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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1/12
    오랜만이야!(3)
    하노이
  2. 2007/01/12
    새맞이 시기의 반성폭력 담론은 어째서 찜찜한가.
    하노이
  3. 2006/12/28
    나에게 솔직해지기,(5)
    하노이
  4. 2006/12/24
    비열한,(2)
    하노이
  5. 2006/12/23
    대우건설 시설관리노동자투쟁 관련 기사와 영상
    하노이
  6. 2006/12/21
    '복수'의 의미는?
    하노이
  7. 2006/12/21
    KTX 승무원 투쟁 승리를 위한 300일 촛불 문화제
    하노이
  8. 2006/12/20
    KTX승무원 철도공사 직접고용 촉구 2700인 선언(1)
    하노이
  9. 2006/12/19
    말하기, 글쓰기 공포증!(7)
    하노이
  10. 2006/12/18
    페미니스트 정체성의 조화, 벨 훅스
    하노이

오랜만이야!

 

*

 

12월 28일 이후 공개 포스트가 없다는 사실이 맘을 콕콕 찌른다. -_-

여기저기 호기심은 왕성하지만

금세 사그라들어 지속시키지 못하거나

뒷마무리가 뒤숭숭한게 내 단점임을 알기에, -ㅁ-!

블로그에게 미안하기보단, 내게 미안하달까. 큭.

 

블로그 글이란 건 써도 되고 안 써도 되고,

굳이 완성된 글이어도 되고 아니어도 되고,

이런 저런 생각들로 마음을 편히 가져보려고 하지만

그래도오 중요한 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바로 써버리는 일! 인 듯.

 



새맞이 일에 다시, 관여하고 있다.

요우

'다시' 라는 말과 '관여'라는 말이 어쩐지 이상하다.

다른 표현 없을까.

 

흔히 새맞이 주체는 단대 차원의 기획단과,

더 엄밀히 말해서 각 과반의 예비 2학년들을 일컫는 말이라서

단대 차원의 기획단도 아니고 예비 2학년은 더더욱 아닌 나로서

'관여'라던가 '개입'이란 말을 쓰게 되는 거 같은데.

참 애매하다. 어쨌거나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함께'

새맞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시', 라는 말 역시...

마치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이란 느낌이 드는 말이라 찜찜했던 거였군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아예 없지도 않았지.

내가 지금 이걸 해도 되는건가, 이걸 정말 하고싶어하는걸까, 하는 생각들.

 

그렇지만, 요즘 친구들과 일을 하며 드는 생각은, 역시나,,

'누군가를 위해서' , '해야할 것만 같아서' 라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이 어떤 것인지 더 잘 알고 싶어서',

일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하고픈 일을 찾아나가며 하고 있는 일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할 때,

앞으로의 길도 보일테니까.

 

으극극 어쨌거나, 예전처럼

한 가지 일에 나의 '전체'를 버닝-올인-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할 수 있었으면.

(완벽주의 이제는 좀 완전히 떨어져나가버려!! T_T)

요리조리 잘 해보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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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맞이 시기의 반성폭력 담론은 어째서 찜찜한가.

[2007 새맞이 프로젝트 컴티에 올린 글]

 

 

새맞이 시기에 범람했던 각종 세미나 커리와 교양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반성폭력'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텀들이 참 많다는 걸 발견했다. 대부분이다. 새맞이 시기에 여성주의는 반성폭력과 거의 동일시되고 있었다.  

 

어째서 였을까.

 

새로운 관계맺음, 이제 처음으로 시작하는 관계맺음이 많은 새맞이 시기에 반성폭력이라는 주제가 가장 시급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라는 일반적인 이유를 생각해내보지만, 

 

또한, 성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캘린더들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여성주의라는 담론, 반성폭력이란 주제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 새맞이 시기에 반성폭력이란 주제를 심화, 확장시키고자 하는 활동가적 마음을 떠올려보지만,

 

그런데도 어딘가 모를 찜찜함.



 

- 공동체라는 (남성적) 주체와 새내기 (여학우)라는 피해자의 이분법의 성별화

 

기존의 새맞이상에 대한 논의들을 살펴보면서, 새맞이 시기에 다양한 새맞이 주체들 사이의 차이들이 드러나기 보다는 '공동체'의 존속을 필요근거로 집단적 주체를 가정하게 되고 과정/결과적으로 단일한 공동체의 목소리만이 주로 재현된다는 것을 느꼈었다.   

 

이러한 기존의 새맞이 상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때, 공동체의 건설 혹은 재구성이 (공공연한 동시에 암묵적일지라도) 위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차지하고 있는듯한 새맞이 시기에 여성주의들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논의되는 주제가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반성폭력이라는 건 의미심장하게 여겨진다. 어딘가 찜찜하다. 아주아주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새맞이 시기 신준위에서 논의되는 반성폭력이란게, '우리 공동체에 일어나면 골칫거리/말썽/수치스러운 일이 될 성폭력 사건을 기왕이면 미리 예방하면 좋겠다', '우리 공동체에 들어올 새내기 학우들은 되도록이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의 인식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된다.

 

주체와 피해자라는 이분법, 그리고 이러한 이분법의 성별화는 남성 주체의 이해()와 환상 속에서 구성된 '침묵하는 피해 여성'이란 관념을 낳기도 한다(이 문장은 정희진 씨 글에서 인용). 새맞이 시기 새맞이의 주체-새맞이상 논의를 바라보며 느꼈던 새맞이 시기에 형성되는 단일한 목소리로서의 '공동체'라는 집단적 주체-와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새내기로 이분화되고 있지는 않은가. 동시에 이 이분법은 잠재적 피해자인 새내기를 주로 새내기 '여'학우로 사고하게 됨으로써 성별화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있다.   

