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이라는 질문의 답변이 시작되는 글

근래 이곳 저곳 다니면서, 대안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제는 탈성장이야말로 좌파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천명할 때"라고 이야기했다. 듣는 이들의 공감과 비판이 동시에 갈린다. 동의가 되지만 막연한 개념이기에.

성장지상주의가 보수의 가치관이었다면, 진보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조어는 그 말이 등장하던 순간부터 형용모순의 한계를 드러냈기에 진보의 가치로 적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진보는 정도만 달리 했을 뿐 개발지상주의적 담론에 포섭된 채 그에 부응하기에 바빴다. 

자본주의체제에서 사회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어디에선가 이윤이 나와야만 하는데, '닫힌 계' 안에서는 질량-에너지보존의 법칙이 작동한다는 것은 우주의 철칙임에 비추어, 이곳에서의 이윤은 어딘가의 손실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 부분에서 막히는데, 그렇다면 똑같이 여기서의 '성장'은 어딘가에서의 '퇴보'와 상쇄되어야만 한다.

IMF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을 무렵, 한 카드회사는 "부자 되세요~!"를 카피로 삼았다. 다시 돌아봐도 이토록 저열한 구호가 있을까 싶은데, 앞서의 철칙에 따를 경우 내가 부자가 되는 건 누군가가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입시철마다 예배당과 법당을 가득 메운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합격을 축원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타인의 자녀가 불합격하기를 비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이런 바탕에서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간 결과 다다른 결론은, 성장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어떤 가치관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파가 저성장을 위기로 규정할 때, 정반대로 탈성장 자체를 우리의 과제로 설정할 수 있어야 좌파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설익은 생각인데다가, 그 경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에 대해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 마침 유사한 생각이 있어 링크한다. 많은 논의의 출발지점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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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탈성장의 길

 

글 세르주 라뚜쉬 (파리11대학 석좌교수, 양심적성장반대주의자)

번역 김신양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일부 저자들의 글에서처럼 탈성장(decroissance)을 지속가능한 개발의 변형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탈성장이 가지는 의미와 범위를 역사적, 이론적, 정치적으로 뒤집어버리는 것과 같다. 정치생태주의와 개발비판적인 모든 흐름은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식상한 문구와 단절할 필요성을 절감하던 터에 우연히 탈성장이라는 행동지침을 던지게 된 것이다. 애초에 이 용어는 성장과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라 한계의 의미를 되찾자는 목적을 가지는 선동적인 정치 슬로건이었다. 특히 탈성장은 퇴보도 아니요, 부정적인 성장도 아니다.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하 링크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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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8 17:51 2015/12/2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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