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뒤집으면 진보정당 보인다(2012년 8월 경)

“진보정당은 ~하다”는 말들


진보정당에게 들씌워졌던 악의적인 프레임들이 있다. 진보정당엔 컨텐츠가 없다, 진보정당은 대중적이지 못하다, 진보정당은 포장을 못한다, 진보정당은 국정수행능력이 없다, 진보정당엔 인물이 없다, 진보정당은 집권의지가 없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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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의 인물은 누구?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진보정당엔 인물이 없다는 것. 이건 정말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왜 없을까? 진짜 없을까? 여기서 말하는 인물이라는 건 어떤 인물을 말하는 걸까? 대중적이면서 당의 얼굴로 내보낼만한 인물이 없다는 건 진보정당의 취약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짚어야 할 것은 진보정당이 가지고 있는 묘한 순결주의다. 그건 진보정당은 인물위주가 아니라 투쟁성과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진보정당 관계자 및 주변인들의 강박관념이다.

물론 말은 맞다. 그러나 이건 원론일 뿐이지 실물적 상황에서는 그저 망상에 불과하다. 우리의 이야기를 할 스피커를 만들어내고 그 스피커가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을 수 있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릴 기회가 생긴다. 따라서 당연히 인물을 만들어야 하고 키워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원론만을 떠들어대는 것은 해야 할 일을 못했거나 안 한 것을 만회하려는 알리바이 확보에 불과하다.


아프지만 인정하자 "집권, 하긴 할 겁니까?"


또 하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진보정당은 집권의지가 없다는 것. 이건 진보정당 내부의 의욕이 있느냐 여부와는 관계없이 외부적으로 비춰진 일련의 상황과 관련된다. 지난 총선시기에 당대표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각 언론과 가진 몇 차례의 만남에서, 진보신당은 사실상의 집권의지를 피력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이 부분 역시 진보정당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횡행하는 일종의 원리주의가 작동했다. 즉 진보적인 정당활동은 단지 원내 의석확보나 집권등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투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강조되다보니, 섣부르게 원내진출이나 집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원칙을 등한시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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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출처: 뉴욕타임즈 캡쳐)


그런데 원내진출이나 집권의 차원을 떠나 진보정치운동을 할 것이라면 굳이 제도권 정당을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는 뭔가? 여기까지 들어가게 되면 머리는 이상에 두고 발은 현실에 두어야 할 실존의 원리가 뒤집어져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 아닌 말로 대중정당이 집권의지를 보이지 않는데 어떤 대중이 그 정당에 대해 지지할 염을 낼 것인가?

결국 진보정당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고 키워 대표선수로 내보내야 하며, 결연하게 집권의 의지를 공공연히 밝혀야 한다. 이것은 원리와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꾸 순결주의에 파묻혀 원리원칙을 부정적으로 결부시킨다면 그건 대중정당의 길을 폐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상 두 가지 측면에서 진보정당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비판 중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나머지 부분을 보자. 과연 저 비판들이 진보정당에게 가해지고 진보정당의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은 정당한가?


컨텐츠가 없다? 없는 것 보다 빼앗기는 게 문제


요동치고 있는 2012년 정치판을 들여다보자. 새누리당과 민통당은 총선을 경유하면서 각축을 벌였고, 대선을 앞두고 치열하게 정치투쟁을 벌이고 있다. 내부적으로 누가 대권주자가 될 것인지를 두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고 있고, 이 마당에 정당정치의 외곽에 서 있던 안철수가 강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와 비박 주자들, 민통당의 문재인과 비문 주자들 간의 알력, 그리고 제3의 세력인 안철수가 서로 서로 합종연횡을 준비하거나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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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치판을 ‘상조회 정치’라고 규정한 바 있지만, 아무리 상조회정치라고 해도 자신들의 주변에 어른거리는 망자의 아우라만을 가지고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와중에 각 주자들과 정당들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당연히 정치집단이 내세우는 상품이라는 것은 정책이고 그 정책들은 유권자들의 표를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아름답게 포장되어 좌판에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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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임금차별 금지, 전세대출금리 인하.... 새누리당의 공약들을 보라.


그런데 재밌는 것은 2012년 정치판에서 돌출하고 있는 각 정치세력의 정책 중 상당수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진보정당에서 제시해왔던 정책들의 차용이거나 활용 또는 변용이라는 점이다. 

4월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갑작스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공약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러더니 총선이 끝나자마자 요소요소에 현수막을 내걸고 자신들이 발의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제시하면서 마치 그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애썼던 정치세력이라는 듯이 광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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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통합당은 반값등록금 포차 전국투어를 벌인다. 포차 쉐프들의 면모.