 

 

 

- 성별화된 이분법의 의미와 가려지는 것들

 

여성들이 공동체에서 맡아왔던 역할들, 차지하는 부분들은 셀 수 없을만큼 많을 수 있고, 절반 이상의 중요함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공동체에서 여성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틀이란 건, 기껏해야 '여성=성폭력의 잠재적 희생자/피해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아닐까. 피해자인 여성만 보인다는 것,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 피해자의 목소리만이 그들의 귀에 쉽게 들릴 수 있고,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슬픈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특히나 지금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여성들을 재사고하는 형태의 반성폭력 담론, 여성주의의 논의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에 새로 들어올 '새내기 여학우'가 이상적인 잠재적 피해자상으로 굳어져, 이들을 희생양/인질로 삼은 채, 기존의 가부장적 인식에 편승해서 반성폭력 담론의 확장을 이루고자 하는 게 아닌가(그런 전략이 과연 가능한지가 의문이지만). 그게 찜찜하고 무서운 것이다. (실제로, 새맞이 시기에 '여자 신짱'/'남자 신짱'이란 이름으로 대표되는, 이와 유사한 각종 성역할 분리/분업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런 분리/분업들이 기초하고 있는 생각에서 가부장적 신화와 공모할 위험성이나 여성노동에 대한 성격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습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만 않는다면, 여성들은 공동체 내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생활해나갈 수 있나? 성폭력적 상황에 대한 학습과 예방의 노력은 최소한의 안전망 정도가 아닌가? 새맞이 시기 반성폭력이란 주제를 가장 많이 택하게 되는 바탕의 생각이, 공동체 내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나타나는 순간, 공동체는 고난의 과정을 겪는다는 생각하는 것, 피해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 공동체의 치부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것, 성폭력 사건이 공동체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를 되짚어 보자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생산해냄으로써 공동체의 분열을 꾀한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음모론적인 이야기들이 비공식적으로는 여기저기서 공감받는 맥락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분법에서 각각의 범주들은 주로 겹쳐지지 않는 상호배타적인 것으로 설정되기에, 위와 같은 이분법은 공동체 내의 구성원으로서의 여성들의 문제, '성폭력'이란 개념논의만으로 설명해낼 수 없는 성별 권력관계를 보이지 않게하거나 개인간의 관계에서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과 동시에, 새내기 여학우들을 피해자화하기 쉽다는 데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반성폭력 세미나를 하면서 피해자화의 함정을 조심하자는 내용을 아무리 강조한다 한들, 새맞이 시기 위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 속에서 이미 새내기 여학우가 피해자로 가정된 채 각종 논의와 실무들이 진행되고 있다면, 틀 자체가 이미 그렇다면, 세미나에서 피해자화에 대한 글을 몇 개 더 읽는다한들 그 의미가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정희진씨는 자신의 글에서 '피해자화가 여성에게 권력을 부여하기도 한다. 여성들이 '피해자 정체성'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피해자일 때만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예전에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나를 포함하여 여성주의자인 어떤 친구들이 새맞이 시기에 반성폭력 담론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피해자 정체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과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이 시기에는 분명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장을 만들기만 하면 '들어주려는/듣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다. 그런데 그건 우리의 이야기가 피해자의 목소리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나 자신만 해도 새맞이 시기 각종 반성폭력 세미나나 반, 문화팀 논의에서 이전 새맞이 시기의 내 '피해'들을 들추어 내어 예로 들면서 정당화를 시도했던 적이 많았다. 당시의 나 자신을 '새내기 여학우=피해자'로 고정시켜서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여겼던 느낌도 든다. "그때의 나같은 일을 겪는 새내기 여학우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나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맥락보다는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시키면서 당시의 '피해'상황과 행위에만 주목했었던 게 아닐까. 그 때와 '같은' '상황과 행위'만 벌어지지 않으면 되는 건가. 비록 내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내는 게 괴롭지만 어쨌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실무에 반영이 된다는 데서 이를 '권력'이라고 여기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이것은 권력이었을까. 왜 나는 내가 내는 피해자 목소리에 스스로 소외되는 느낌과 무언가 나를 속이는 느낌을 계속해서 가져야 했던 걸까.

 

권력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미루고 또 생각해보자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있는 새내기 여학우를 위해서 그런 말들을, 일들을 해왔던 것일까. 새맞이 시기 반성폭력 논의들 중에서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스스로가 치유되고 있다고 여긴 적이 거의 없었다. "다만 이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올해 또 내 눈앞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나 비슷한 일을 듣는 것이 너무 두려워, 그 두려움이 내 활동의 주요 원동력은 아니었나.  

