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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송 _ 이성철

진송

이성철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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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효문 감독의 1996년 작품입니다(국내에는 김용 원작을 드라마화한 <천룡팔부 2003>등으로 더 잘 알려짐). 강문, 갈우 등 중국의 대표적인 배우들이 등장하는군요. 강문은 <붉은 수수밭>, <부용진>, <햇빛 쏟아지던 날들>, 첸 카이거의 <시황제 암살>, 그리고 <송가황조>, <귀신이 온다>, <사라진 총>, <모리화>, <천리주단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갈우는 <야연>, <시황제 암살>, 그리고 <패왕별희>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죠.

 

진시황(BC 210년 등극)과 한 음악가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나중에(13세 때) 진시황이 되는 양정은 연나라에 볼모로 잡혀와 있습니다. 그는 연나라의 고점리(나중 진나라의 대악사가 되는 인물)의 어머니에게 함께 젖을 얻어먹으며 자랍니다. 세월이 흘러 양정은 진나라의 왕이 되나, 그의 끊임없는 정복야욕 때문에 이웃 나라들(고점리의 조국인 연나라, 그리고 초나라 등)은 전전긍긍합니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암살자를 보내 진왕을 암살코자합니다(일설에 의하면 진왕은 재위 동안 19차례의 암살위협에 놓였다고 합니다). 예컨대 연나라에서는 ‘형가’(원래는 위나라 사람임)를 보내 척살하려하나 실패하게 됩니다(장예모 감독의 <영웅>의 실제 모델이기도 함). 이 결과 연나라는 초토화되고, 진왕은 고점리를 데려오게 만듭니다. 그러나 고점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신의 조국을 멸망시킨 진나라와 그 왕에 대해 저항합니다.

 

한편 진왕의 슬하에는 30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총애를 받았던 공주는 월양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어릴 때, 아버지인 진왕과 함께 말을 타다 떨어져 앉은뱅이가 되어버려 딸에 대한 애틋함이 무엇보다 컸던 탓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왕이 또 암살위협에 놓였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고점리와 월양이 함께 타고 있던 마차에 바위 같은 큰 돌이 떨어지면서 월양은 중상을 입게 됩니다. 고점리는 월양을 닷새 동안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그녀를 회생시키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랑이 싹터 ‘월양곡’을 짓게 되죠. 심지어 월양이 걷게 됩니다.

 

“물이 하늘에 이르러 구름이 되니

한가로운 세상에 사랑이 충만하다“

 

어릴 적 젖 동무였던 진왕은 고점리의 뛰어난 음악 실력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진나라를 위한 노래(즉 진송, 일종의 애국가)를 만들라고 합니다만, “대왕, 내가 능한 것은 평민들의 음이라서 궁중 음악인 송(頌)과는 별개의 음이라네”면서 거절합니다. 그러나 진왕은 끈질기게 회유합니다. 진송을 만들어주면 종묘사직의 제사를 관장하는 대악사에 봉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고점리는 계속 거절하고, 궁중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월양과의 애정행각만 이어갑니다. 그러나 월양은 왕과 대장군(왕건)간에 약조한 정혼자(왕분)가 이미 있습니다. 그런데 진왕이 ‘진송’을 만들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음악은 가장 쉽게 민심을 사로잡는 것이다”는 거죠. 천하는 통일했으나(제나라 정복 후 통일, 제나라는 지금의 산둥지역 일원입니다) 민심은 잡지 못한 진시황의 제 1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간의 대학살을 가리려는 것이기도 했죠. 70-80년대 한국의 수많은 금지곡과 건전가요들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와중에 만리장성 공사장의 돌에 모반을 부추기는 글귀가 발견됩니다. “진시황이 죽으면 나라는 분열된다”는 내용입니다. 진시황은 공사장 민중들 3만 명을 백 명씩 묶어 참수하게 됩니다. 가히 공포가 극에 달하게 된 셈이지요. 이에 고점리는 결심하게 됩니다. “내가 월양도 잊고, 작곡도 할 테니 처형을 멈춰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2만 5천명의 생명을 구하게 되죠(아! 처형된 5천명은? 좀 더 일찍 결심하지.....^^;;). 그러나 고점리의 반항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왕분에게 시집갈 월양과 성(聖)스러운 종묘에서 성(性)스러운 예식을 치르게 됩니다. 이 일 등으로 고점리는 눈이 멀게 되는 형벌을 받습니다. 슬퍼하는 월양이지만 월양은 그에게,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의 월양은 늙지 않을 거예요”라는 애틋한 마음을 남깁니다.

 

마침내 진송이 완성되고 진왕은 시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점리는 진시황의 등극 연설 중에도, 자신이 들고 있던 악기로 그를 때리게 됩니다. 이에 진시황은 “역사는 내가 쓴다. 그리고 너도 죽이지 않는다”면서 고점리에게 아량을 베푸는 듯하지만, 이미 고점리의 몸 속에는 독이 번져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제국의 건설과정이었지만 그 제국은 결국 BC207년에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음악은 영원하다는 것이겠지요? 배우들의 연기가 빼어납니다. 중국역사 공부를 겸해서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연전에 EBS에서 강연된 김영수 선생의 ‘사기열전’을 들춰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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