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오다니...

2007/11/28 17:40

풀소리님의 [강승규의 귀환] 에 관련된 글.

 

일단 턱! 막혔다... 입이, 가슴이, 기가...

왜? 올게 왔구나? 아니 이럴수가? 그럼 그렇지?...

 

내 일찍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빈손으로 학교를 찾았다는 이유로 담임선생으로부터 유형무형의 구박을 받을 때부터!

이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챘었다.

그 담임이 3학년 때 또 내 담임이 됐을 때,

이 세상은 늘상 거래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눈치챘다.

그 담임에게 유달리 이쁨을 받는, 내 가장 친한 친구를 보면서

나는 심지어 배신감까지도 맛봤다.

 

중학교 들어가서

음악 전공인 고상한 담임선생이 조용히 불러서 "내가 돈 가져오라고 했던 거, 니가 학교에 전화했니?"라고 물었을 때는

복수가 무엇인지도 알았고,

그 선생의 집에 심부름을 갔을 때, 그 집 마당에 놓여있던 분재화분이 우리 교실에 있다가 어느날 없어진 분재화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드디어 세상에는 여러 종자의 인간들이 있고, 그 종자들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을 받았더랬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담임이 가정방문을 재산상태 조사로 여기고, 가정방문 이후 학급 임원진을 구성하는 것을 봐도, 난 그러려니 했고.

막 성장하고 있는 여고생들에게 '다이어트용 복대'를 장당 5천원에 파는 무용선생을 봤을 때는, 난 이미 놀라지도 않았다.

 

학교를 다닐만큼(?) 다닌 뒤, 내가 시작한 일은 화해할 수 없는 종자들과의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뜻밖에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종자도 많았고, 가히 '연대'라는 말이 가슴 뿌듯하기도 했다.

이 빌어먹을 '돈이 주인인 세상'을 갈아엎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났다.

 

게 중엔 나처럼 허접스럽게 귀퉁이에 낑겨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도부를 자처하고 나서서 우매한 대중을 가르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훌륭한 자들도 많았으니,

필경 강씨도 그 무리 중 하나였으렸다....

 

화해할 수 없는 종자들 한 무리를 떼어내, 그들! 그 계급과 투쟁하고자 했는데,,,

남아있는 우리! 이쪽 계급 가운데에서도 상종못할 종자가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 그런 종자들 역시 뜻밖에 많았더란 말이다.

문제는, 그런 자들의 생명력이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자못 길고, 짐짓 질기다는 것이다...

 

엊그제 우연찮게 술자리를 함께한 어떤 동지의 말이 기억난다.

"어용은 조합원들이 만드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조합원들이 가서 난리를 쳐야지요. 지멋대로 해도 냅두니까 어용이 되는 거잖아요."

 

냄비처럼 금세 끓었다 식는,

분기탱천해 당장이라도 사단을 낼 듯 설레발을 떨다가도, 금새 잊고 다른 일로 몰려가는...나도

그런 '어용지도부를 만드는 조합원' 부류 어디쯤에 낑겨있었던 것 아닌가...

 

아! 강씨가! 강씨가 돌아오다니...!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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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8 17:40 2007/11/28 17:4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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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영화관

2007/11/26 16:10

며칠 전, 십수년 전 내가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 바로 그 날!

쉽게 이야기해서 '생일날', 영화를 봤더랬다.

자유로를 마구 달리다, 집에 가려면 문발IC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 전, '파주출판단지'로 나가면 영화관이 있다.

파주출판단지를 지나기 전 "핸들을 우로 꺽어? 말어?" 약 3분간 고민하다 우로 확 꺽었다.

시간대가 맞는 땡기는 영화가 있음 보고, 없음 말지 뭐~

영화관 들어섰을 때가 저녁 10시50분. 마침 11시부터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 '색,계'

 

영화에 대해?

- 탕웨이가 비바람 속에 자동차에서 내리고, 양조위가 그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보내는 눈빛...

- 홍콩에서 돌아온 탕웨이가 "부인을 위해 양담배를 가져왔는데, 대장님에게는 드릴 게 없다"고 하자 양조위가 하는 말 "나에겐 당신이 돌아온 게 선물이오"

  여기까지 가슴 설레다... 그 이후? 이상해~

  양조위가 유일하다. 뭐가? 영화를 보며, 첫째, 그가 하는 대사가 마치 나한테 하는 대사가 아닐까 가슴 설레이는 배우. 둘째, 그가 담배를 피울 때 같이 피우고싶은 배우. <화양연화>에서 사무실에 앉아 그가 뿜어올리는 담배연기를 보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었다.

 

영화관에 대해?

- 그 영화관은 9개관이 있다. 전체 1636석.

- 그 가운데 '색,계'를 상영한 곳은 8관. 다른 관은 120~170석인데, 8관은 338석이다.

  그 날, 8관 관객은 나 혼자였다. 뒤쪽 한 가운데 떡하니 자리잡고 나 혼자서 영화를 보다!!!

  새벽 1시40분경 영화가 끝난 뒤,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가니, 영화관직원이 문을 열어주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한다. 아! 우찌 이것이 내 생일인 줄 알고 그리 친절하단 말인가... 계단을 사뿐사뿐 내려갈 때, 내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뤼장에 입장하는 기분이었다는 거~ 에그, 주책이야. ㅋㅋㅋ

  영화관에서 나와서 보니, 8관 뿐만 아니라 영화관 전체를 통털어서 관객이 나 혼자 뿐이더라는 거~ 왜? 다른 관은 영화상영이 진즉에 다 끝났고, '색,계'가 맨 나중에 끝났기 때문이쥐~

 

호사스러운 생일!!! 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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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16:10 2007/11/26 16:10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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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볼까 말까...

