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찝찝함이라니...
논문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아무리 궁리를 거듭해도 뭔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이 소심함 때문일 게다. 결국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한 줄도 써보지 못한 채 별 주제와는 상관도 없는 책들만 읽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그닥 싫은 것은 아니고, 아니 오히려 책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기분좋은 일이긴 한데, 반면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 연장된다는 것이 답답증을 자꾸 불러 일으키긴 한다. 암튼 건 글코...
최근 읽은 몇 권의 책이 공교롭게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업계의 비명과는 무관하게 꽤나 잘 팔리고 있는 책이더라. 광고에 혹하고 주변에서 부채질을 하는 통에 얼결에 보게 된 책들인데, 대표적으로 두 권.
하나는 샌드라 프레드먼, 조효제 역, "인권의 대전환"
다른 하나는 마이클 샌델, 이창신 역, "정의란 무엇인가"
두 권의 책을 읽다보면 좀 의아한 것이, 왜 이 책들이 소위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하긴 뭐 백수건달에 쥐뿔 먹고 죽을 돈도 업는 행인마저도 제 값 주고 사서 읽을 정도면 오죽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만, 그건 결과론이고,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들을 읽도록 만들었을까, 혹은 만들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가시질 않는 거다.
뭔가 뒷북스러운 리뷰가 될지 모르겠지만, 간단명료하게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거 자체가 불만족스럽다기보다는 이런 류의 책들이 전에는 없었는가 하는 의문, 더불어 이정도 수준이나 혹은 이보다 더 낳은 내용의 책들이 이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잘 팔린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이들 책을 읽고 난 현재의 느낌.
역자가 해설을 통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샌드라 프레드먼의 "인권의 대전환"은 그동안 소위 좌파들이 한 세기가 넘게 떠들어왔던 내용들을 '법제화'하는 차원으로 변환한 것에 불과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법부 역할론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조금 신선한 논리로 다가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제 샌드라 프레드먼이 들고 있는 남아공이나 북아메리카, 그리고 영국 등의 사례는 그들 특유의 사법체계 하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한국과 같은 사법체계에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난점이 많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역시 허접하긴 마찬가지. 여기 나오는 모든 예시가 미국과 관련된 사례라는 것을 빼면 그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학부 1학년 법학개론에서 다 배우는 내용들이다. 더욱 큰 문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은 피레네 산맥 저쪽의 정의와 이쪽의 정의가 충돌할 때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다. 아니, 아예 그런 부분에 대해선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예컨대 샌델이 든 사례 중 이라크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미군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샌델은 미군들이 경험했던 선택의 순간은 진진하게 설명을 하지만 정작 이라크 염소치기들이 해야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판단 자체를 배제해버린다.
"인권의 대전환"이 학술적 측면에서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또는 법학)의 기초상식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준다. 두 책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장점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책들이 이토록 잘 팔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한국의 저자들이 이정도 수준이 되는 글들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행인이 그동안 읽은 책들을 보면 훨씬 재미있고 수준높은 책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타이틀(정의란 무엇인가)이나 혹은 "옥스포드 최초 여성 정교수"가 쓴 책이라는 명목을 제외한다면, 그 책이 최고의 명강의록이거나 또는 "인권의 개념을 뿌리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기엔 모자라지 않은가 싶다. 결국 행인은 허장성세에 유혹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각각의 책들에 대한 세세한 리뷰를 하기엔 짬도 나지 않고 사실 그럴 욕심도 별로 나질 않는다. 뭐 게으른 것도 핑계가 될 수 있겠지만, 날도 선선해지고 있으므로, 이제 본업에 보다 충실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니.
