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 끝난 후에

정치에 대한 혐오는, 정치를 업으로 삼아 세비로 생계를 영위하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그리 낯선 감정은 아닐 터. 그 혐오의 근간은 실상 현직 정치인들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에서라기보다는 역동적 정치가 내 삶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항용 배제와 소외를 자양분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정치 자체의 속성에 있다. 오늘 하루를 벌어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날선 욕구의 생성과, 그저 선거날 투표라는 행위 하나로 경마장 중계하듯 티비를 오르락 거리는 인물들을 '남'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 정치와의 간극은 그만큼 넓을 수밖에 없는 것.

 

으레히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제도정치에 함몰된 오늘날의 유권자들 중 일부는 선거 무용론, 내지는 정치 혐오론을 아주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다. 누구의 말마따나, 투표로 세상을 바꿀 것 같았으면 지배계급이 그걸 그냥 내버려 두었겠나. 결국 지배계급의 지위확인을 위한 장에 대중은 들러리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선거판. 정당은 대중으로 하여금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유인제. 뭐 그런 거 아니겠나?

 

아마도 이러한 정치, 더 정확히는 선거에 대한 혐오와 불신은 현행 법체계에 대한 그것과 거의 유사할 듯 싶다. 교조적 맑시스트들의 고전적 주장은 법이 기껏해봐야 지배계급의 체제장악을 위한 도구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법이라는 것을 만드는 주체와 시행하는 주체는 당금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배계급이므로, 예컨대 현대에는 체제를 장악한 자본가와 그 하수인들의 위력행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바로 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대충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직접민주주의, 대안집단의 정치세력화, 더 나가 혁명 뭐 이런 것들이 되겠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새삼 되짚을 필요는 없다. 다들 아는 이야기 더 해봐야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만 아플 뿐이고. 문제는 이러한 논의들이 마치 새로운, 그리고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필연적  출구인 것처럼 이야기된다는 것.

 

대안이 대안인 것은 그 대안이라는 것이 대안으로 머물고 있을 때이다. 대안이 대세가 되면 그 순간부터 어제의 대안은 오늘 극복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제 덩치를 자랑하고 있는 무수한 대안학교들. 재밌지 않은가? 그럴싸한 명칭의 '대안'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으나, 실제로는 중산층 이너서클의 구축을 위한 교두보로 역할하고 있는 그 존재들. 이민 보내는 것 보다는 싸게 먹힌다는 둥, 사교육을 대체한다는 둥의 각종 긍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그 대안학교에 자제들을 보낸 사람들의 면면과 그 대안학교를 통해 보장받게 되는 자제들의 장래를 보라. 고학력 중산층의 욕구충족 내지는 차세대 고학력 중산층의 양산이라는 대안학교의 실상을 보게 된다.

 

직접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심의민주주의라는 화려한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처음으로 부딪치는 것은 그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이며 수렴의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종류의 주장을 해왔던 사람들이 두리뭉실하게 넘어가거나 혹은 애써 회피한 영역이 이것이다. 참여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노무현 정권은 워낙 수준이 떨어지니 예외로 할까? 아니면 그것이 바로 참여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할까?

 

최근, 이상하리만큼 베스트셀러가 된 "인권의 대전환"이라는 책은 심의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를 하고 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역시 심의민주주의가 어떤 범위로 어떻게 그 수렴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선 눈에 띄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논의의 성질이 결론을 내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러다보니 기껏해야 하버마스류의 소통론이라던가 기든스류의 제3의 길 수준의 이야기로 점철된 논의를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번역을 했기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자인 조효제가 이 책을 침튀기게 극찬한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논의들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는 더욱 깊어간다는 것. 이게 바로 문제인데, 현실정치에 대한 배타적 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정치가 왜 대중들의 참여 내지 묵인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의 예를 다시 들자면, 왜 법이 지배계급의 체제유지를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그 법이 대중들을 씨줄 날줄로 엮으면서 작동되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교조주의자들의 한계가 뭔가를 봐야한다는 거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고래의 진리는 법학개론 한 학기만 들어도 바로 이해된다. 그걸 꼭 배워야 아는 것도 아니기때문에 '법은 멀리 할수록 좋다'거나 혹은 '법 좋아하다 망한다'는 말이 법대 다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왜 그렇게 수시로 우리 귀에 '법대로 하라'는 말이 들려올까? 이 말이 단지 힘 가지고 돈 가진 자들만 내뱉는 말이던가?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하는 넘들이 다 그렇지'라거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왜 대중들은 투표장을 찾아가 기표함에 자신의 표를 집어 넣는 것일까? 대중들이 세뇌되서? 아니면 무식해서?

