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궁상...
가난은 죄가 아니라던 선인들의 가르침이 적어도 이 순간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가난한 것이 때론 죄가 될 수도 있다.
선거 공보물을 받아보았을 때, 없이 산다는 것이 이토록 터지게 아픈 거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손가락 빨기 3년이 지나가면서 당장 생활비 조달이 여의치 못한 마당인지라 선거운동에 일원 한 푼 도움도 주지 못했다. 개인적 사정이라는 것을 내세워 면목 없는 처지를 숨긴채 나서지도 못했더랬다. 그러다가 공보물 속에 섞여 있는 한 장 짜리 공보물을 봤다. 심상정의 공보물이었다.
화려하다못해 금박이라도 두른 듯 광채가 빛나는 다른 이들의 책자같은 공보물 가운데, 그렇게 진보정당 후보의 선전물은 야속하리만큼 초라했다. 속이 찢어진다는 표현이 왜 생겼는지 알 듯 싶었다. 짝꿍하고 둘이 앉아 한숨을 쉬며, 우리 돈 벌어야겠다라는 말을 했더랬다.
욕심...
그래도, 이 열악한 처지를 딛고 그이가 끝까지 가주길 바랬다. 그래, 그건 어쩌면 쥐뿔 뭣도 해준 거 없이 바라는 것만 많았던 욕심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보신당의 선거전술은 사실 처음부터 아슬아슬 했다. 다른 이들의 여러 설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는 선거전을 시작하는 그 순간에 왜 "진보대연합" 같은 쓸데 없는 기치를 진보신당이 먼저 내걸었는지 이해하질 못한다. 이건 마치 서슬퍼런 칼바람이 몰아치는 전장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우리에겐 무기가 없으니 다른 분들과 쪽수라도 채워볼랍니다라고 외치는 격이었다. 더구나 그 진보대연합이라는 기치와 "반MB"라는 것과의 차별성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밑천 없는 알몸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까놓고 시작하는 싸움판이라는 건 이미 승산 없음을 스스로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 지를 돈이 없으면 포커판에 끼질 말아야 하는 것. 그것도 안 되면 어디서 판돈 빌릴 염이라도 마련해 놓고 시작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어차피 같은 판에서 서로 질러댈 상대를 보고 먼저 "진보대연합" 운운할 일이 없었다. 짜고치는 고돌이도 이해가 맞물려야 가능한 것. 우린 그냥 우리가 갈 길을 밝히고 달려가면 그만이었던 거다.
5+4라는 건 또 뭔 우스운 일이었던가? 시작과 동시에 그 5+4라는 테이블은 민주당(혹은 국참당)에 명분과 인물을 수혈해 줄 뿐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여건이라는 것의 강요로 인하여 그 테이블 한 쪽을 채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었음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그 테이블에서 진보의 대의를 이야기하려면 두 가지 전제는 관철시켰어야 한다.
하나는 5+4라는 틀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진보적 정당(예컨대 사회당)과 각 인권단체들에게 공히 참여의 기회를 보장했어야 한다는 것, 둘은 그렇게 확장된 테이블을 완전히 공개해서 논의 자체가 일반에게 공개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여론을 조성할 수 있었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 영 발전이 없었다 .
희안하게 이런 틀이 항상 계속 되는데, 곽노현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게 무슨 전대협 의장 옹립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어떻게 모여서 무슨 과정을 거쳤는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덜컥 "진보후보 단일화" 운운하는 거, 솔직히 어이가 없는 일이다. 어쨌건 이 부분은 논외로 하고.
하지만 내 기억에, 진보신당은 선거전술, 특히 후보전술에 대한 그 판의 논의에서 함께 허덕거렸을 뿐 이러한 전제조건을 담보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거면, 어차피 깨고 나오는 것이 수순이었을 터이고 그렇다면 애초부터 거기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더 선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보이다 실리는 실리대로 놓치고 명분은 명분대로 잃은 데다가 좌우 양쪽에서 욕설과 비아냥만 들어야 했다.
