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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2월 테제> :노동자 농민이여, 이 땅 위에 생동하는 ‘노농 소비에트’ 깃발을 세우자! _안태정

1928년 <12월 테제> :

노동자 농민이여, 이 땅 위에 생동하는 ‘노농 소비에트’ 깃발을 세우자!

 

 안태정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위원)

 

아, <12월 테제> … …!!!

다시 말해서, ‘조선농민 및 노동자의 임무에 관한 결의’는 1928년 12월 10일 국제공산당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1919.3.2~1943.5.15) 집행위원회가 채택한 것이었다. 그것은 1928년 11월 코민테른에 의하여 기존의 조선공산당 승인이 취소된 직후였다. 그리하여 1929년 이후 <12월 테제>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시대 조선의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 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세력의 조선혁명에 대한 ‘통일적인’ 기본 입장이나 방침 또는 비전(vision), 규범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12월 테제>는 1945년 9월 11일 재건된 조선공산당의 정치노선의 역할을 했던 박헌영이 기초한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8월 테제)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다. 또 <12월 테제>는 1945년 12월 17일자 《해방일보》광고에 나왔듯이 해방 직후에도 널리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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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세죽(朱世竹, 1901~1953)과 박헌영(朴憲永, 1900~1955)

 

<12월 테제>는 1928년 7월 17일부터 9월 1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6회 대회를 방청한 서울파의 이동휘(李東輝), 엠엘파의 양명(梁明), 화요파의 김단야(金丹冶) 등으로부터 ‘조선문제’에 대한 보고를 듣고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동양서기국 조선문제위원회(이탈리아의 윌터넨Wiltanen, 러시아의 미프Mif, 중국의 구추백瞿秋白, 일본의 좌야학佐野學으로 구성)가 토의하여 작성한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12월 테제>는 조선의 공산주의 그룹들이 표명한 ‘조선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국제공산당 코민테른 조선문제위원회가 ‘종합’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12월 테제> 이전에는 공산주의 그룹들이 제각기 다른 ‘조선혁명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그동안 조선 공산주의운동 내부의 ‘분파투쟁’을 심화시켜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 또는 조선공산당 운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작용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말했듯이 <12월 테제>는 조선 공산주의 그룹 대표와 코민테른을 대표한 조선문제위원회가 ‘합작’한 일제 식민지시대의 통일적인 조선혁명론이었다. 즉 분파투쟁의 한 요인이었던 다양한 ‘조선혁명론’이 <12월 테제>로 ‘종합’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1929년 이후부터 <12월 테제>를 중심으로 삼아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 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세력이 단결해서 조선혁명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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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휘(李東輝, 1873~1935)                         김단야(金丹冶, 1899~1938)

 

그러면 <12월 테제>는 어떻게 하여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 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참여하게 해서 조선혁명운동을 발전시키려고 했는가?

 

우선, <12월 테제>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조선혁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즉 <12월 테제>는 일본제국주의의 경제적 착취, 정치적, 민족적 압박이 야기한 자본주의적 발전의 취약성, 봉건제 및 전(前)자본주의적 관계 온존 등이 조선인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발전을 저지하여 조선인민의 경제적 빈곤, 정치적 무권리, 사회적 불평등, 문화적 부자유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궁핍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조선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이룩하려면 조선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12월 테제>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당시에 어떠한 조선혁명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즉 <12월 테제>는 “제국주의 타도와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은, 그 발전의 첫 번째 단계로서 조선혁명이 지니는 주요한 객관적․역사적 실질이다. 이 의미에서 조선혁명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셋째, <12월 테제>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어떻게 해야 그런 조선혁명을 성공할 수 있게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토지혁명을 하지 않고는 민족해방투쟁도 승리할 수 없다. 민족해방투쟁과 토지에 대한 투쟁을 거의 결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1919, 1926)의 혁명운동은 나약했고, 결국 실패했다. 제국주의 굴레에 대한 승리는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과 노농민주독재의 수립(소비에트 형태로)을 전제로 하며 그를 통해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아래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한다.”

 

이렇게 <12월 테제>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여 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과 노농 소비에트(평의회) 건설’이었다. 더 줄인다면 ‘노농 소비에트 건설’이었다. 왜냐하면 토지혁명을 하려면 그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봉기기관이면서도 권력기관이기도 한 ‘노농 소비에트’였다. 그것이 노동자와 농민을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 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도록 하는 원동력으로 제시되었다. 그것이 조선인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도래(到來)를 위한 조선혁명의 추진력으로 제출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특히, <12월 테제>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조선인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과 노농 소비에트를 건설하기를 원한다면,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뿐만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노동자와 농민의 전위대로서 강철 같은 조직, 공산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즉 “공산당의 복구․강화 없이는 일본제국주의의 속박으로부터 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그리고 토지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지속적이고도 결정적인 싸움은 불가능하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1928년 <12월 테제>는 분파투쟁 속에 있는 다양한 공산주의 그룹을 ‘통일적인’ 정치조직으로 단결시키기 위한 강령의 역할을 했다. 또 <12월 테제>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인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과 노농 소비에트를 건설’해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자와 농민은 <12월 테제>가 제시한 강령과 비전의 진정성을 믿고 일본제국주의 및 이와 연결된 지주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혁명적 노동운동과 혁명적 농민운동 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1929년부터 끈질기게 벌인 결과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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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유(李載裕, 1905~1944)

 

해방 직후 <12월 테제>의 영향을 받은 <8월 테제>에 의하여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고 노동자와 농민은 ‘인민위원회’를 건설하고 공장과 토지를 자주 관리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와 농민의 노력들이 또 다른 제국주의국가인 미국 군대의 군화발에 짓밟힘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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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재건운동, 혁명적 노동운동, 혁명적 농민운동의 한 사례>

 

오늘날에 나는 다음과 같이 원한다.

오늘날에 나는, 힘없고 다양한 이른바 ‘진보’ 세력을 힘 있고 통일적인 정치조직으로 단결시킬 만한 <12월 테제> 같은 성격의 강령의 역할을 하는 ‘것’이 조속히 작성되기를 바란다.

오늘날에 나는,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 전쟁상태, 환경파괴 등으로 민중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본주의(자본과 자본주의국가)를 지양(止揚)해서 민중을 웰빙(well-being, 심신의 안녕과 행복)하게 할 만한 ‘프레임’을 구성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12월 테제> 같은 성격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하루빨리 작성되기를 바란다.

 

나는 다음과 같이 언뜻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나는, 경제적 불평등, 전쟁상태, 환경파괴 등 결코 진(眞) 선(善) 미(美)하지 않는 오늘날의 현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런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나는, 모든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는 그런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제, 앞으로 더 비참(悲慘)해지고 더 참담(慘憺)해 지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다함께 그런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과거 속에서 현재 속에서 찾아내어 되살리고 보편화시키기 위하여 실천해야 하거나, 그것이 안 되면 다 같이 그런 ‘조건’을 창조해 내기 위하여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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