 

소위 운동한다는 사람들, 특히 말끝마다 전복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를 공공연히 혹은 조심스레 삽입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이중적 감정이 있다. 대중들에 대한 감정인데, 어떤 때는 대중들을 한없이 높이 평가하다가 어떨 때는 대중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또는 무시한 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대중들을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부각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골이 부서져 처참히 죽었던 로자 룩셈부르크가 새삼 안타까워진다.

 

부연할 필요를 느끼진 못하지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대자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청이나 대안의 제시, 혹은 전복 더 나가 혁명을 논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행인 역시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공부하고 떠들고 당 활동하고 블로그에서 찌질 거리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그 맥락이라는 것은 단지 현실정치에 대한 혐오와 배제에서 출발할 수 없다. 매번 실패하고 실망하고 힘에 겨울 지라도, 마빡이 저 구천 넘어 어딘가 존재하는 이상을 지향한다고 한들, 내 발바닥이 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때문에, 엉망진창인 전술로 혼란을 초래하고 초라한 성적밖에 거두지 못한 정당을 미련없이 내팽개칠 수는 없다. 앞으로도 계속 정당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고 현실정치에 대한 개입을 계속할 것이다. 선거 끝나고 나니까 진보신당 안에서도 이런 저런 말이 많다. 소위 해당행위자들에 대한 징계, 지도부에 대한 문제제기, 평당원민주주의 복원 어쩌구 저쩌구...

 

글쎄다... 이상하게 하고픈 말이 많긴 한데, 그건 당연한 것이 인생이 구라니 그렇지만서도, 더 했다간 종합정리가 불가능할 듯 싶고, 다만 한 가지, 자신들의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언제든 그렇게 하길 바란다. 현실정치를 얼마든지 비판하고 주저없이 뒤집어 엎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그가 진보신당 당원이었다면, 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당하고 새 당을 만들어도 된다.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제도정치의 판에서 선거전이 있을 때, 행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표론 운운하며 표 앵벌이할 생각은 없다는 거. 내가 몸담고 있는 진보신당(또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에서 혹여 이 다음 어떤 날에 선거판에서 다른 당에 가서 앵벌이 하는 쉑기 있으면 내 장담컨데 쫓아가서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거니까.

 

덧 : 아 쉬바... 뭔 소릴 할려고 했는지 모르겠네... 뭐 하긴 구라가 언제 기승전결 따지고 서론 본론 결론으로 완결되는 거 봤나? 기왕 쓴 거 아까우니 걍 올릴란다...만은 우째 정리가 안된다냐... 땅 파고 기어들어가야 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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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8 10:24 2010/06/0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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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쉬었던 게야... 쩝..

  2. 옛날의 상큼한 개그가 없어요. 하긴 저도 한동안 정신줄을 놔서 노랑색 초록색 주황색 애들과 타협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암담해졌어요. 레디앙의 송경아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 나 정말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에 언덕 위에 프로이트네 집에 가서 정신감정을 받을까 고민도 해봤어요 ^V^ -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1인

  3. 그러니까 첨부터 저처럼 잼 없는 글로 도배를 하거나 펌질로 일관하면 기대수준도 높질 않았을 텐데요. 뻥구라닷컴의 본색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