그래, 그것도 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냥 한 번 넘어갈 산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다. 아무튼 그 와중에 심상정 후보가 경기도지사 출마를 결의했다. 당시 당 내에서는 심상정 전 대표가 차라리 지방선거 출마를 자제하고 지역구를 바꿔 은평을 보궐을 준비하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과 애초 경기도에 자리 잡은 이상 지역구를 바꾸는 것은 정치도의상 바람직하지 않고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는 것이 당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개인적으로, 전자는 인정하기 어려운 방향이었다. 기성 보수정당의 정치철새들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심상정이 경기도지사로 출마하는 것이 그 자신이나 당을 위해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선거라는 정치상황이 당을 알리고 당의 정책과 비전을 공히 심판받는 순간임을 감안한다면, 비중있는 인사가 선거에 뛰어들어 달리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작금 당의 상황이라는 것과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의 장래를 생각할 때 과연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상정은 결의를 했고, 다른 당원들과 마찬가지로 그 결의에 대해 존중했다. 그리고 그 결단에 대해 나름 높이 평가했다. 심상정이라는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당 내의 어떤 사람이던 간에 결단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욕심은 발동했다. 완주. 끝까지 완주해주기를. 그건 아마도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가진 욕심이었을 거다. 그리고 "진보정치(라는 말 안에 많은 함의가 있을 터인데)"를 꽃피우기 위해 출마했다는 심상정의 의지는 신뢰를 보내기 충분한 무엇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심상정은 사퇴했다. 심란하기 이를 데가 없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원래 별로 생각이 없는 행인, 엔간히 속터지는 일이라도 반나절 이상 껴안고 가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번 건은 상당히 오랜 시간 힘들 것 같다.
2004년 총선 당시, 10석이라는 의석을 만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강호에 인물은 많다는 것, 그리고 정치인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하는 것, 이런 것을 느꼈더랬다. 물론 의정활동을 보좌하던 입장에서 많은 실망도 있었지만(특히 뭐 이런 인간들이 진보씩이나 한다고 설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현실정치에서 하나씩 희망이라는 것을 만들어 갈 여지를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심상정이었다. 누군가는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의 등장 과정에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썩 괜찮은 것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새로운 상을 만들어 나간다면, 언젠간 좀 더 왼쪽에 있는 정당들이 나올 배경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그런 희망이 있었다. 물론 상황은 달라졌고 오늘날 요모양 요꼴이 되긴 했지만...
당 내에서 심상정에 대한 제재론이 폭발하고 있다. 당연히 비판하고 제재해야 한다. 사퇴의 과정이 진보정당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절차로 이루어졌고, 특히나 "진보정치"라는 대의 자체를 퇴색시킨 점은 두고 두고 많은 비판을 받을 것이다. 심상정이 당게에 올린 사퇴의 변을 보다가 탄식을 하게 되었는데, 첫째, "국민 다수의 뜻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고뇌의 결단이 어떻게 유시민을 지지해달라는 기자회견문의 결론으로 결정된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고, 둘째, 스스로를 "당과 진보정치를 위한 속죄양"으로 규정한 근거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유능한 정치인을 발굴하고 그에게 적절한 위치를 찾아줌으로써 기성 정치에서는 바랄 수 없는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절절히 느껴왔던 점이다. 물론 일개 정치인 한 명에게 모든 것을 바라고 기댄다는 것은 명망가 팬클럽 수준 이상의 것이 아닐 터이지만, 적어도 정치적 행보를 진척시키기 위한 측면에서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최대한의 애정을 갖고 심상정을 이해해보려고 했던 이틀 간의 노력은 심상정이 당게에 올린 글을 보면서 또다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대중정당이라는 것이(당연히 진보신당은 혁명정당이나 지하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인데) "국민다수의 뜻"을 무시하고 외곬수로 돌진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에 대한 일정한 경계는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대중정당은 언제나 포퓰리즘과 원칙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국민 다수의 뜻"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후보사퇴, 더 적실하게 표현하자면 유시민과의 단일화였는지 그건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 다수의 뜻이 반MB? 그리하여 어차피 안 될 거 될 사람 밀어줘야 한다는 단일화의 요구?
