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김용판과 문수보살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국사로 경흥을 추대하며 궐 안에 말을 탄 채 출입하는 것을 허락했다. 국사 경흥은 왕의 명대로 하였는데, 그 행차가 화려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가사장삼은 눈이 부셨고 그가 탄 말은 금은 장식으로 치장되었다. 시종일습이 앞뒤로 봉행하는 화려한 행차가 있을 때면 장안의 대중이 이를 구경하고 놀라워했다고 한다.

 

하루는 이렇게 행차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군중 가운데에 왠 남루한 복색의 스님이 마른 물고기를 담은 광주리를 등에 지고 있었다. 행색도 초라하여 부끄러울만한데다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먹으면 안 된다는 계율에도 불구하고 중 된 자가 물고기를 지고 있으니 대번에 국사의 시종들 눈에 띄었다.

 

이에 시종 중 하나가 나서 중 된 도리로 어찌 물고기를 지고 다니는가라며 준열히 꾸짖었다. 그러자 이 중은 시덥잖다는 듯이 한 마디를 했다.

" 다리 사이에 산 고기를 끼고 다니는 중도 있는데 까짓 물고기가 대수더냐"

 

달랑 한 마디 알듯 말듯한 말만 남기고 남루한 행색의 중은 자리를 떴다. 그런데 국사가 듣기에 이게 범상치 않은 말인지라 시종을 시켜 몰래 뒤를 따르게 했다. 도성 밖 남산 문수사까지 시종이 쫓았는데, 이 중이 문수사 안으로 들어가더니 종내 종적을 감춰버렸다.

 

문수사 경내를 수색하던 시종이 행적을 찾다가 문득 법당 앞 문수보살상 앞에 그 중이 졌던 광주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다가가 살펴보니 마른 물고기로 보였던 것들은 소나무껍질이었단다. 광주리 옆에는 석장이 놓여있었고, 그 앞에는 문수보살이 내려다보고 있었으리라.

 

놀란 시종이 내처 달려가 국사 경흥에게 이를 고했다. 문수보살이 현신하여 가르침을 내린 것을 알게 된 국사 역시 놀라 급히 말을 내려 화려한 가사장삼을 벗어 말 안장에 올려놓고 남산을 향해 배례하였다. 그리고 이후 다시는 화려한 가사장삼을 걸치지 않았고, 말을 타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어제, 그러니까 2013년 8월 16일, 국회에서는 김용판과 원세훈을 불러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증인선서를 거부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무슨 생각인지 알맹이도 없는 청문을 계속했다. 법과 절차라는 것이 무시되었을 때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그것을 원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어제와 같은 상황이라면 민주당은 유효한 증인의 선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청문을 진행하지 말아야 한다. 법률 자체가 선서거부에 대한 어떠한 제재를 규정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역시 정치적으로 대응했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저들의 놀라우리만큼 뻔뻔한 작태다. 그 장면이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았을까? 잘못한 자들이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당당한 모습. 하긴 이런 모습이 어찌 어제 뿐이었으랴. 29만원밖에 없다며 법의 처분을 무시했던 광주학살의 원흉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인데 뭔들 아쉬워서 저들이 고개를 숙일까?

 

어쩌다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가 있는데, 어제와 같은 일들이 한 번씩 있고 나면 도대체 이따위 강의가 뭔 의미가 있을까 싶은 자괴감에 강의하는 것 자체를 때려치고 싶을 지경이다. 하긴 뭐 강의라는 것이 계속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걸 굳이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으니 차라리 잘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천하에 다리 사이에 고기를 끼고 다니는 놈들 천진데 까짓거 물고기 몇 마리쯤이야 뭔 대수이겠는가?

 

문수보살이 현신하여 가르침을 내렸고 이를 국사가 알아챘다는 것은 속된 세상의 얘기가 아닌지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세간의 일이라는 건 작은 잘못을 보며 큰 잘못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잘못을 보며 작은 잘못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게 관행이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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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7 12:04 2013/08/1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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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지순례해서 강사 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