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20대 개객끼’라더니 이젠 ‘50대 개객끼’?(2013년 1월 경)
18대 대선과 진보신당의 대응에 관하여 ①
언제는 ‘20대 개객끼’라더니 이젠 ‘50대 개객끼’?
2012 ‘멘붕’?
대선 결과를 보고 소위 ‘멘붕’에 빠진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다. 개개인은 물론이려니와 내로라하는 평론가들, 일부 언론까지도 상당한 충격에 헤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대체적인 분위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정도가 되겠다.
우선, 통상 높은 투표율이 민주통합당에 유리하다는 일종의 공식이 깨졌다. 투표율이 75.8%라는 경이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작 당선자는 박근혜였다는 것이다. 15,773,128표라니! 문재인을 지지한 14,692,632표도 거의 기절할 수준의 수치인데, 그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110만표 가까운 격차라니!
다음으로,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90%에 가까운 50대의 투표율과 이 연령대가 보여준 박근혜에 대한 3분의 2의 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거 직후 각 언론사가 ‘50대의 반란’이니 하는 선정적 제목으로 기사를 뽑으면서 인구비례에 있어 50대의 증가와 이들의 보수화가 박근혜 당선에 기여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50대 연령층이 18대 대선에서 보여준 독특한 현상은 목하 분분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보수화된 50대가 안정을 택했다는 둥, ‘20대 개객끼’가 아니라 ‘50대 개객끼’가 되었다는 둥, 지역별 투표성향이 아니라 세대별 투표성향이 더 중요해졌다는 둥, 심하게는 ‘세대 간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둥의 설이 난무한다.
아직 명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확정적인 의견을 개진할 수는 없지만, 각종의 분석 중에는 경청할 필요는 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제한된 자료에 의거해야 한다는 한계는 있으나 일단 주의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대선결과에 대한 분석 그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비록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수 있는 분석이나 장래 진보신당이 현실정치의 공간에서 유효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복기해보는 기회를 만들어보기 위함이다. 이하에서 거론되는 각종 수치 중, 제18대 대선과 관련된 각종 백분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정적으로 공개한 대선 투표율과 각 후보의 득표율을 제외하고는 모두 방송3사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했음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50대가 어쨌다고?
우선 세대별 혹은 연령대별 투표율이 가지는 의미가 과연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가장 많은 논란이 되는 것은, 이게 무슨 ‘공산당 투표’도 아닌데 어떻게 50대 투표율이 89.9%가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항간에 “움직일 수 있는 50대는 다 나와서 투표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번 대선의 50대 투표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50대 중 3분의 2에 가까운 62.5%가 박근혜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인구비율 상 50대가 많이 늘어났고 이들의 보수화가 선거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이러한 의견대두의 배경에는 두 가지 정도의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50대 투표율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는 것, 둘째, 50대의 박근혜 지지율이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전제에 따라 50대의 보수화가 기정사실처럼 회자되고, 이 보수화의 기저엔 안정에 대한 기대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그런데 우선 첫 번째 전제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18대 대선에서 50대 투표율이 예상을 넘어설 정도로 높은 것은 사실이나, 50대의 투표율 자체가 높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의 표를 보자.
이번 선거만 놓고 볼 때, 50대 투표가 결과의 향방을 가를 수 있었으리라는 판단이 얼핏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투표결과를 들여다보면, 과연 50대의 높은 투표율과 편향된 지지율이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가 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진다.
인구분포 상 50대는 3040세대는 물론 60대 이상 세대보다 아직 인구수(유권자)가 적다. 게다가 60대 이상의 후보 지지율을 보면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이 거의 4분의 3에 근접한다. 투표율에서 60대 이상이 50대보다 10% 정도 적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통계를 득표수로 환산한다면 박근혜는 6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 50대보다 약 40만 표 이상을 더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2030세대의 투표율과 지지율을 50대와 비교하더라도 50대 때문에 박근혜가 당선되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위 표에 따르면, 2030세대에서 문재인에게 돌아간 표는 50대가 박근혜에 준 표보다 무려 1.6배 가까이 많은 숫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50대의 높은 투표율과 지지율이 박근혜 당선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맞지만, 이게 마치 결정적 방아쇠였던 것처럼 논의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연 50대의 높은 투표율이 선례를 찾기 힘든 기현상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이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역시 다음 표를 보면 수긍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표를 대충만 들여다봐도 50대의 투표율은 어느 선거에서든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시기의 선거이든 간에 50대의 투표율은 모든 연령대에서 대부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구구성비가 달라짐으로 인하여 50대의 투표율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되었다는 분석은 이러한 과거의 경향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뭘 새삼스럽게…
인구구성비와는 상관없이 왜 항상 50대 투표율이 높은 것인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더해 필요한 것은 노년층의 투표율이 언제나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청장년층의 투표율이 낮거나 혹은 들쑥날쑥한 이유는 뭔지 이다. 이번 대선에서 보았듯이, 2030의 투표율이 전체 투표율인 75.8%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 연령층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게 다일까?