 

그랬기 때문에, 새맞이 시기에 새내기 여학우들에게 느끼는 어떤 종류의 '배신감'이 컸던 것은 아닐까. 내가 신준위를 할 때, '쟤는 저게 불편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나 여성주의에 덜 우호적인 여학우들을 볼 때에 드는 섭섭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새내기는 대학의 여성주의 담론을 반성폭력 내규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다. 자신을 희생자/피해자의 틀과 일치시킬 수 없는 목소리들에도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동시에 틀 자체를 다시 검토하고 재구성해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한다. 내 일처럼 여기고 안심할 수 있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이건 내 일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반성폭력 내규 속 '여학우'에 자신을 대입시킬 수 없는 채 여성주의에 반감을 가지게 되는 목소리의 맥락도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엘리트 학생으로서의 반감 혹은 단지 여성주의의 정치성으로 인한 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개인 정체성에서의 차이를 부정당하고 젠더로 환원된 여성들의 목소리일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자칫 새맞이 시기의 반성폭력 담론들과 학내 반성폭력 운동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반성폭력 운동의 의미가 축소/왜곡되어 이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는 새맞이 시기의 반성폭력 이란 주제가 범람하는 현상을 학내 '반성폭력 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위치시켜서 생각하기보다는 사회대 새맞이에서 '공동체의 시선'으로 여성주의에서 반성폭력 이란 주제를 절단하여 분리시키게 되는 맥락으로 생각해본 것이다.  

 나는 이 글을 겨울딛기 디딤이 친구들과 작은 세미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나와 그/녀들의 찜찜함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쓰게 되었다. 이 글은, 어떻게 보면, 지난 새맞이 과정에서 새맞이 주체로서의 나의 생각/행위들에 대해 스스로 비판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앙금져 남아 있는 내 감정들을 풀어내보려는 노력이기도 한 것 같다.

 새맞이 시기에 이루어지는 반성폭력 논의들은 학내 반성폭력 운동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으며, 이 시기의 모순이나 문제점들이 개인 주체들의 역량 부족만은 아니라는 것, 반성폭력 운동 자체 내의 여러 논쟁점과 딜레마들과 맞물려 있다는 것-그리고 이것은 또 그 운동이 가진 내부 모순이라기보다, 가해자 중심의 사회, 여성들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덧붙여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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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솔직해지기,

 

 

*

 

"이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가능하겠어요."

 

기린언어워크샵 도중에,

관찰-느낌-욕구-부탁 모델의 연습을 위해 몇 분이 자원해서 아침 님과 이야기 하시는 걸 함께 지켜 보던 옆 분이 내뱉으신 말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스스로가 매우 부끄러워져서 나 혼자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눈 주위로 피가 쏠려 금새 왈칵하고 밀려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까지의 워크샵이 흥미로웠고 기대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웠던 건 사실이지만,

일기를 쓸 때, 일상의 기록뿐만 아니라 내 심경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마지막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일기 쓰는 일을 마칠 수 없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초조함과 허전함, 꺼림칙함이 계속 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자칼의 언어에 대한 기린언어의 문제의식이나 질적인 유대 관계와 대화자 서로의 만족을 위한 기린언어가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머릿속에서도 가슴속에서도 너무너무너무 공감하고, 이를 위한 방법들을 얻고 싶었고, 노력해보고 싶었지만, 맨 위의 저 말을 듣는 순간에 나는 내가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불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과연 내가-자기 자신에게 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이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불편했던 게 아닐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

솔직해져야 할 자기 자신이란 걸 발견한지가 얼마 되지 않는 나로서는,

솔직해지기까지 해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대강 짐작해보자면 작년 가을과 겨울 부근부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내가) 해야한다고 여기는 일에 더 얽매여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게 있기나 한걸까 라고 생각했을 때.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은 내게 분리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왔던 이전과는 달라지게 된 때. 오직 나 혼자 있을 때-나의 익명성을 담보받을 수 있을 때-만 편안함을 느끼고,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고 여기는 그만큼 외로웠을 때..

 

바빠져야 했다. 바쁘면 어떤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이건, 나를 볼 수 없어도 알아서 이해한다. 바쁘면 약속을 잡지 못해도 이해해준다. 마땅한 공적인 이유가 없이는 약속을 거절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나는,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해낼 자신이 없었고, 바빠지는 길을 택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 순간들에서도 나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틈들이 있었다.

 

혼자서 나에 대해 하는 생각은 대부분 무성한 가지를 뻗치고 뻗쳐 결국 뿌리 근처에 처박히거나, 공간 가득 단어와 문장들로 채워나가 보지만 물 받아 놓은 욕조 속에 구멍뚜껑을 열어 놓은 듯 고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나를 관찰하기. 특히 타인과 접촉할 때의 나. 직접 만나 이야기하든, 문자를 주고받든, 전화통화를 하든, 편지를 쓰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든..

 

지금 생각하면 딱히 충격적이라 할 것도 없는데, 그런 일들을 반복하면서 내가 충격받아가며 알게 된 게 많았는데 그 중에 최고는, 대화를 할 때, 나라는 사람이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를 내가 봐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혹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방어적인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져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잊게 되는 때가 많았다.

 

(지금 나는 포스트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어서 당황 중..)

 

사람들이 좋았지만 사람들을 대할 때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울렁증, 풀리지 않는 긴장, 답답함. 점차 불균형한 것이 보이는 관계들에서 나는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관계에서 나는 없었다는 걸. 아니, 있었겠지만(그래야 관계가 생성되니까..) 나는 무시하고 있었다는 걸.

 

그 즈음 읽었던 한 책에서 아래의 문장을 봤을 때, 한참을 멈춰서 바라보았던 게 기억난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속이지만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인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_- 오래되서 흑)

 

곰곰이 생각해보고 관찰해봤을 때,

그동안 나는, 내 안의 많은 욕구들, 내 안의 많은 목소리들을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거라고, 그래서 단 하나의 욕구와 목소리만이 진짜라고 진실이라고 진리라고 최고선(善)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게 아닐까 싶었다. 

