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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탈-반 : 젠더수행 연습해보기 탈춤에 대한 페미니즘적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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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
글로컬포인트기획편집팀

* pdf 파일 다운받기  [7. 칼럼 - 채영탈.pdf (149.10 KB) 다운받기]

 

1년 여 정도 탈춤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사실 들어가게 된 계기는 완전히 우연이었다. 원래 하던 스트릿댄스 동아리를 힘들어서 그만둔 상태였고, ‘전통’이라는 걸 체험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하는 충동이 들었고, 동아리를 만든다고 제안해 준 학교 선배가 페미니스트였다(결정적 이유). 

 

동아리를 하면서 재밌고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고민도 많았다. 같이 활동하던 젠더남성들 중 몇몇의 젠더감수성, 무엇보다 전수를 해주시는 선생님들의 젠더감수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앉아서 공부를 할 때와 다르게, 춤을 춘다는 것은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활동을 해야 할 때면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느낌이 불편했다. 그런데도 탈춤동아리는 지금까지 대학생활 중에서 가장 재밌는 기억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적 고민들도 마구 일어났던 시기였다. 특히 ‘재현’의 문제와 젠더 수행에 관련해서. 그래서 나의 탈춤 동아리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고, 같이 동아리를 한 페미 친구와 나눈 대화를 나눴다. 

 

채영 너에게 ‘해탈(서강대학교 탈춤동아리)’이라는 공간은 어땠어?


정하 음, 나는 원래 탈춤에 관심이 있었어. 그런데 페미친구(너)가 추천해주는 걸 보고, 한 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지. 내가 쓴 탈의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도 재밌었고. 그런데 열심히 모든 역할을 배우고 전수 받았는데 막상 연기할 역할을 선택할 때는 남자 역할은 그 역할을 할 남자가 없을 때에만 여자들에게 차례가 돌아오더라구. 나는 사실 하회탈춤에서도 백정 역할을 하고 싶었어. 전수자 선생님들은 모두 남성이었는데 본인들은 여자 역할도 하면서 여자들은 남자 역할을 맡는데 눈치 보이고 그랬어. 거기서 좀 불편하고 짜증이 났었지. 

 

채영 맞아. 전수받을 때 회장님이 연습도 안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연기를 시켜보더니 갑자기 배정해주셨잖아. “너는 양반 잘하겠다”, “너는 할미 잘하겠다”. 물론 좋은데, 연습을 해보면서 어떤 배역이 좋아질 수도 있는 거고, 애초에 동아리니까 즐기면서 해보고 싶은 배역을 맡아서 연습해봤어도 재밌을 것 같은데. 그리고 부네나 백정같이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잘 드러내야 하는 배역에서는 체격과 성별에 따라 배정하셨어. 그래서 나는 사실 하회에 큰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

음, 우리가 하회탈춤, 봉산탈춤을 배웠잖아. 너는 하회탈춤에서 ‘부네’라는 여성역할을 수행했고, 나는 봉산탈춤에서 ‘목중’이라는 남성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자 든 생각이 각각 있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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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 하회탈춤 중 ‘부네’가 나오는 파계승 마당은 산중에서 부네가 소변을 보는 걸 훔쳐보던 파계승이 부네를 쫓아가서 서로 눈이 맞아 춤을 추다가 초랭이가 나오면 파계승이 부네를 들쳐 엎고 퇴장하는 마당이야. 부네를 연기할 때, 난 답답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 보통 탈을 쓰고 연기를 하면 더 자유로워지고, 나와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맛이 있다고 들었었는데. 부네는 극중에서 추임새 빼고는 대사가 없고, 다른 탈들과 다르게 입에 구멍도 없어. 또 춤을 추는 모양새가 엄청 소극적이고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었거든. 그 당시 실제로 나라는 사람은 그러한 여성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어. 성격도 소극적이고 부끄러움도 많이 탔고. 나처럼 전형적으로 ‘참하다, 얌전하다’라고 생각되는 여성이 오히려 백정 같은 역할을 맡아서 남성성을 연기했더라면 연기하는 나도, 보는 사람도 재밌는 놀이가 되었을 것 같아. 나 같은 경우는 부네탈을 쓰고 나를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었거든. 탈 안에서의 자유로움 같은 건 없었어. 
또 혼자 출 때는 어차피 대사도 없고 부네의 부드러운 몸짓을 잘 재현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몸짓들이 별로 어렵지 않았어. 근데 막상 양반이랑 같이 춤출 때는 내가 그 양반에게 교태를 부려야 하고, 얌전한척 유혹하는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나는 거야. 원래 아는 사람들이 양반, 선비의 탈을 쓰고 나를 뭔가 뭐랄까 기생으로 다루는 기분(그니까 성적으로만 대상화되는 기분)이 드니까 뭔가 원래 내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과 (탈춤을 추지 않을 때와) 구분이 되지 않고 그러니까 기분이 나빴던 것 같아.

