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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패스트패션은 빠르게 패스! : 캄보디아 노동자 유혈진압 사태와 의류봉제업체들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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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어김없이 명동거리는 성탄 전야를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같은 날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명동의 활기찬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캄보디아인들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2014년 최저임금을 95불로 결정한 정부의 발표에 항의하고자 의류봉제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새해가 지나서도 시위는 계속되어 결국 5만 명이 참가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전례 없는 광경에 당황한 캄보디아 정부는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 진압을 감행했다. 지난 1월 2일과 3일, 양일에 걸친 무장 헌병과 경찰의 진압으로 사망자가 5명이나 발생했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것이 지난 새해 벽두에 일어난 캄보디아 유혈 진압 사태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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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시기에 한국 의류업체인 Y사 앞에서도 대규모 파업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Y사와 911공수여단의 유착관계,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시위 강경 진압 요청 의혹 등, 국내외적으로 관련 의혹 보도가 잇따르면서 국내 언론들은 앞다투어 현지 취재에 나섰다(이 글에서는 한국 대사관이나, Y사의 911공수여단 연계 등에 관한 논의는 제쳐놓겠다). 캄보디아에서 전해진 참극은 한국인들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들춰냈다. 70~80년대, 우리네 의류·봉제공장의 모습이 캄보디아에서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봉제사 언니들은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별이 머리 위를 비추는 밤까지 재봉틀을 돌려도, 삼시 세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려웠다고 한다. 사실 필자는 그때의 삶을 잘 모른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열자”는 구호가 가득 찬 시대에 자라 청계천의 평화시장보다는 동대문의 대형 쇼핑몰들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의 글을 통해서 떠올릴 수 있는 80년대 한국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캄보디아에서 보았다. 작지 않은 충격이었다. 왜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서 그 시절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자본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하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미련 없이 떠난다. 국내 의류·봉제공장들은 그렇게 국내를 떠나 중국 등지로 진출했다. 그러나 중국도 인건비가 결코 싸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각종 규제가 더해지면서 의류·봉제업체들은 새 보금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캄보디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정착지가 되었다.
 캄보디아는 농업, 관광, 제조업으로 먹고사는 나라지만 2, 3차 산업의 규모는 영세한 편이다. 2009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력의 약 11%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 중에서도 고용인원 35만 명에 달하는 의류·봉제업은 캄보디아 경제발전의 선봉장이다. 2007년 기준, 캄보디아 의류 수출액은 약 27억 달러로 총 수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은 1997년에 캄보디아 정부와 외교관계를 회복한 후 2000년대부터 캄보디아에 활발히 진출하였다. 전체 590여 개 의류봉제업체 중 82개가 한국 업체이고, 투자 규모도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등 한국 기업의 비중은 상당히 높다. 의류봉제업체들은 저렴한 노동력과 함께 일반특혜관세제도(GSP)의 혜택도 누린다. 캄보디아는 세계은행 소득 통계를 기초로 하위권에 속하는 최빈국(LDC)이기에 EU의 EBA(Everything But Arms)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무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 무관세를 적용받는다. 한국의 의류·봉제업체들 대다수가 서구, EU의 소매 브랜드에 납품하는 점을 감안할 때 캄보디아는 괜찮은 생산기지인 셈이다.
 캄보디아는 외자유치에 힘입어 2008년 미국발 경제공황시기를 제외하고는 성장률 7%를 찍으며 성장해왔다. 그러나 의류 노동자들은 전례 없는 대규모 임금인상 시위를 벌이며 그러한 성장가도에 제동을 걸었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투자자들에게는 더 높은 수익을 의미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저렴한 노동력의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의류노동자들은 80불을 기본급으로 받는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시골 농촌에서 올라온 이주노동자로, 공장 근처에 세를 얻어 산다. 아무것도 없는 방 한 칸에 월세는 평균 40불이다. 그마저도 월세를 아끼기 위해 한 방에 4~5명이 공동으로 거주한다. 식사는 보통 한 끼에 1,000리엘(우리 돈으로 약 250원) 하는 길거리 음식으로 해결한다. 성인이 먹기에는 굉장히 적은 양이다. 게다가 위생도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달리 선택이 없다. 비참한 사실은 이마저도 기본급 80불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매일 2~3시간씩 특근을 하면서 돈을 번다. 쉬지 않고 일해야 겨우 140불이 안 되는 임금으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고향에 눈곱만한 돈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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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최저임금은 65불(2008년도 기준), 80불(2012년도 기준)로, 그리고 올해는 95불로 계속 인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물가도 함께 급등하였다. 2008년에 물가가 20%나 오른 이후로 매년 4% 이상 꾸준히 올랐기 때문에 의류업체 노동자들의 삶은 결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캄보디아 정부가 조사를 의뢰한 노동 자문위원회도 최저생계비는 150~170불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저임금 협상에 관한 정부, 노동자, 사용자 3자 교섭에서 590여 개의 캄보디아의 의류·봉제업체를 대표하는 캄보디아의류생산자연합(GMAC)은 임금을 인상하면 공장 문을 닫아버리겠다며 노동자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실제로 최저임금 2배 인상이 공장 문을 닫을 정도로 타격을 준다면, 기업들은 그런 협박을 할 수고를 들일 필요 없이 더 저렴한 임금을 주는 나라를 찾아 떠날 것이다. 공장주들은 캄보디아에는 휴일도 너무 많고, 이웃 나라 베트남과 비교해 봤을 때 생산성도 현저히 낮다고 하소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류·봉제공장은 여전히 가동 중이다. 적자는 아니란 뜻이다.