더 기가막힌건, 나 자신은 진심으로 '몰랐다'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기억을 재구성해보면 딱히 몰랐던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인정하지 않았을 뿐.

 

'보여지는 나'와 '관찰하는 나 혹은 보여주는 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고,

그 불균형한 관계가 길어지다 보니 우울했던 게 아닐까.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게 정말 싫어서,  타인을 무척이나 배려하는 듯이 행동하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타인을 배려해야지만이 마음이 편할 수 있는 나를 가장 배려하려고 노력했다는 것, 상처주는 게 싫다고 중얼대는 마음에는 내가 상처받는 게 너무 두려워서 라는 걸 인정하고 나서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었다.

 

기린언어워크샵을 들으면서, 아직 나는 많이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내가 스스로의 다양한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면, 내 발화가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앞으로

나의 다른 목소리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와 나의 평등한 대화를 위해서 내 욕구들을 위계짓지 않은채 다양함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다. 

 

기린언어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실천하려고 한다는 건,

'착해지는 것'이나 '착해지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나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 내 생의 의지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폄하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언젠가 언니네글에서 봤듯이 이게 정말 개인적인 방식이라 할지라도 작디 작은 개인에 불과한 나로서는 '부조리하고 비열한 일상'에 전염되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나름의 저항, 절실한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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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적극적으로 참여 하지는 못해도,

그러니까,

우리 '함께' 하지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만큼,

'도와'주도록 노력할게."

 

 

*

 

비열한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해. 

내 가슴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내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라는 말도

스스로를 속이는 기분이 들어.

 

잠시만 짜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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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시설관리노동자투쟁 관련 기사와 영상

KTX 승무원 300일 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도중에

대우건설 건물 앞 천막이 용역 깡패들에게 침탈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화제를 마치고 규탄집회나 경찰서 항의방문이라도 있으면 함께 하려고

처음으로 대우건설 건물 앞을 찾아서 그 분들을 보았다.

 

건물 앞 공기 중에 여전히 분노와 한숨이 섞여 있는 듯했고

허탈한 표정으로 건물 앞 계단에 앉아 계시는

여러 중년 여성 노동자 분들을 뵈니까,

마음이 따끔따끔거렸다.

 

그 동안 농성 하고 계시다는 거 알면서도,

단지 속으로 안타까워할 뿐, 과정이나 이유들에

관심가지지 못했던 것이 죄송스러웠다.

 

소모임 친구들과 같이 공유하려고 기사와 영상을 모으면서

읽고 보고 있으려니 .. 더 가라앉는다.

 

 

 

 

 

 

 

 

대우건설 시설관리노동자 관련 기사 

 

대우건설, 시설관리노동자들 일방적 계약해지 2006. 2. 23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피플파워 2006. 2. 25

대우건설, 하청 노동자 노조 파괴 공작 드러나 2006. 11. 23

"사람답게 살게 해준 노조, 뺏길 수 없다" _대우건설의 노조파괴 전력에 맞서 투쟁하는 늙은 노동자들 2006. 11. 23

"대우건설, 하청업체 노조 와해 직접 관여" 2006. 11. 23 (프레시안)

대우건설, 24일 0시부로 조합원 전원 계약해지 2006. 11. 24

투쟁, 한 달 그리고 첫 눈 2006. 12. 4

대우건설, 용역 150명 동원해 하청노동자에 폭력행사 2005. 12. 7

 

 

관련 영상

 

이것이 몇십년 일한 보답입니까 -대우시설관리노조 파업투쟁출정식 2006. 2. 24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2006. 2. 27

우리는 청소한 죄밖에 없어! -사장실 항의방문 2006. 11. 25

대우건설빌딩 비정규직 농성장 용역 침탈 2006. 12. 7

1분 거리의 경찰, 용역 침탈에 감감 무소식 2006.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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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의미는?

 

언니네 글 [복수도 치유다, 하드캔디]  와 관련한 글

 

 

'복수'라고 하는 게 '내가 받은 만큼, 상대에게 되돌려준다'라는 의미, '받은 만큼 상대에게 되돌려주었으므로 이제 뒤끝없이 끝이다'라는 류의 의미라면, 나는 그 복수라는 의미가 남성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언니네글에서처럼, "'네가 한 짓이 나에게는 이런 고통을 주었다', '네가 한 짓은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나쁜 짓이다'는 것을 (가해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위와 같은 복수의 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와 소통이 중요한 여성주의에서는, 개인의 성장이나 치유, 혹은 변화가 결코 혼자서만 이루어 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며, 서로 오고가는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일방적으로 100과 100이 오고가는 그 무엇의 복수개념, 갈 때는 니가 피해자, 올 때는 내가 피해자, 식의 양분된 복수개념은 여성주의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남성적 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해와 피해, 상처가 뒤섞인 상태에서 어느 누군가를 어떤 상태로 고정시키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폭력적인 사건에 대해서, 그 상황을 함께 했던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나는 그 상황에서 이런 고통을 느꼈어요'라고 알리는 것, '당신은 같은 시공간에 있었던 나의 경험이 당신과 어떻게 달랐는지 아는 건가요'라고 묻는 것, 말로 해서 못알아먹는다면 다른 수단이라도 써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느낌을 공유시키는 것. 그런 것들이, 일단은 소통의 시도인 셈이 아닐까? 자신의 몸에 각인된 경험과 너무나 맞지 않는 언어적 기억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한 번 그 경험을 정리해내기 위한 시도로서의 소통이 아닐까. 그 소통의 시도의 경우에, 좀 다른 이야기지만, 만약 권력관계에서 보다 약자의 위치에 놓인 사람이라면 '이성적인' 언어로서의 소통 시도가 얼만큼 가능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게, "약자의 최종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폭력뿐'이다", 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애초에,

(대부분의) '그'들은 자신의 행위의 폭력성에 무감각하고 상대방이 나와 경험이 다를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으며 자신과 '다른' 목소리의 피드백이 존재할 수 있다라는 걸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대로부터 시도된 소통이, '어이없어서',

"이건 내게 폭력이야"라고 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으. 언어의 부재?)

