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 수 있는 놈만 팬다
전체적인 취지에는 동의를 하지만, 중요한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생각이다. 우선 이윤석의 발언을 '정파성'의 고리로, 장동민의 발언을 '혐오'의 고리로 필자는 파악하는데, 꼭 그럴까 싶다. 이윤석의 발언은 실은 그 맥락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만 '정파성'의 고리로 파악할 수 있다. 맥락을 제쳐놓고 문제가 된 발언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이윤석의 발언 역시 얼마든지 '혐오'의 고리를 가지고 분석할 수 있다. 지난 역사는 물론이려니와 현재에도 마찬가지로, '호남'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약자이며 배제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홍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그 함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음으로, 필자는 글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기이하게도 김무성 발언은 이윤석, 장동민의 발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잊혀졌다. 그러고보니 2015년은 정치인의 발언이 개그맨의 발언보다 더 가벼이 여겨진 해이기도 했다."
이 분석은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에서 파악해야 하리라고 본다. 이윤석, 장동민은 연예인으로서, 대중들과의 관계에서는 강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들은 대중들에게 '씹히고, 밟히고, 채이고' 해도 딱히 그러한 짓을 한 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없다. 물론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사법적 절차를 통해 응분의 책임을 지우도록 할 수 있겠으나, 현안에 비추어볼 때 이윤석과 장동민이 그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김무성이라는 사람은 그 위상이 다르다. 잘 못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대중적 비난의 강도와 분노의 연속이라는 건 연예인들에 대한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결국 정치인의 발언이 개그맨의 발언보다 가벼이 여겨진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상은 권력에 대한 비판이 대중들에게는 심각하게 부담스러운 상황임을 웅변한다.
쉬운 상대만 골라 패는 대중의 속성을 가볍다고 힐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줌 권력만 쥐고 있어도 뭇 사람에게 온갖 패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중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 한 마디 했다가는 재판도 받지 못한 채 8개월을 구속상태로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에서, 김무성의 발언은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라 쉬쉬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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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이윤석과 장동민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