심상정의 정치적 근원인 금속 또는 민주노총 안에서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에 대한 비판과 재합당의 요구, 그와 동시에 현존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의 결집을 위한 후보단일화 요구가 거셌을 것이다. 바로 그 요구 안에서 심상정은 "국민 다수의 뜻"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 주변에서 "국민 다수의 뜻"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 사실은 이게 더 심각한 문제인데, 넘쳐나는 공보물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제대로 그 공보물을 확인한 흔적이라는 걸 찾아볼 수 있기나 한가? 오히려 서울 나오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7일마다 장이 서는 전철역 앞에서, 혹은 확성기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운동원들이 몸을 흔들고 있는 유세차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얼른 이놈의 선거가 끝나야 좀 조용할 텐데"라거나 "죄다 똑같은 놈들인데 이놈 찍으나 저놈 찍으나 똑같지 뭐"라는 자조의 목소리들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게 "국민 다수의 뜻"이라는 걸 심상정은 몰랐을까?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력을 자랑하는 50%에 육박하는 이명박 지지자들은 "국민 다수"가 아니라 소순가? 아니면 때만 되면 나타나 당신을 존경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좀 빠져달라고 구걸하는 선거 앵벌이들이 "국민 다수"인가? 97년 대선, 2002대선 때 앞에선 진보정당 후보 운동한다고 벼라별 유세를 다 떨다가 막판엔 비지로 만세삼창 외치던 그 사람들이 "국민 다수"인가?
아닌 말로 우리는 언제 한 번 "국민 다수의 뜻"을 제대로 만들어보기라도 했던가? 왜 못했던가?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 비지의 망령을 떨치지 못한 채 평소엔 지지자인냥 하던 사람들이 지난 20몇년 간을 될놈 밀어주자고 뛰쳐나간 덕에 오늘날 이 처지가 된 건 아니었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자조는 별난 놈도 있다는 것을 끝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결과가 아니었을까. 노무현이 부산에 컨테이너를 쌓았을 때, 이명박이 세종로에 산성을 쌓았을 때, 그곳에서 항의하고 비판하던 사람들, 촛불을 켰던 사람들, 이 사람들 중에는 노무현을 찍은 사람들도 있었을 터이고 이명박을 찍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촛불은 진화하지 못했나? 아니, 진화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촛불들이 횃불로 번질 수 있도록 해줄 능력이 왜 우리에겐 없었을까?
심상정이라는 한 사람에게 독박을 씌울 일은 없다. 평가에 따른 결론이 나올지라도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유능한 정치인에게 치유되기 힘든 정치적 타격을 준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정치인 하나만이 정치적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심상정이 입은 정치적 타격은 곧바로 진보신당이 입은 정치적 타격일 수밖에 없다. 이걸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볼 때, 심상정은 "속죄"를 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누를 끼친 것이 되었다. 그이는 "속죄양"이 된 것이 아니라 속죄양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최선, 차선, 차악, 최악...
현실을 바라보면서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저 네 가지 기준이라는 것을 든다. 그런데 왜? 왜 저 네 가지 기준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인가? 만사가 게임의 법칙이므로?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특히나 정치적 판단의 시기가 오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일까? 우린 도대체 언제쯤이 되어야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이라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다 그런 것 같지만, 그래도 초지일관 최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최선은 입장에 따라 다른 것이지만. 예컨대 국참당은 유시민이 최선일 것이고 한나라당은 여전히 김문수가 최선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최선을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왜 진보정당에는 항상 차선을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건가? 게다가 그 차선의 선택에 대한 강압이라는 것은 어찌 이리 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이건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한데, 과거 각 대선이나 총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들을 밀어주자고 했다가 비지론 흘리면서 될 놈에게 달려갔던 자들에게 진보정당이 사실은 차선이었던 것. 즉 이들은 자신들의 최선을 위해 차선을 희생시키기 위해 암약했던 X맨. 아니면 진보정당이 최선인 것을 알고는 있으나 차악이나 최악의 공포에 못이겨 정체성을 상실한 것. 전자일 혐의가 더 높은 사람들은 오늘도 차선을 운운하고 있긴 하다.
한국의 정치지형이 최선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차선에 대한 선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그렇지만, 나의 최선을 차선으로 강등시키도록 강요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최선을 선택하면 된다. 다만, 나에게 차선을 인식시키고 그 차선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차선을"이라면서 앵벌이를 했던 사람들, 도대체 그놈의 "이번만"은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인가? 87, 92, 97, 2002 대선은 물론이려니와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다음 번에 당신들을"이라고 했던 사람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과연 당신들 중 몇 명이나 다음 번, 그 다음 번 선거에 또다시 우리에게 차선을 선택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는지.