'그'들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테지만, 그 때의 자신의 경험과 상대의 경험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주로 차별적이었겠지만)에 대해서나 상대가 이렇게 소통의 시도를 하게 되는 주목적-어쩌면 소통 그 자체일수도 있겠지만-보다는 상대의 행위 자체를 '가해'로, 자신을 '피해자'로 고정시켜버리는데서, 그쳐버리기 쉽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     

 

언니네에서는 하드캔디 속 나이 어린 여성의 행위에 대해서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폭력의 주체가 뒤바뀐 낯선 구도에 불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성이 이유있는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는 것은 이유없는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니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폭력의 주체가 뒤바뀌었다고 해서, 행위의 의미를 담은 맥락이나 효과에 대한 판단까지 동등하게 될 수 있는 건 문장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흐으.

 

여기서 또 엉뚱하게 생각나는,

학내 성폭력 해결과정에 있어 '원칙'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중 하나인

'피해자 중심주의'는,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상대방에게 소통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사람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 들리게 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의 의미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칼날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피해자 제멋대로주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대책위나 비대위의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처벌'이란 부분이 '복수'의 남성적 의미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오해'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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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 투쟁 승리를 위한 300일 촛불 문화제

 

“사회적 약자 돌아보는 나눔 경영, 철도공사가 몸소 실천해야”


KTX 승무원 투쟁 승리를 위한 300일 촛불 문화제


- 12월 22일(금) 늦은 6시 세종로 사거리 -



“국민의 다수가 철도공사는 틀렸고, KTX 승무원의 주장이 옳다고 합니다. 노동계와 여성계는 물론이고 학계, 시민, 종교, 법조, 문화예술 등 각계각층에서 KTX 승무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정부만 입을 닫고 있고, 철도공사는 모르쇠와 호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합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 12월 19일, KTX 승무원 문제의 연내 해결을 촉구하는 각계각층 연대 선언 중 -



지난 19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KTX 승무원 문제 연내 해결을 촉구하는 2000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승무지부에서는 2,000명을 훌쩍 넘어 2,828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연대 선언에 참여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을 직접고용하여 시민들의 바램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바로 이튿날, 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구세군 종소리와 ‘나눔’ 경영”이라는 제목으로 한 언론사에 <기고>를 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약자에게 눈길을 돌리는 마음 씀씀이가 살갑다며, ‘나눔’ 경영이라는 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KTX를 타봤다는 어느 보육원생의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기차가 싣고 가는 것이 단순히 사람과 화물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기차는 어려운 이웃들의 꿈도 함께 싣고 달리는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기업들이 더 많은 ‘나눔 경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를 기대한다며 기고문을 마치고 있습니다(출처: 네이버 뉴스).

옳은 소리입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 그러나 이철 사장이 잊고 있는 것은 ‘사회적 약자’는 바로 당신 옆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객들의 꿈을 실어 나르며 이들의 안전을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거리에서 외침을 한지 어느덧 300일을 맞이하는 승무원들은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는 철도공사가 내몬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들은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하얀 전지에 소망 한 자락을 남기고, 야광봉으로나마 ‘직접고용’을 만들어내고, 간절한 염원을 담아 풍등을 날리고, 노란 풍선에 꿈을 실어 보내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오는 금요일 세종로 사거리에서는 KTX 승무원 문제가 연내에 해결될 것을 기원하며 2000인 선언에 동참했던 그 마음으로, 새해에는 거리에서가 아니라 KTX에서 승무원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노란 풍선에 소망을 담았던 그 마음으로 열한 번째 촛불을 밝힙니다. 촛불문화제에 함께 하셔서 승무원 직접고용을 위한 의지와 연대의 힘을 모아주시기를 요청합니다. 감사합니다.



◎ 일시: 2006년 12월 22일(금) 늦은 6시~

◎ 장소: 세종로사거리 (동아일보사 맞은편, 동화면세점 앞)


◎ 프로그램

  ♠ 문화제 알리기

  ♠ 여는 마당 공연 : 풍물패 ‘삶터’

  ♠ ‘다시 시작이다’ : KTX 승무지부 조합원들의 희망 글 & 공연

  ♠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 공연

  ♠ 세종문화회관 합창단 공연

  ♠ 꽃다지 공연

  ♠ 문화제 정리


(문의: KTX 승무지부 010-7511-4868 / 여성노동네트워크 011-9894-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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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승무원 철도공사 직접고용 촉구 2700인 선언

 

 

2700인 선언에 다녀왔다. 괜시리, 내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울했다.

