갖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겠느냐”고. 적어도 법적으로는 ‘의무’인 공익제보. 이제 사회가 답할 때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13일 오전 7시 33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6호 6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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