민통당은 어떤가? 근래 들어 갑자기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비록 보수언론에 의해 ‘서울대 폐지 공약’이라는 왜곡된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나, 대학교육개혁을 위한 상당히 급진적 대안을 정책으로 내 건 것은 솔직히 의외였다. 거기다가 이번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전국순회 포장마차를 출범했다. 그리고 전 대표였던 한명숙을 시발로 서울광장에서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릴레이 1인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1년 앞서면 잡스, 10년 앞서면 잡놈?


저들이 주장하고 제시하는 정책들이라는 것.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익은 것들이 아니었던가? 비정규 악법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 서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아직도 확연하게 기억하고 있고,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를 벌써 10년도 더 전에 제시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수정당들이 저러한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신기할 정도가 아닌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진보신당의 정책공약은 휴식이 있는 삶이었다. 아예 공약집의 제목 자체가 ‘휴(休) 한국사회’였지 않은가?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문화향유권의 보장 등을 통해 한국사회도 이제 휴식할 수 있는 사회,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진보신당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민통당의 유력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인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시적인 구호를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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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자뷰... 어째 기시감 느껴진다.

이런 사례가 얼마나 더 있을까? 그건 앞으로 시간을 내서 찾아보기로 하자. 다만 여기서는 이러한 사례들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검토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동안 진보정당의 이미지로 굳어져왔던 저 부정적인 모습들, 즉 “진보정당엔 컨텐츠가 없다, 진보정당은 대중적이지 못하다, 진보정당은 포장을 못한다, 진보정당은 국정수행능력이 없다” 등등의 비판들이 과연 적실했던 것인지 판단해보자는 것이다.

진보정당에 컨텐츠가 없다는 비판은 작금 2012년 정치판에서 보수정당들이 너도 나도 자신들의 대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들을 볼 때 가장 적실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사회에서 진보정당은 당장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말들만 골라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반년이나 1년 정도 앞서 뭔가를 내놓으면 ‘잡스(Steve Jobs)’가 되지만, 5년이나 10년을 앞서 뭔가를 내놓으면 ‘잡놈’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적 한계를 수용한다고 할지라도, 그동안 진보정당에 가해졌던 컨텐츠가 없다는 비판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거짓이다.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어떤 정당이 진보정당의 적통이냐는 가계혈통분석은 차치하고, 실제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그동안 한국사회의 진보정당들이 누구보다도 이 사회에 필요하고 유익한 대안들을 정책으로 내놓고 있었다는 것은 오늘 보수정당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책 베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이지 못하다?" 근데 왜 베껴가니?


진보정당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비판 역시 마찬가지로 적절하지 않다. 여기서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념지향적이면서 동시에 특정계급편향적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그런데 이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부당하다. 첫 번째 측면은, 아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명멸했던 정권 중에 이념지향적이지 않은 정권이 언제 있었단 말인가?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던 사람들 중에는 현직 대통령도 있는데, 그가 집권하여 지금까지 수행했던 권력행사는 정말 이념지향적이지 않고 순전히 대중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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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의 시댄 갔다능. 봉헌이나 하라능.

두 번째 측면은, 보수정당이 앞다투어 진보정당의 정책을 베끼거나 변용하는 저 현상들에서 그 부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그간 제시되어왔던 진보정당의 정책들이 대중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이념지향적이거나 계급편향적이었다면, 저들이 왜 지금에 와서 저렇게 마치 자신들이 오래 전부터 그리 해왔던 것처럼 진보정당의 공약들을 가져다 쓰고 있을까? 

그 어떤 정치세력보다도 보편적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칭하는 새누리당과 민통당이 대중적이지 못한 정책들을, 이념지향적이고 계급편향적인 정책들을 저토록 기꺼이 차용하고 변용하겠는가?

진보정당은 포장을 잘 하지 못한다는 비판 역시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입하고 막대한 인력을 가동하여 아름답고 매끄럽게 자신들의 정책을 포장하는 보수정당과, 돈도 없고 사람도 없어 기껏 있는 자원을 가지고 머리 싸매고 끙끙거려 겨우 만들어 낸 포장을 같은 레벨에서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활동방식, 즉 컨텐츠의 포장방식이 타 보수정당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평가될 이유 역시 없다.

예컨대 2004년 4대 악법 개폐투쟁에 맞서 다 망해가던 당시 한나라당이 어떤 식으로 맞불 작전을 펼쳤는지 상기해보자. 탄핵을 감행했다가 졸지에 역풍을 맞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던 한나라당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박근혜는 일단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은 촛불을 켰다. 

‘좌빨’들이나 하던 촛불집회를 그들이 똑같이 따라했고, 거기서 박근혜는 수첩공주니 100단어 공주니 하는 비아냥에 아랑곳 없이 오로지 “나라를 살리겠습니다”라는 한 구절의 말만으로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켰다.