 

공기업이란 곳에서, 여성인력에 대한 차별적 (무)의식-주로 여성이 맡게 되는 '서비스'업무에 대해, 단순노동이나 없어도 되는 '주변'업무라고 여기는 것이나 '젊고 예쁜 여성'을 단기간 고용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등의-과 비정규직에 대한 폭력적 대우-불법파견을 합법도급으로 포장하는 것이나 노동환경의 열악함이나 느닷없는 해고통지 등의-를 여지없이 드러내면서도, 그런 정부에서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키니 그 법을 믿을 사람이 대체 누가 있을까. 그런 정부니까, 여성부가 여성가족부, 여성청소년가족부가 되어가는 그 기이한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더구나,   

여승무원의 외주화까지 추진 중이라니, 그야말로 철도공사와 정부만 알고 있는 그들만의 '원칙'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일까.

 

선언 장소에서 받은 새마을호 여승무원 관련 리플렛에 적힌, '저희는 정규직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고 철도공사에 직접고용되기를 원합니다..'류의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따끔따끔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각계 각층의 유명인사들이 KTX 승무원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리는 행사임은 맞지만, 사회자와 여성노동네트워크의 조주은씨, 중간에 승무원의 편지 낭독과 새마을호 여승무원의 연대발언 이외에는 각 단체의 대표라고 나온 사람들이 모조리 다 남성들이어서,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인지,

 

이 문제가 어째서 여성'노동'으로만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인지(젠더프리한 노동개념이란 허구라고 생각하지만 이른바 '노동'이라고 불리는 어떤 개념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여겨진다), '여성노동'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내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과연 가능한지 자꾸 의심하는데 스스로 지쳐서인지,   

 

도로 행진 허가도 내주지 않고 인도로 가겠다는 평화 행진을 막아선 경찰들과 술래잡기 하듯 뛰어다니느라 다리가 저릿저릿해서인지,  

  

예쁜 노란 풍선에 마음이 설레서 열심히 소원 적어서 날릴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손에서 스스륵 풀려 먼저 날아가 버린 것이 내심 속상해서였는지,

 

조금 우울했다.

 

그래도..

날아가는 풍선들은 예뻤어.

모두다 하늘에 닿을 수 있길.

 

다음 번엔 이만인 선언, 이십만인 선언, 이천만인 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2700인 선언 관련 기사

[포토뉴스] 2007년 행복하게 일하겠습니다! (참세상)

각계인사 2828명 KTX 승무원 문제 연내해결 촉구 (프로메테우스)

"새해에는 우리의 일터 KTX로" (오마이뉴스)

[사설] 고속철도 승무원 문제, 해 넘기지 말아야 (한겨레)

 

*선언 다녀온 여름의 블로그 포스트 http://blog.jinbo.net/mbc112/?pid=82

 

*KTX 승무원 투쟁 관련 정보 얻을 수 있는 곳

승무지부에서 얼마전 오픈한 홈페이지 www.ktxcrew.or.kr

여성노동 네트워크 http://home.freechal.com/joynet

 




 

          <선언문>


문제 해결을 계속 거부한다면 이철 사장이 먼저 퇴진해야 합니다

  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민주화 전력을 훈장처럼 달고 있습니다. 그를 소개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을 상징하는 “사형수 이철”이란 단어가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압니다. 이철 사장이 가슴에 달고 다니는 그 훈장이 노동자의 인권과 생존권을 짓밟는 잘못을 가리기 위한 허식일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문제가 계속되면 승무원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철도공사 이철 사장이 국정감사장에서 한 말입니다. KTX승무원 문제가 1년 이상 해결되지 않아 철도공사 경영진의 가장 치명적인 골칫거리가 되었다지만 최고경영자로서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승무원은 열차안전의 최후 보루입니다. 승객의 안전과 편안한 여행을 마지막으로 책임지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 승무원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사자인 승무원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향한 협박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KTX열차 자체의 안전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지적이 있음에도 승객의 안전을 책임질 승무원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고 하니 “낙하산 인사” 이철 사장에겐 ‘철도와 승객의 안전’은 별 관심사항이 아닌가 봅니다.

  “KTX승무원을 직접고용할 수 없는 것은 ‘원칙’의 문제이다.”
  이철 사장은 언론 인터뷰 때마다 강조합니다. '대중적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 사장이기 때문인지 “어떠한 압력에도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그럴 듯한 말로 KTX여승무원을 직접고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거의 부재를 피해가려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철 사장의 ‘원칙’의 기준이 “공기업의 경영효율성이나 공공성 강화”가 아니라 “정치인 이철의 입지 강화에 유․불리함"에 있기에 그는 공기업 한국철도공사의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KTX승무원 문제의 연내 해결을 촉구합니다.
  국민의 다수가 철도공사는 틀렸고, KTX승무원의 주장이 옳다고 합니다. 노동계와 여성계는 물론이고 학계, 시민, 종교, 법조, 문화예술 등 각계각층에서 KTX승무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정부만 입을 닫고 있고, 철도공사는 모르쇠와 호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합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만약 이철 사장이 끝내 문제해결을 거부한다면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이철 사장 퇴진요구의 거센 목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정치인 이철"을 거부하는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것입니다.  

                                            2006년 12월 19일
              KTX승무원 문제의 연내해결을 촉구하는 선언 동참자  2735명 일동
                   (늦게 도착한 선언 참여자 명단이 일부 누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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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글쓰기 공포증!