기실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중년층 내지 노년층보다 청년세대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어떠한 객관적 지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지표라는 것은 투표율일 뿐인데, 이 투표율이라는 것은 단순수치에 불과할 뿐 관심도의 높고 낮음을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년층의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정치에 대한 관심도 때문이 아니라 투표라는 행위에 참여할만한 동기부여 혹은 여건조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50대의 보수화 혹은 안정추구가 표심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의 여지가 발생한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의 문제에 대해 짚었던 지난번 기고(보머(bomber)가 된 부머(boomer), 대책 있나)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부머 세대의 불안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베이비부머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불안감은 단지 현재의 50대가 전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위 기고글의 분석에서 보았듯이, 1954년부터 1974년까지 물경 20년에 걸쳐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상의 변화를 따져보면, 항간의 분석에서 대두되는 부동산문제와 가처분 소득의 문제는 단순히 현재의 50대만 간직한 문제가 아니라 40대까지 폭넓게 걸쳐 있는 문제다. 만일 ‘안정’이라는 판단에 따라 유권자의 지지가 결정되었다는 논리가 가능하려면, 50대와 별반 차이가 없는, 아니 어쩌면 50대보다도 고용이라는 측면에서 더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40대가 왜 문재인에 대해 더 높은 지지율을 보였는지 설명이 곤란해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50대가 보여준 이 투표율을 단순히 ‘보수화’ 혹은 ‘안정추구’라는 성향의 표출로 직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50대가 가지는 시대적 특수성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반화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현재 (만 나이로)50대라고 하면 1962년에서 1953년까지 출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 연령층의 세대는 격동기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대이다.
1987년 당시, 이들은 25세~34세의 청년층이었으며 이들이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주역이었다. 또한 2002년 대선 당시 이들은 40대로서 76.3%의 투표율을 보이며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힘을 더했던 세대이다. 즉 지금의 50대는 격랑의 몰아치던 결정적 시기마다 ‘보수적’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포지션을 지켰던 세대였다. 그런데 왜 이들이 2012년에 와서 갑자기 ‘보수화’ 혹은 ‘안정추구’ 지향으로 변신했단 말인가? 오히려 여기엔 뭔가 다른 원인이 있는 것 아닐까?
간과하면 안 되는 지점이 또 있다. 이번 대선에서 5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분석의 전제는 ‘보수’ 후보를 선택한 다수 50대의 반대편에서 다른 선택을 한 같은 50대의 사람들이 ‘진보’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이어야 한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해 문재인을 선택한 50대는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이 ‘진보적’이어서 선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앞서 보았듯이 현재의 50대는 87년의 격랑과 2002년 대선의 격동을 거쳐 오면서 사회변화의 주축이 되었던 세대다.
이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하려면 적어도 문재인의 정책이 진보적이어야 했고, 더 나가 문재인을 잉태한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납득할만한 수준의 반성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었다. 따라서 현재 50대인 이들은 조금 ‘더’ 보수와 조금 ‘덜’ 보수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을 뿐이고, 진보라고 할 만한 주체들이나 정책들은 이들의 눈 밖에 있었다. 그런 면에서, 반성해야 할 주체는 50대가 아니라 진보 혹은 좌파세력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작금 50대 보수화 운운의 진정한 의미는 단지 반 이명박 전선에서 이들이 대거 이탈한 것에 대한 비난의 그럴싸한 포장에 불과하다. 반 이명박을 마치 정의인 것처럼 주장했던 세력들의 착시가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50대 ‘보수화’가 박근혜 당선의 원인이라는 분석은 인정할 수 없다. 더불어 세대의 문제가 이번 대선의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끼쳤다는 호들갑에도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역분할의 구도가 그것이다. 이게 왜 더 큰 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