2007/11/22 20:48

TV가 고장났다.

 

7년 전 혼자살게 되면서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장만했지만, TV는 사지 않았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날을 샐 때까지 줄기장창 보는 내 폐인기질을 아는지라, 아예 두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4년 전, 이사를 하게 됐다.

후배녀석이 뭘 사줄까 묻더니, 새 TV를 사왔다.

처음 사왔을 땐, "일부러 안두고 사는건데 왜 사왔냐"고 지랄했지만,

난 금새 고것에 쏙 빠져들었다.

특히 피곤한 날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리모콘만 쥐고 쇼파에 철퍼덕 엎어져서 날을 새곤 했다.

TV가 없던 시절보다 집에서 책읽는 시간, 청소하는 시간, 영화보는 시간, 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갔다.

 

며칠 전, 그날도 역시 리모콘 부여잡고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먹통이 되더니 쿵쿵쿵쿵,,, 소리만 계속된다.

고것이 고장난 것이다.

쿵쿵쿵쿵 소리는, 마치 성치않은 심장이 박동치는 소리같이 들린다.

 

TV 상표를 보니, 그 유명한 '인간중심의 디지털 세상'을 만들겠노라는 LG전자.

때리릭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했더니, AS기사가 왔다.

TV를 뜯어보더니,

기사 "이상하네~ 여기로 이사오기 전엔 어디 사셨어요?"

나 "그건 왜요?"

기사 "혹시 지하에서 사셨나 해서..."

나 "전 지하에서 살다 왔지만, 이 TV는 여기와서 산거예요. 그러니까! 산 지 3년 좀 넘었다는 거죠."

기사 "아니,,, 그런데 왜 이러지? 습기찬 곳에 오래 두거나 했을 때나 생기는 고장인데,,,"

나 "고칠 수 없나요?"

기사 "그게, 좀 중요한 부품이 나간 거라,,,5만원입니다"

나 "그럼 안고칠래요~ 수백만원짜리도 아니고 20만원짜리 TV, 5만원주고 고치기는 그렇네요~"

기사 "그러게요, 왜 이게 나갔을까요... 혹시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우쒸~ TV 고치는 데 5만원을 쓰느니, 차라리 TV의 덫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자 싶었다.

그 뒤로 집에 들어갔을 때, 리모콘을 손에 쥐어도 별 힘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저쪽 "네~ 안녕하십니까~ *** 고객님이십니까?"

나 "어디시죠?"
저쪽 "LG전자입니다"

나 "LG전자에서 어떻게 내 핸드폰을 알죠?

저쪽 "며칠 전 TV 때문에 서비스센터로 전화하지 않으셨습니까?"
허걱, 늘상 함부로 내 핸드폰으로 전화질해대는 각종 업체에 민감해있던 터라,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일단 핸드폰 번호를 알 이유는 있었던 곳에서 온 전화다.

그런데,

저쪽 "네~ 서비스는 잘 받으셨습니까?"라며 염장을 긁는다.

나 "20만원짜리 가전제품 고치는 데 5만원 달라는 데 어떻게 고칩니까?"

저쪽 "네~ 구입한 지 1년이 넘으면 무상AS는 안됩니다"

나 "아 놔~ 누가 공짜로 고쳐달래요? 잘나가는 기업 제품이 3년만에 작살났다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쪽, 여전히 지나치게 친절한 목소리로

"아~ 네~ 또 필요한 것 없으십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이 무슨... 내 필요한 것에 대해 충족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데, '또 필요한 것?'!!!

'또' 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고장난 거 고쳐주고 난 다음에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나 "아니, 고장난 것도 못 고쳤는데, 필요한 거 뭘 해줬다고 '또 필요한 것 있냐'란 말입니까"

 

그/런/데,

저쪽, 역시나 지나치다 못해 기분나쁘기까지 하도록 친절한 목소리로

"아~네~ 그럼, 또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요즘 어디가나 넘쳐나는 '친절한' 목소리들...

그 목소리를 내는 노동자들의 잘못은 아닐진데, 이제는 그 목소리들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내용적으로는 해결해주는 것 하나 없고,

심지어 해결을 요구하기까지 하면서 (이를테면, 보험을 들어라, 경품을 줄테니 주민번호를 대라 등등)

목소리는 상냥, 친절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들.

이쪽의 이야기는 아랑곳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면서, 너무나 친절한 그 목소리들...

 

그러나, 온갖 항의와 막말을 감내해야 하는 건 '목소리'들의 몫이고,

그 목소리들을 고용한 자들은 그 '상냥친절' 뒤에 숨어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가.

TV 만든 노동자나, TV 고장에 항의하는 고객들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목소리들에게 줄 임금 아껴서,

수백, 수천, 수억원 들인 광고로 '인간중심의 디지털세상'을 만들어가는 기특한 기업의 탈을 쓰고

숨/어/있/다

LG는 해고노동자가 40일 가까이 단식을 해도 눈 하나 꿈적 하지 않았었지...

 

파주시민 이씨의 20인치짜리 TV 하나 흔쾌히 고쳐주지 못하는 기업이, 무슨 인간중심의 디지털세상을 만들겠는가.

갈등~ TV! 고칠 것인가, 냅둘 것인가...

 

(그래도 비굴한 나는, 고민 중이다...5만원 주고 고치는 게, 20만원 주고 사는 것 보다는 훨 낫지 않을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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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2 20:48 2007/11/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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