 

굳이 긴 글을 쓰게 하거나 굳이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던 대학교 이전 시기를 거친 나는, 대학에 들어와서 내가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친구들, 가족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랜 시간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경우들은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서(혹은 들어오기 위해서) 내가 요구받은 말하기, 글쓰기의 경우는,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였던 것 같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혹은 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야만 하는 말이나 글을 요구하는 느낌? 나와 관계된 부분이 너무나 적어보이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가 타인이나 다른 집단에 대해 월권을 행사하는 느낌의 말하기와 글쓰기를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잘' 말하거나 '잘' 쓰고 싶다는 욕망, 상대방에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공동체에서나 수업에서 이른바 '잘'한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것들을 기억해보건대,

 

구체적 년도와 역사적 사례들, 유명한 학자의 논문에서 발췌 인용들을 곁들어서

비교적 너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논리적으로 허점이 거의 없는,

그런 것들.

덧붙이자면,

자신감 있는, 여유로운 태도와 확신에 찬 말투를 가진다면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된다.

 

나는 그렇게 말하거나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떤 글을 읽을 때 내 경험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골몰했고, 글에 대한 일차적 감상의 주된 내용이 내 경험과의 연결이었다.

 

만약 누군가의 말/글이 나에게 있어서는 좀 아닌 것 같다, 다른 것 같다 라는 느낌이 들 때,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이유'를 '누가 듣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만 그것이 진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것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경험에 대해서 말/글로 표현하고 싶을 때는, 너무 '개인적'이고 즉홍적이고 소소한 말/글이 되어서,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았고, 실제 내 경험과의 간극이 커져서 오히려 나를 이해하지 못하게 할까봐, 그게 두려워, 쓰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다.



 

공개된 말/글이라고 했을때,

그건 세미나 자리나 수업 시간 뿐만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비슷했다. 약간 '덜' 하다면 덜 한 측면이 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는 오프라인과 거의 마찬가지로 무서웠고,

그나마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을 수 있는' 블로그나 미니홈피의 글 게시도

무섭고 두렵고 꺼려졌다.

 

개인적이라고 여겨지는 공간이기에 더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게 나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끄적임, 이 일기, 이 글을 가지고 나를 판단하면 어쩌지. 간혹 내가 쓴 글을 보면 나 스스로도 수용할 수 없는 내 자아의 일부분을 보게 되는 때가 있었고 그런 내 자아의 일부분을 비록 친밀한 관계의 몇일 뿐이더라도(친밀한 관계가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보이도록 하는 건 무서웠다. 나의 어디까지를 수용해줄까 사람들은, 이런 느낌. 내가 쓰는 이 글이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는 않을까, 우리 관계에 흠집을 내지는 않을까, 나는 그럼 그 사람이 보고자 하는 나만을 보여야 하는 걸까, 이런 걱정들.

 

 

여성주의를 접하고, 여성주의를 하는(doing?)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내 말과 글도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나 스스로를 용납할 수 있는 관용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도 말/글은 많이 두렵다.

 

 

내가 가진 말과 글에 대한 공포감을 굳이 내 정체성의 여성이란 부분에 모두 환원시키고 싶진 않지만, 그냥, 얼마 전 방학 중 오픈 세미나를 위한 내부 프리 세미나 커리 였던 김성례 씨의 <여성의 자기 진술의 양식과 문체의 발견을 위하여>라는 글을 읽으면서 문득 위와 같은 생각들이 마구마구 들었다.

 

 

블로그에 글쓰는 거에 대해서,

아직도,

별거 아닌 포스트 하나 쓰고 하루 종일 노심초사하지만-_-

지금까지 조금씩 극복해 온 것처럼,

점차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고 노력해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말, 내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길. 부디.

 

 

 

 

 

 

*읽었던 글에서 조금 발췌

 

- 여성은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런데도 왜 이야기를 하려 하는가? 말 안하기 위해 입을 꼭 다물고 비트는 몸짓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여성이 입을 열어 자신의 삶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해버리는 것은 그러한 말하기에 대한 거부감과 부자연스러움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하나의 반역 행위이다.

 

- '말하기의 두려움'이란 사실 거짓말이나 막힌 말의 횡포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남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습관적으로 해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느껴진다. '글로 말하기'에 이미 익숙한 배운 여성들에게 이러한 진실의 은닉은 더 여실하게 드러난다.

 

- 언어가 없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 말이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묘사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종종 자신의 말 서두에 붙이는 단서에서 나타난다. '내가 뜻하는 것은', '알다시피', '정말' 같은 삽입구는 자신의 말이 현실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지나친 걱정 때문이지만 이러한 걱정은 말을 막히게 할 뿐이다. 이와 같이 자기를 두려워하고 존재를 숨막히게 하는 억압 문화는 언어 공포증을 낳는 것이다.  

 

 

 

덧/

필요없는 덧말일 수 있지만,

내가 말하기와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과 더불어서,

난 타인이, 특히 나와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의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해서 약간의 거부감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그렇게 말이나 글은 잘하면서 대체 행동은 왜 그런거지?'

라는 식의-_- 실망감을 느낀 적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말과 글을 잘한다고 여겨지도록 만든 사람들이 주로 남학우들이었다는 점에서, 내 거부감은 더 짙어졌는데.

 

말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라, 라던가 나는 말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지, 라는 강박이나 완벽주의까진 아니었지만 말과 글이 중요한만큼, 바로 그만큼, 허무하다는 생각때문에 거부해왔던 것도 있었다.

 

말을 하는 것, 입술을 여는 것, 펜을 쥐는 것,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액션인 순간, 혹은 그런 집단의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만 멈춰서는 안되는 순간이 있고, 그런 순간의 어떤 집단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좀만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아.