"포장이 후지다?" 안 후져도 언론이 눈감는다 


또 있다. 최근 반값등록금 실현하겠다고 민통당이 포장마차를 전국으로 돌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진보신당은 이미 비정규사업장 및 각종 투쟁현장을 돌면서 ‘희망밥차’를 운영해왔다. 물론 민통당의 그것은 제목부터 다르고 그 목적과 제공되는 음식물의 차림표도 다르겠지만, 결국 그것은 희망밥차의 패러디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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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먹는 게 연대다! 비정규직/장기투쟁 현장을 돌고 있는 희망밥차. 희망밥차 생긴 게 언젠데, 과연 몇 번이나 언론에 회자되었나.


적어도 포장의 문제라면 이것은 진보정당 자체의 역량에 전적인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걸 받아주지 않는 언론의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할 것이다. 반값등록금 포차가 출범한다고 하니 온 언론에 도배가 되고 인터넷 매체에는 그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런데 과연 희망밥차는 몇 번이나 언론에 회자되었는가? 가물에 콩나듯이라도 알려졌던가? 기자들이 몰라서 안 실었을까?

경마장 중계하듯 정치기사를 만들어내는 기성 언론들의 선별적 의제화의 결과, 진보정당의 목소리는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를 부정당해왔다. 그게 진보정당은 포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근거가 되었다. 오히려 이 비판은 정확하게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힘 센 정치집단의 이야기만을 포장해주는 언론이 오늘의 언론이라고. 대중이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포장의 기술을 운운하는 것은 반칙이다.


"국정수행능력 없다?" 집권을 해봤어야 말이지


또한 진보정당은 국정수행 능력이 없다는 비판도 반박할 수 있다. 국정수행능력이 없다는 것, 달리 말해 수권능력이 없다는 것은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선, 진보정당에 이러한 능력이 정말 없는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언제 집권을 해본 적이 있어야지. 아니 언제 권력을 한 번이라도 줘 본 적이 있는가? 다시, 언제 권력을 줘 봐야겠다고 마음먹어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그런데 이런 반박만 한다면 그건 부족하다. 자칫하면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는 칭얼거림으로 끝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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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수행능력? 누규, 기존 집권정당들? 뽁큐 머겅~! 두 번 머겅~!!

그런데 이건 어떤가? 그토록 엄청난 국정수행 능력을 지니고 있는 보수정당들이 지금까지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왔는가? 멀리는 군사독재정권에서부터 가까이는 오늘날 온 국민을 ‘멘붕’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현 정권까지, 이들이 보여준 국정수행능력이라는 것은 어떤 종류의 능력인가? 과연 진보정당에 비해 상찬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국정수행능력을 보여줬는가? 바꿔 말한다면, 진보정당이 국정수행능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비판하기 위해선 진보정당 이외의 정치세력이 국정수행능력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정말 그렇던가?

지금 이 순간, 이러한 문제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첫째, 그 오랜 세월 동안 진보정당의 한계가 이런 것들이라고 말해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최소한의 자기반성을 해줬으면 한다는 것. 특히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했거나 해온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런 이상한 도식을 실제 그런 것처럼 대중들에게 각인시켜왔는데, 정작 오늘날의 현상들을 보면서 진보정당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전부 진보정당이 미워서, 혹은 진보정당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나마 진보정당에 대해 쓴 소리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비록 그들이 의도한 결과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한 마디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그대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고, 더욱 심각하게는 진보정당의 활동가들마저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충정은 높이 산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가 마치 실제 그런 것처럼 재생산되는 일이 앞으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둘째로,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조금은 더 자신감을 찾아줬으면 하는 것.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은 사실 수많은 현장활동과 선거를 거치면서 많이 지치고 힘겨워한다. 또한 자신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 위에, 진보정당의 한계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인상비평들의 난무 속에서 우리가 정말 그래서 안 되는 것인가라는 회의와 자조까지 겹친다.


지난한 발걸음, 꿋꿋이 한 발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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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땀흘리며 움직이는 진보정당, 더 당당할 자격 있다.

그러나 복기와 성찰을 넘어서 자신의 한계가 아닌 것까지 자신의 한계인 것처럼 승인할 필요는 없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의 모든 노력은, 더디지만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만들어왔고 바꾸어왔다. 그리고 그 지난한 발걸음들을 이제는 보수정당마저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물론 저들의 생각과 행동이 우리가 목적하던 것과는 아직 현격한 거리를 두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지 않은가?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 있지 않은가?

이 삼복 혹서의 시절에, 현장에서 땀 흘리며 움직이고 있을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자신들이 흘린 땀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새로운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하며 힘을 내기 바란다. 불볕 아래 흘린 땀이 가을걷이를 풍성하게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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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16:25 2016/10/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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