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30%짜리 대통령?(2012년 7월 말경)

대선 결선투표제는 법률사항이다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이 어떻게 “투표할 수 없는 계급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과 연관이 되는지에 대해선 지난 글(대선 결선투표제, 최선을 선택할 권리다 – R Zine 6월 27일자)에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환기하자면, 대선 결선투표제의 가장 큰 취지는 유권자로 하여금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군소 정당의 지지자들에게 이 권리는 그동안 ‘비판적지지’라는 명목으로 박탈되어 왔다. 따라서 대선 결선투표제는 자기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없는 계급”이었던 군소정당 지지자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결선투표제 도입은 또 다른 형태의 “투표할 수 없는 계급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그리 녹록치 않다.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문제로 대선 결선투표가 헌법사항인가 법률사항인가를 판단해야만 한다. 그런데 헌법사항인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방향이 필요한데, 하나는 헌법의 규범이 가지는 정치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헌법규정 자체의 해석적 측면에서 판단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것은 “헌법 해석투쟁 : 헌법도 우리의 무기다”(R-Zine 7월 2일자)라는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헌법 규정이 과연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가이다. 그리하여 준비한 것은 ‘재미있는 헌법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우리 헌법 제67조가 어떤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자.

우선 헌법 규정 자체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보자. 이를 위해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 헌법 제67조의 규정이다. 우리 헌법 제67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67조 ①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③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④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⑤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1항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자. 민주사회의 선거가 가지는 4대 원칙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므로 굳이 별도의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또한 제4항의 규정 역시 논외로 한다. 도대체 만40세가 된 사람만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 문제는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하므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30%짜리 대통령들


먼저 볼 규정은 제3항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만일 대통령선거에 단독후보가 출마했을 경우 선거권자 총수, 즉 총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을 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 난립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 규정은 사실상 적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독후보가 나올 경우에도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만 헌법상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제한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한국에서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은 최소한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만 한다는 조건이 성립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각 당선자들이 총 유권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지지를 얻었는지 결과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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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대통령선거 당선자들의 총 유권자 대비 득표율. 1987년 이후 다섯 명의 대통령 중 총 유권자 중 1/3 이상의 지지를 얻은 당선자는 김영삼과 노무현 두 사람 뿐이다.



결과가 이렇다. 즉 지난 1987년 이후 탄생한 5명의 대통령 중에서 총 유권자 중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사람은 김영삼과 노무현 두 사람 뿐이다. 결과가 말하고 있듯이, 단독후보로 출마를 하더라도 총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현행 헌법 상 한국의 대통령 자격요건을 충족한 대통령은 지금까지 단 두 명에 불과하다. 현직 대통령 이명박의 득표율을 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유권자 10명 중 7명은 현 대통령을 반대했거나 관심 없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달랑 10명 중 3명의 지지를 얻은 사람이 4대 강을 파헤치고 핵발전을 녹색이라 우기는 현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이해되는가?

헌법 제67조 제3항이 말하고 있는 일종의 역설은 한국 정치의 참담함을 그래도 웅변한다. 대통령 선거 자체가 위헌성을 가진 상황에서 치러지고 있고, 그 위헌성이 그대로 간직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 최소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그대로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공직선거법 구조가 여전히 존치되고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미 최소요건을 명확히 법정하지 않은 현행 공직선거법이 그 자체 위헌적 법률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더 재밌는 현상은 이 제3항과 제2항이 가지는 모순적 병렬구조이다. 제2항을 보자. 이 규정에 따르면 다수 출마자가 경합하여 대선에서 동일한 득표를 얻었을 경우 국회에서 결선투표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조항대로 결선투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2007년 대선 당시 총 유권자 수는 37,653,518명이다. 만일 두 명의 출마자가 각각 18,826,759표를 얻었다면 국회에서 결선투표를 해야 한다. 혹은 3명의 출마자가 각각 12,551,172표씩을 얻었다면, 또는 4명의 출마자가 각각 9,413,379표씩을 얻었다면 역시 국회에서 결선투표를 해야 한다. 그런데 물경 3천 8백만에 달하는 유권자들의 표를 출마자들이 한 표의 어김도 없이 똑같이 나누어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렇게 될 가능성이라는 것은 “지구가 달을 공전하게 될 가능성”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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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 버리겠네…” 지구와 달-1992년 갈릴레오 위성이 촬영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 규정에 따를 때 만일 동수 득표자가 둘 이상이 발생할 때 명문의 해석에 따라 결선투표를 치룰 수 있는 후보자의 대상이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예컨대 2명이 똑같이 1천 3백만 표를 득표하고 다른 한 명이 1천만 표, 또 다른 한 명이 1백만 표를 득표했을 때, 상위 2인의 득표가 똑같다고 해서 이 두 사람만으로 결선투표를 하도록 헌법이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즉 1천 3백만 표를 득표한 두 사람과 1천만 표를 득표한 사람과 1백만 표를 득표한 사람이 동시에 국회 결선투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헌법 규정