 

여기에 대해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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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정체성의 조화, 벨 훅스

 

수업 종강일에 학생들의 기말 페이퍼 초안에 대한 코멘트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청강생이므로 기말 페이퍼에서 면제되는 특권을 얻어서, 다른 학생들에게 약간의 부채감과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그리고 사실은 안도하는 마음과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의 기말 페이퍼가 흥미롭고 신기했는데(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걸까!) 그 중에서도 내 관심을 가장 끌었던 것은 벨 훅스의 지식인론과 교육론을, 그의 페미니스트 입장론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분석한 페이퍼였다.

 

수업 시간에 벨 훅스의 글은 "Choosing the Margin as a Space of Radical Openess" (1990) 라는 몇 페이지 안되는 짧은 것으로 하나 읽었었는데, 분량도 짧고 꽤나 선동적인 글(?)이라서 그의 페미니스트 입장론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제대로 읽어가지 못했다는 게 중요) 페이퍼를 쓰신 분은 벨 훅스를 주요대상으로 잡으면서 단행본을 많이 구해 읽으신 것 같았는데, 난 내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즐거움과 더불어서, 벨 훅스를 읽는 방식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완성본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다. (청강생으로, 나는 수업에 기여한 바가 매우 적고, 주로 얻어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많다.,,-_ㅜ)

 

흑인/여성/지식인/페미니스트/교육자 로서의 자신의 입장/위치들을 분명히 밝히고, 특히 흑인-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강조하면서, 이처럼 주변(margin)에 위치한 사람들이 가지는, 세계에 대해 총체적 인식, 저항적 인식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벨 훅스의 입장론을, 그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형태가 'I'와 'WE'라는 인청대명사의 의도적인 사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보편을 자처하는 듯이, 주어를 생략하는 각종 문장들과 '우리'라고 지칭하고 있는 게 대체 어떤 사람들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도록 모호하면서도 마치 한 집단을 대표될 수 있다고 여기는 문장들에게 질려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 오류와 왜곡이 두려워서 내가 글이란 걸 쓸 때는 언제나 '나'라는 주어를 주로 사용함으로써 내 위치를 밝혀야만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경험들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 때, 주어인 '나'를 주로 쓰는 방법이나 내 입장이 내 '경험'에서 나올 수 있었음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방법은, 곧잘 '개인적인 일기' 수준의 성토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었다. 특수한 경험으로 넘겨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되는 것이, 내 방식만의 잘못이거나 애초에 의도한 바가 옳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언제나 고민이 되었다. 소문자, 복수로서의 여성womyn을 이야기하는 여성주의는, 집단으로서의 여성 의미와 집단에 속한(혹은 속할 수밖에 없는) 개인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는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어느 한쪽을 축소시키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벨 훅스는 자신의 가진 정체성, 특히 흑인 여성으로서와 지식인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 모두를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를 과감하게 하는 사람인데 화자인 벨 훅스는 자신의 글에서 각 집단에 대한 태도에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우리'라는 동일한 인칭대명사를 사용해서 locate하는 중인 자신에 위치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속한 여러 집단의 차이, 간극에 대해서 직시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으로 모두 포섭하는 데는 성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뭐, 이러한 벨 훅스에 대한 생각은 페이퍼에서의 분석을 바탕으로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본 것이고 벨 훅스의 단행본들을 직접 더 읽어봐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으으 어렵다. 언제나 그렇듯 뱉어 놓고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더 헷갈린다.

 

선생님께서 그런 말을 하셨었는데,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반드시 지식인, 혹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과 중첩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는 데 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최근에 포기했는데(반드시 대학원을 가야만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로 밥먹고 사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 그것과 관련해서 내 머릿속을 마구마구 엉클어 놓던 생각들에 대해서 약간은 빛과 같은 말이 되었다. 흑.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는 끝나지 않았어. 나를 살피는 일은 아마도 평생 해야할테지만.

많이많이 불안한 청춘.  

 

*

 

일단은 페이퍼에서 인용했던 벨 훅스 글 중에서 내 기억에 남는 것 재인용.

 

-현대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여성들은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교육적인 지위와 특권이 다른 여성들에게도 보편적인 것이라고 여기기 쉽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교육, 특히 기본적인 문해 교육을 페미니스트 아젠다로 만드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다. (bell hooks, 1984)

 

-(성, 인종 그리고 계급 착취와 억압을 통해서) 어떤 집단의 여성들은 지식인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빼앗겨 왔다. 대부분의 여성들을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이해 양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해방 투쟁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를 빼앗겼다. 이러한 박탈은 여성들로 하여금 지적인 활동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생각이나 정보를 갖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종종 페미니스트 운동의 유색 인종 여성 활동가들은 반-지식인적이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대학 교육에 접근해본 적이 없고,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 본적도 없다.  (bell hooks, 1984)

 

-가장 자리에 살면서, 우리는 현실(reality)을 보는 독특한(particular) 방법을 발전 시켰다. 우리는 바깥에서 안을 보거나 안에서 바깥을 보기 둘 다를 했다. 우리는 주변(margin) 못지 않게 중심(center)에 주목했다. 이렇게 보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전체 세계의 존재를 연상할 수 있었고, 주변과 중심 둘 다로 이루어진 주요한 본체(main body)를 연상할 수 있었다. (중략) 우리 일상생활의 구조로 말이암은 우리의 의식에 근거한 이 전체에 대한 감각은 우리에게 저항적인 세계관 -우리의 억압자 대부분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이 관점은 우리를 지탱시키고 가난과 절망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싸움에 도움을 주고,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연대에 관한 우리의 감각에 힘을 주었다.  (bell hook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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