분명한 것은, 그 차선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차악이나 최악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거다. 더불어 어차피 판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최선의 선택을 포기한 자들은 잉여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최선의 선택을 포기한 것은 스스로 잉여를 자처한 것이었고, 그 와중에 끝내 신념을 지켜 최선을 선택한 자들 역시 잉여의 대열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눈여겨 볼 것은 X맨들이 아니라 진짜 최선을 포기하고 차선을 선택한 사람들. 이들에게 차선을 선택하도록 한 것은 뭐였을까? 첫째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공포. 예를 들어 이번 선거처럼 한나라당 되면 전쟁난다는 공포. 이거 역시 오래된 레파토린데, 그 언젠가 이회창 되면 전쟁난다는 소리를 중구장창 외쳤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아직도 뻔뻔하게 얼굴들고 "운동"한다고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정도 공포때문이라면 사실 진보정당 한다는 사람들의 책임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경제위기라는 공포, 전쟁의 공포 기타 등등의 공포는 사실상 그 공포의 배경이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반전되면 자연히 사그러드는 것이므로. 하지만 차선의 선택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니라 진보의 무능이다. 정책이 모자라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일지는 몰라도 정책만큼은 더 깊고 정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는 정책의 양과 질만으로 정치세력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놈이 그놈"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다. 뒷골목 말로 '곤조'라는 것이 있다. 지금 당장은 뭐 저런 듣보잡들이 있나라는 평을 듣더라도 끝내 저것들이 그래도 곤조가 있구나라는 평가를 받아내야 한다. 이걸 보여주지 못한 것이 바로 진보의 무능이다.
지지자들이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은 이것들이 쥐뿔 없지만 하는 거 보면 싹수가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한 번 뱉은 말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끝까지 밀고 가야 하는 거고, 그 끝에 처절한 상처만 남게 되더라도 그 피를 지지자들이 닦아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거다.
지금 가슴이 아픈 것은 단지 심상정이라는 한 사람의 후보사퇴때문만이 아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것인데, 어찌 되었든 그 아픔의 중심에서는 진보정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있다. 제대로 활동도 하지 않은 주제에 깜냥을 넘는 자괴일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선택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건 앵벌이들의 구걸행각때문만이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미안함의 대상이 누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잠이 오질 않는다. 어제 그제, 사실 잠 든 시간은 꽤 길었는데, 악몽때문에 계속 선잠을 자게 되었다. 무슨 꿈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30분에 한 번, 1시간에 한 번, 퍼뜩 퍼뜩 잠이 깨고 또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뭣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껏 선거 한 번일 뿐인데,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던 걸까? 아니 꼭 선거 때문만은 아닐지 모르겠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길이 보이지 않는 논문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횡설수설이 길어진 것 역시 그런 이유들때문인지도...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파울로 프레이리가 이런 말을 했더랬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끌려 비난받아 마땅한 야합에 동조하거나 적대세력과 거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진보주의자라면, 민중계급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자들과 연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향은 다르지만 서로 적대시하지 않으며 통치의 책임을 함께 질 수 있는 세력들 간의 화합은 매우 필요하다.
후보로서 내가 한 약속은 당선된 후 나의 행동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유권자들에게 변화가 손쉬운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변화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해서 변화의 가능성을 주장해야만 한다."(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어느 글을 보니까 이번 심상정 후보 사퇴를 "국공합작"에 비교하는 글도 있던데 난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 비교를 해도 꼭 그런 데다가 비교를 하고...
아, 여전히 잠이 오질 않는다. 횡설수설을 마치고 난 후에 또 뭘 하고 있어야 할까...
공상제께서 2008년 7월 어느날 100만원 과일값으로 소소하게 천지공사를 마치시매, 「포교 이년 교육필쫑(布敎二年敎育必終)」- 즉, 그 분께서 교육을 2년 펴매, 서울교육이 쫑나느니라.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미성년자의 성행위는 사회적 금기이므로 적발시 퇴학시키고, 학생신분이므로 자유연애는 금지하는 것이 옳다” 하시어, 온 세계에 서울 민주교육의 정신을 널리 알리셨더라. 아 사랑하는 공정택님을 떠나보내게 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많은 일을 하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