 노동자들을 쥐어짜 내서 이익을 불러왔다면 이는 결코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수익은 공정하게 나뉘어야 할 것이다. 캄보디아만큼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또 다른 의류 수출국 방글라데시의 예를 들어보자. 방글라데시 개발연구소(Bangladesh Institute of Development Studies)가 실시한 한 조사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 노동자들이 창출하는 가치는 100중 약 31이며, 이 31중에서도 7만큼만 임금으로 지급되며 24는 투자자에게 수익으로 돌아간다. 캄보디아 의류노동자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류·봉제업체들은 “법에 정한 대로 최저임금을 준 것이다…땅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봉사 NGO도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현재의 최저임금은 28년의 장기 독재 집권을 유지하고자, 헐값의 저임금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임금'이라는 원래의 의미에서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필자 역시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노동자들에게 시혜를 베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응당한 몫을 주라는 것이다.
 그 몫을 만드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글로벌 소매업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글로벌 소매업체들이야말로 진정한 슈퍼갑의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GAP, H&M, PUMA 등의 브랜드들은 훈센 총리와 GMAC에 우려를 담은 서한을 보냈다. 월마트, 아디다스, H&M 등 30여 개 글로벌 소매 업체들도 국제노총과 함께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 빠르게 내놓았다. 하청 의류업체들은 주문을 받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낮은 납품가를 제시하며 경쟁을 벌이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거대 소매업체들은 화살의 방향을 재빨리 하청업체들로 돌려 양심 있는 브랜드인 양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소매업체들의 처세술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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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거리에 즐비한 수많은 SPA 브랜드, 스포츠 브랜드 등의 패스트패션들이 저렴한 가격에 멋진 디자인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예쁜 옷들을 싼 가격에 입을 수 있게 되어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가가 분명히 오르고 있는데도 옷값은 내려가는 이상한 구조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른 다음에야 가능하다. 한 달 내내 일해도 자신들이 만든 옷 한 벌 구입하기도 어려운 캄보디아 의류노동자들의 희생이 바로 예쁘면서 저렴하기까지 한 의류의 대가다. 오늘도 이들은 생애의 대부분을 재봉틀 앞에서 헌신하고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 열심히 번 돈을 보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거운 삶의 무게를 버텨내면서.
 동남아 의류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마주한 이후로는 옷을 살 때면 상표부터 살펴본다. 예전에는 국산을 최고로 치는 엄마의 방식을 따라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그랬지만, 이제는 노동자들의 착취로 생산된 옷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안타깝게도 고심하여 고른 옷들의 원산지는 대부분 동남아 국가들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50% 세일’이라는 너무나도 매혹적인 문구가 나를 유혹하지만 나머지 50%는 한 달에 고작 10~20만 원 버는 노동자들이 대신 내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은 구입을 포기한다.
 누에고치를 기르고, 목화를 재배하고 재봉틀로 옷을 스스로 지어 입어야만 의류산업의 불평등한 시스템을 깨뜨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시도해보는 것은 마치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패스트패션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쁘고 질 좋고 가격이 싸면 사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의식 있는 소비자가 되어보자. 한 명의 소비자는 힘이 없지만, 우리가 모이면 힘이 생긴다. 저렴한 옷을 원하는 마음보다 정당하게 만들어진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나와 당신의 간절함을 모아보자. 그저 사지 않으면 되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방법을 실행에 옮겨보는 것이다. 우리의 지갑에서부터 변화는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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