 

채영  맞아. 하회 전수를 받았을 때, 선생님들이 거의 다 남성이었잖아. 부네 역할을 한 것도 남성, 전수 회장님도 남성, 그러다보니 ‘부네’라는 역할을 매우 남성중심적으로 그려내시는 것 같았어. 
봉산탈춤에서도 부네와 매우 비슷한 캐릭터가 나와. ‘소무’라고. 목중이랑 중이랑 ‘소무’를 놓고 경쟁하는데, 하회에서도 양반이랑 선비랑 부네를 놓고 경쟁하잖아. 정작 소무와 부네의 마음은 알 수가 없는데, 남성들 간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이 결국 여성을 쟁취하는 서사에서 동일해. 진짜 별로다. 소무랑 부네는 그 남자들이 별로일 수 있는데, 지들끼리.  

 

정하 맞아. 반면 하회에서의 할미는 전혀 섹슈얼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해. 성적 주체가 되어도 비난을 받을 거고, 성적 대상도 되지 않지. 그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놀림당하는 늙은 여자일 뿐이야. 반면 양반도 나이가 꽤 많게 그려지는데, 양반은 부네를 욕망하거든. 할미는 모든 욕망을 거세당한 채, 그리고 욕망-식욕-을 비웃음 당하는 불쌍한 캐릭터이기만 하지. 이 사회가 여성의 노화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채영 할미캐릭터 이야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봉산탈춤에서는 흥미로운 과장이 하나 있어. 미얄과장이라고 불리는 제7과장. 전쟁통에 미얄 할멈과 영감 부부가 헤어지거든? 어느 날 재회를 해. 근데 영감에게는 이미 들머리집이라는 첩이 있어. 미얄 할멈은 (지금으로 생각하면 이혼 후 재산분할을 하자고) 살림을 나누자고 싸움을 하고, 그 과정에서 영감에게 맞아 죽어. 그리고 영감은 들머리집과 살겠다고 장례도 치러주지 않고 도망가듯 떠나. 이게 당시의 사회상인 걸 감안하면 미얄 할멈과 같이 나이든 여성을 남편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볼 수 있지. 그렇지만 이걸 탈춤의 한 마당으로 만들고, 미얄을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으로 그린 지점은 재밌었어. 조금 더 스포를 하자면, 미얄이 죽고, 영감을 비난하는 남강노인이 나오고,  마지막에 무당이 미얄의 혼을 달래는 굿을 하면서 극이 끝나. 미얄의 혼을 달래는 과장이 4시간이 넘는 봉산탈춤 서사의 대미인 거지. 
 여기가 여성주의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해. 미얄이 젠더폭력(남편폭력)에 의해 죽고, 그런 남편을 비난하는 남강노인이라는 존재가 나오고, 여성 무당이 젠더폭력으로 죽은 미얄을 위로하며 끝내는 서사. 미얄이 엄청 춤도 잘 추고 당찬 캐릭터로 나오는데, 걸크러쉬…. 아쉬운 점은 들머리집은 아무것도 안하는 캐릭터라는 거야. 들머리집과 미얄이 같이 손잡고 영감의 무책임한 모습을 비난했어도 재밌었을 것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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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 재밌었을 것 같아. 내용 자체도 훨씬 흥미롭고. 어쩌면 하회탈춤에서의 부네도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내가 부네 역할을 너무 소극적인 여성상으로만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부네가 적극적인 여성이라서 자기의 욕구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양반, 선비를 유혹하는 여성이라도 여성이 성적 매력으로만 일정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진정한 의미의 ‘적극적’ 여성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나 이전에 부네를 연기했던 동아리 언니는 되게 요염하고 궁둥이도 크게 흔들고, 그런 부네를 연기했다고 들었어. 근데 사실 나는 전수자 선생님의 스타일을 그대로 받아서 따라했던 것 같아. 내가 배웠던 전수자 선생님은 굉장히 절제되고 움직임이 작은 부네를 연기하셨었거든. 

 

채영 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이 젠더남성이어서 더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 선생님 입장에서는 ‘부네처럼’, ‘여자처럼’ 연기하려고 노력했을 거잖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즉 스테레오 타입에 더 가까운 여성을 연기할까-하는.

 

정하 맞아. 탈춤 판을 짜고, 연기하는 사람이 젠더 남성일 경우 더욱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부네’가 그려질 수 있는 것 같아.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성, 기생. 여성이 부네를 해석하고 연기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 같아. 채영이 너는 남성역할을 연기했잖아. 근데 왜 남성 캐릭터를 고른 거야?