(오호라, 게다가 여하한 사정으로 인하여 앞으로 두 달간은 거동도 못할 형편이니 이틈에 얼른 해야 할 일이나 마저 해야겠도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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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역시 뒷북이었나요... 여튼 정치철학이라고는 하지만 정의라는 주제는 법학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다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해요. 목적론적 정의관이라는 것을 은근히 가지고 있는 샌델인듯 한데, 거기다가 미국식 정의관이라는 편견을 아예 제끼고 보는 것도 어렵고... 뭐 그렇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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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 그분은 한국 인문학구라분야의 탑클래스신데,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진보를 진단했다면, 글쎄요... 감이 잘 오진 않지만, 어쨌든 이 책은 딱 학부 1학년 교양... 수준도 아니고 사실 고등학교 사회관련 교과목 강의수준 정도면 맞을 듯 하네요.
부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회의 민도라고할까요, 사회적 수준이 어느 정도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다지 반향을 일으킬 정도의 내용이 있는 책은 아닌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이 잘 팔리는 원인이 어디 있는지 이해가 될 듯도 해요. ㅋㅋ
저도 그 분 글을 읽었는데 동의하기 어렵더군요. (물론 저는 센델을 안 읽었지만) 필자가 센델을 비판하는 주된 근거는 센델에게 중요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 개념이고 우리 진보진영에서 공동체라고 하면 진보라고 착각하는 천박한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는 arete에서도 나타나듯이 공동체가 개인을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려주는 기능을 합니다. 물론 arete가 남성적 미덕이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그리고 개인의 선이나 행복의 범주가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선이 선이라고 결정할 수 있을까요. 공동체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칼 폴라니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동체 개념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폴라니의 경우에는 자유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의 것이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는 사회에 귀속되어야한다는 주장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혹은 서로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서로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에서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잠재성을 최대한으로 발현시켜주는 공동체의 개념을 인습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동체 개념과 등치시키는 대담한 주장을 하고있더군요.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사실 법학적 차원에서라면 샌델의 논의가 더 쉽게 수용될 수도 있죠. 국제법적 측면은 차치하고 국경을 물리적 외곽으로 정형화하고 있는 법률의 논의에서라면 샌델의 논의는 말 그대로 가장 상식적 차원의 논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그것이 '공동체'라는 범주까지 갔을 때, 과연 그 공동체가 가지는 정의라는 것을 '공동체'로 한정된 범주 바깥까지 연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새로운 한계가 드러난다는 거죠. 만일 이 한계를 무시한다면 가장 보수적 담론으로 점철된 법학의 분야에서 법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오게 되지만, 그렇게 될 경우 바로 지금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법에 대한 논의는 전복이냐 아니냐 이외의 논의가 무용해진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이건 님이 지적하신 아리스토텔레스적 공동체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데요, 닫힌 계로서의 공동체 개념을 넘는 어떤 정의 혹은 사해동포의 관점에서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공동체에 적용되는 정의가 가능한지 여부가 또다른 관심사가 된다는 거죠. 아무튼 기왕에 '정의'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촉발된다면, 그것이 샌델의 공적이든 뭐든 간에 이런 진전된 관심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니, 무슨 일이?
발목이 뎅그렁~! ㅠㅠ
그럼 이제 발목 아래가 없는거야? ㅜㅜ
허거... 그건 아니고... 여차한 사정으로 인하여 발목에 심각한 무리가 생겨 약 두 달 가량 깁스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고... 그래도 한 달 정도 지나면 슬슬 걷는데는 무리가 없을 거라능 ㅋㅋ
프레시안에서 하도 광고를 해서, 뭔가 싶었는데 대형서점에 쌓여있는걸보고관심을 접었더랬죠. 헉. 근데 발목이라뇨...ㅡ.ㅡ;;
저도 대형서점에 무더기로 놓여있는 걸 보고 의아한 마음이 생겼더랬죠. 오랜만에 뵙네요. 항상 건강하시구요. ㅎㅎ
'정의가뭥미'는..한겨레21 표지까지 등장하길래 나도 사서 봤다가. 딱 낚인 기분.ㅠㅠ 파닥파닥.. 폄하해서 말하면 '하바드 마케팅+고삐리 논술용' 에잉... 경희대에 4천명이 몰렸다길래 겁니 궁금해 했는디... 털썩.
근디 요즘 영감님.. 푸닥거리가 필요한거 아님? ㅠㅠ 왜 자꼬 어데가 아프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