그렇다면 도대체 이 헌법 제67조 제2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헌법학계에서는 아직까지 이에 대해 별 다른 의견을 제시한 바가 없다. 그것은 헌법학계의 무관심 혹은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현재의 대통령 선거 단순다수결 투표제에 대한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전히 이토록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왜 그 누구도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를 지금까지 하지 않았는가는 숙제이겠지만, 이 규정은 오히려 대선 결선투표제에 대한 헌법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헌법 제67조 제2항을 의미 그대로 분석하면, 이것은 가장 예외적인, 즉 극도로 예외적인 상황 아래서만 국회의 결선투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그 외의 경우에는 헌법의 규정이 아닌 법률적 사항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 가능성을 천명하는 것이 바로 헌법 제67조 제5항이다. 즉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분설하자면, 대통령 선거에 관하여 공직선거법에 따른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 제67조 제5항의 원칙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최다 득표 동수의 후보자가 2인 이상 출현할 경우에는 제67조 제2항에 의거하여 국회가 결선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현행 헌법의 규정을 일탈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67조 제3항의 규정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공직선거법의 구조가 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행 헌법 제67조가 가지고 있는 이 “재미있음”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일단 여기서 종료하고 바로 결론으로 넘어가보자. 즉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가 헌법사항이냐 아니면 법률사항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이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우리 헌법 제67조는 각 조문 어디에도 법률에 의하여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를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규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2항과 제3항 및 제5항의 규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자면, 헌법의 규정 자체가 대통령선거 결선투표를 헌법사항으로 정하고 있다고 보기 보다는 법률에 의하여 엄격하게 구성할 것을 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에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를 규정한다고 했을 때 헌법 제67조 제2항과 충돌하느냐의 문제는 전혀 무리 없이 해결 할 수 있다. 즉, 위에서 본 것처럼, “지구가 달을 공전할 확률”로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 발생했을 때, 그 때는 국회에서 헌법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선거 결선투표가 법률사항이 아닌 헌법사항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헌법 규정의 규범적 해석 및 법률적 사항에 대한 다수의 의견과는 달리 헌법에 결선투표제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즉 제67조 제2항) 반드시 개헌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여기서 바로 헌법이 가지고 있는 정치규범성의 문제가 등장한다. 헌법은 결코 완결된 규범이 아니라 완성을 지향하는 불완전한 규범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불완전성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 정치로 표출된다. 헌법은 최소한에 제한규범인 동시에 그 제한 이외의 모든 것에 정치적 과정을 통한 새로운 방향성을 보장하는 규범체계이다. 이로 인해 정작 중요한 사실은 그 헌법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 보다도 그 헌법을 누구의 입으로 이야기하는가가 된다. 더 직설적으로 말해 현실 정치에서 누구의 힘이 더 센가에 따라 헌법이 발화되는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재 정치지형 상, 결선투표제 도입에 소극적이면서 결선투표제를 헌법사항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결선투표제도의 도입 여부와 관련 없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다. 당연히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입장은 그 반대의 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입장이 바뀐다면 그래도 여전히 이들 정치세력이 지금의 주장을 되풀이할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결선투표제도가 없이 선거 이전에 후보 단일화를 계속해서 가져가는 한, 이 땅의 군소정당은 자신들의 지지자가 도대체 얼마나 존재하는지 전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1987년 개헌 이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자가 실제로 이 사회에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존재하는지 단 한 번도 제대로 확인된 역사가 없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일정하게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거나 정국의 분할구도에서 어느 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결선투표제도를 반기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양당제 구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군소정당의 지지율이 정확하게 드러나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 최선의 선택을 주저하게 하고 그나마 차악을 선택할 여지만을 남기는 구조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최대한 확보하면서 군소정당은 한결 같이 무의미한 정치세력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이들은 선호한다.


4대 강만 안 파도 결선투표 가능하다


결선투표제 도입에 소극적인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여러 이의 중에는 (1) 시기상조, (2) 비용과다소모, (3) 후보난립 등이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도 일련의 비판이 가능하나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다만, 시기상조론에 대해서는 그럼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그 시기라는 것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인지, 비용과다소모론에 대해선 지지율 30%짜리 대통령 뽑아서 4대강에 쏟아 부은 돈만 해도 결선투표 100번은 치룰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후보 난립의 문제는 어차피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물론, 거듭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는 이것만이 군소정당이 살 길로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반드시 대폭적인 비례대표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 정책대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선거운동방식의 도입, 투표율 제고를 위한 획기적인 선거운용형태 개선 등 공직선거법 전반의 개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특히 투표율 제고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도 당의 사활이 걸린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때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도는 공직선거의 투표율 제고와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투표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단순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조건의 일단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공직선거법과 관련한 기본적인 운을 떼었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단지 대선만이 아니라 주요 공직선거에서 도입되어야 할 제도이며, 공직선거법 개정의 기본 과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결선투표제도를 도입해야 하는가? 바로 이 부분이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항, 즉 국회의원 선출제도를 어떻게 변경해야 하는가와 관련된다.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가 유지된다면 국회의원선거 결선투표제 도입도 이야기해야겠지만, 진보신당은 이런 식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자체를 뒤집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터이다.

이후에 올릴 글부터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지금까지 진보정당의 발목을 어떤 식으로 잡아왔는지에 대하여 좀 더 면밀한 분석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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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16:21 2016/10/2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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