 

채영 (독자분들을 위해 설명을 하자면) 목중이라는 캐릭터는 우선 파계승이야. 중인데 성적욕망으로 가득 찬? 죄를 지어서 얼굴에 혹 같은 것이 나있고, 술을 많이 먹어서 얼굴도 불그적적한, 마초적 남성성을 충실히 수행하는 남성 역할이야. 페미니스트로서 일상 속에서는 그런 류의 남성성을 비판하지만, 그 연극에서 내가 그 역할을 수행해보면 어떨까-가 궁금했던 것 같아.
사실 젠더 여성이 여성역할을 하는 게 더 수월한 건 있다? 사실 봉산탈춤에서 상좌(여성승려)의 춤동작이 부드럽고 선을 중요시하고, 애초에 여성들이 삶에서 하는 행동들-손짓, 걸음걸이 등-과 더 유사하잖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고. 근데 뭔가 오기가 있었던 것 같아. 무조건 더 적극적이고, 강한 역할을 연기할 거다-하는. 탈춤에선 그게 남성 캐릭터들이고. 미얄처럼 춤 잘 추고 당당한 여성상은 거의 안 나오니까.

 

정하 맞아. 춤 동작 자체가 엄청 달라. 남성과 여성 캐릭터가. 가령, 양반이나 선비는 팔자걸음으로 엄청 거들먹대면서 걷는데, 부네는 사뿐사뿐. 반면 헤게모니적 남성은 아닌, 초랭이 같은 경우 촐랑촐랑 걷고, 할미도 궁둥이를 크게 흔들며 퍼덕퍼덕 걷는다고 해야 하나... 

 

채영 목중의 대사 중에 “내가 본시 천하제일의 한량으로~”라는 대사가 있어. 그 대사에 걸맞게 술 먹는 거, 여자만나는 거, 춤추고 노는 거 좋아하는 캐릭터고, 애초에 자신감이 과잉하는 남성성을 보여준달까... 그래서 남성적 춤과 연기에 있어서도 부담이 있었어. 근데 그런 동작들을 연습해본 것이 나에게는 도움이 많이 됐어. 성격도 바뀌었는데, 좀 능청맞아졌거든.
정하 오, 그거 흥미로운 지점이다. 어떻게 도움이 됐어? 페미니즘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런 류의 남성성을 수행해본 경험이 너에게 도움이 됐다는 거잖아!

우선 목중처럼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대사를 치는 것. 나 원래 남들 앞에서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 본 적도 없거든. 대개 여자애들 그런 식으로 안 키우잖아, 하회에서도 부네는 대사할 입 구멍도 없고. 목중 캐릭터랑 연관된 건데, 당시 극을 짜다 보니까 내가 나머지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관객들에게 탈춤에 대해 설명해야 했었어, 그것도 영어로. 예전 같으면 절대 못했겠지만 그것도 능청떨면서 잘하게 되더라.
또 목중은 춤 동작이 크고, 격하고, 남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네가 했던 상좌의 춤도 같이 배웠지만, 부드럽고 선을 중요시하고 ‘여성적’이잖아. 반면 목중은 걷는 자세부터 팔자로 거들먹거려야 하고, 팔도 엄청 크게 휘둘러야 하고, 뛰면서 ‘남성성’을 과시해야 하거든. 
여성들의 밤길이 더 안전하지 않은 건, 여성이 신체적으로 더 약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사회가 여성들에게 체육 활동을 불평등하게 제공하고, 본인의 신체를 단련하도록 장려하지 않잖아. 흔히 힘을 쓰는 것이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그런 류의 ‘힘’을 ‘남성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탈춤의 배역을 수행하면서 ‘나도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구나!’ 알게 되고, 내 행동에 스스로 가했던 제약들을 많이 걷어내게 되었어. 
실제로 목중을 연기하면서 ‘젠더 수행’을 많이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 한창 탈반했을 때 버틀러와 케이트 본스타인 글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는데, 거기서 연극에서의 수행으로 어떤 새로운 젠더재현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잖아.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서사를 꾸려볼 만큼 활동을 오래하지 못했지만, 젠더 여성으로서 남성성을 수행해본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어.

 

정하 탈춤을 계속 배우고 추면서 페미니즘적 서사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

 

채영 맞아. 젠더 수행에 적합한 연습-장(place)이 되어주는 것 같아. 우리가 탈춤동아리를 ‘탈반’이라고 부르잖아, 퀴어판에서는 이걸 ‘탈-이반’이라는 의미로 쓰더라고. 이성애 사회의 벽장을 깨고 나와서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다시 정체화한, ‘일반’이 아니라 ‘탈-이반’. 우연이지만 너무 재밌는 포인트인 것 같아. 나중에 우리가 페미니스트 탈춤공동체를 만들게 되면 ‘탈반’을 이름으로 쓰자!  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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