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아직 남은 며칠을 경계하며...

혼자 있는 건 여럿이 함께 있을 때와 다르게 사람을 변화시킨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생각이 깊어지고 예리해지며 나름의 시간을 장만하여 하고 싶은 일을 방해없이 할 수 있다는 것. 부정적으로 보자면, 이게 또 영 꺼림칙하긴 한데, 자신감이 없어지고 조증과 울증이 굉장히 자주 그리고 강도 높게 나타난다. 나만 그런가?

그동안은 혼자 있든 여럿이 있든 그런 것에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는 그거 대로 괜찮고 여럿이 있을 때는 시끌벅적한 것도 나름 흥겨웠다. 그런데 올해를 지나면서,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들면서 모든 관계를 당분간만이라도 중단하고자 노력했다. 그게 8월 중순 이후였다.

1월 2일 심장시술을 했다.

2월-3월 그동안 경험해본적 없었던 두통으로 생 고생을 했다. 심장혈관계 약의 부작용때문이란다.

3월 코피가 터지더니 멎질 않는다. 코피를 멈추기 위한 약은 심장때문에 먹는 약과 상극이다.

4월 운동을 좀 하려 했다가 오른쪽 허벅지 햄스트링 파열. 아직도 쪼그려 앉으면 아프다.

5월 햄스트링 파열 때문에 제대로 걷질 못했다.

6월 천익이 형님이 돌아갔다. 간암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만나 퇴원하면 우동이나 먹으러 돌아다니자고 했건만 이제 영영 이루지 못할 약속이 되었다.

7월 말 노회찬 의원이 돌아갔다. 스스로 먼 길을 떠났다.

6월-7월 정줄을 놓는 일이 빈번해졌다. 천익이 형님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종종 나타나던 현상이었는데 노 의원 보내고 난 후 심해졌다. 누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내가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하면서 화들짝 놀라는 일이 많아졌다. 또는 어딘가를 가다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더 심각한 것은,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동안 절대로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이와 하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고 지켜왔는데, 이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지고 있었다.

7월-8월 지난 20년 동안 먹은 빙과류보다 이 7-8월에 걸친 한 달 동안 먹은 빙과류가 훨씬 더 많다. 더위때문에 눈이 돌아가고 정신이 나갔다. 짝지 덕분에 살았다.

8월-9월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당분간 일을 놓겠다고 이야기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부채의식을 지더라도 이번만은 혼자이고 싶었다. 어차피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9월-10월 연구실의 짐을 모두 뺐다. 집 근처에 토굴을 하나 팠다. 없는 처지에 빚을 내 토굴을 마련했지만 창고 이상의 용도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10월 초 결국 전립선 약까지 먹게 되었다. 조짐은 전부터 있었는데, 약때문인지 몰라도 증상이 심해져 결국 밤에 화장실 들락거리느라 잠을 설치는 일이 반복된다. 용주형 의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았다. 사실 그렇게 효과는 없는 듯...

10월 말 백동지가 거금을 제공해준 덕분에 야쿠시마를 갈 수 있었다. 힐링이 되는 곳이다. 하지만 거기 가서도 결국 누군가의 호의를 거절못하고 입 안에 뭔가를 넣었다가 금니 떨어지고 이빨이 깨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11월-12월 야쿠시마에서 빠진 이빨 치료를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뭐 좀 손만 댔다 하면 잇몸에서 피가 멎질 않아 번번이 치료를 중단하고 피가 멎을 때까지 며칠씩 기다리니...

한 해 동안 병 치료에 들어간 약값만 한 해 수입을 웃돈다. 하긴 뭐 수입이랄 게 있어야지... 늦게나마 직장을 잡아보려 했건만, 경력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그나마도 경력증명을 해줄 전직들이 다 사라졌다. 그거 참... 한 군데 보고 있는데, 마음은 절박하지만 운이 따라줄지는 미지수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다보니 소심해진다. 별 것 아닌 일에 자꾸 신경이 쓰이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같으면 그냥 웃고 말일인데, 자꾸 짜증이 나고 꼬치꼬치 따지게 된다. 그걸 또 누구랑 이야길 하면서 풀면 어떻게 풀릴지 모르겠는데, 혼자 앓는다. 나원참...

2018년이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징글징글하다. 내 생애 이렇게 고약한 한 해가 있었나 싶다. 기복이 꽤 큰 해도 있었다만 이정도로 악운의 연속이라고 할만한 날들만 연이었던 한 해는 없었던 거 같다. 며칠 남지 않았지만 남은 며칠이라도 조심조심 더 안 좋은 일 생기지 않도록 경계해야겠다.

내년에는 나아지겠지. 당연히 나아져야지. 나아지고 말 거다. 그래야 한다. 훌훌 털고, 이젠 '우주의 기운'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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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12:35 2018/12/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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