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거슬리는 것

집시법 제10조와 제23조제1호에 대해 헌재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5년 전에 이 조항을 합헌이라 결정하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위헌결정을 받진 못했지만, 이번 결정이 집시법 전반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동안 이 말도 되지 않는 집시법 규정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간만에 기분좋은 뉴스이기도 할 거다. 위헌결정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찜찜함은 남지만, 9인 재판관 중 5인이 위헌판단을 했다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어쨌든 환영할만한 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각 단체들이 긍정적 평가를 담은 논평이나 성명을 내는 것도 인정할만 하다. 그런데 단체들의 평가를 보다가 뭔가 찜찜한 감정이 자꾸 든다.

 

우선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성명. 이 성명에 보면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낸 입장에도 보이는데, 거기에는 "사회변화를 반영한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표현이 있다.

 

찜찜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헌재의 결정에 전제가 되는 것이 과연 "시대의 흐름" 혹은 "사회적 변화"인가? 특히 법률의 위헌소송과 관련하여 헌재의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은 헌법의 가치와 법률의 구조가 우선이다. 물론,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특정한 가치관이나 상황이 전적으로 배제된 채 판단이 이루어질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흔히 거론되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것은 특정계층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개별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지 않은가?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현행 집시법은 위헌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고, 그 가운데에서도 야간집회시위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은 완전 위헌이다. 이건 시대의 흐름이나 사회적 변화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헌법의 정신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충분치 않고, 이론대로라면 당연히 위헌이 나왔어야 할 일이다.

 

현행 헌법을 제정할 당시, 헌법이 집회시위의 허가제를 금지하는 규정을 둔 것은 그 당시 상황이 지금보다 좋아서가 아니라 집회시위가 가지는 성격 자체가 국가에 의한 허가로 규제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야간옥외집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집시법에는 야간집회를 허가대상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건 시대의 흐름이나 사회적 상황과는 관계가 없이 법을 만들고 집행한 자들의 무식의 발로이거나 폭력일 뿐이다.

 

당근 이번 결정은 되어야 할 것이 된 것이고,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 자리를 찾은 것으로 봐야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거조차 확실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지만. 그러다보니 저들 단체의 입장에 보이는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 합리적 결정" 등의 표현이 목구멍에 생선가시 걸리듯 자꾸 걸기적거려 보인다.

 

자기 것도 제대로 못찾아먹을 뿐만 아니라 도대체 자기 것이 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행인이 원래 삐딱한 인간이기 때문은 아닐 거다. 단순히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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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17:01 2009/09/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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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게요.인권회의입장은 아쉽다가 첫 서두인데, 오히려. ㅋㅋ 그나저나 참세상 원고를 행인에게 넘길걸그랬습니다. 아...이제 부터 써야하는디...졸립니다, 벌써...

    • 헉... 참세상 원고는 비올이 훨씬 잘 하실 것입니다.(주제가 뭐든 말이죠. ㅎㅎ)

      그나저나 경찰이 시간규정을 정한 개정안을 낼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이거 뭐... 개정법률이 시행되면 또 위헌소송 해야할 듯...하네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