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답답한 아침이라서

나이를 먹고 직장을 잡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경력의 단절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고, 그럴싸한 라이센스 하나 없으면 심히 유감이다. 경력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마음은 무거워짐에 따라 심약해지고 소심해진다. 한국처럼 남성에게 특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그 기득권을 꽤나 누려왔던 나조차도 그럴진데, 하물며 여성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신문도 그렇고 온라인 뉴스도 그렇고 페북의 타임라인도 그렇고, 오늘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이야기가 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 중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다단한 진단이 나오고 있는데, 최악의 것은 현 정부가 여성친화적 정책과 태도를 취함으로써 20대 남성들의 지지가 빠졌다는 것. 이게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도,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반론을 하고 있으니 이따위 진단이 그리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요컨대 내 주변의 상황을 보면, 20대 남성들이 이미 나와 같은 한계와 피로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경력을 쌓고 싶은데 경력을 쌓기 위해 어딘가 문을 두드리면 경력을 요구하니 경력이 없어 경력을 못쌓는 일이 반복된다. 학력을 높이고 자격을 따봐야 오늘날 이 땅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최상위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변별력이 없으니 실상 쓸모가 없다.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돌아오는 눈총과 책무는 점점 커져간다. 어찌 하라는 말인가? 문제는 이 상황이 한국사회 20대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 역시도 똑같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문제가 되는가?

적어도 정치적 또는 법적 문제에 있어서 20대 남성과 그 또래 여성이 정부에 대하여 현격한 지지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발견하지 못하겠다. 심리적 또는 문화적 요인에 대해서는 이를 학술적으로 분석할 능력이 안 되니 인상비평정도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다. 내가 볼 때, 오늘의 이 묘한 이질감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남성됨'의 강제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인 듯하다. 시대는 이미 '남성됨'이라는 어떤 위상의 구축이 낡은 것이 되었지만, 그 낡은 것의 흔적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탈색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전히 윗 세대가 음으로 양으로 알려준 '남성됨'의 잔여의식이 20대 남성들에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제는 더 이상 '여성됨'이라는 고루한 위상구축의 틀을 먼저 던져버린 20대 여성들의 욕망의 표출과 직접적 개입과는 상대적으로, 20대 남성들은 '남성됨'에 의해 구축되던 자존감과 자부심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어떤 근자감을 여성들은 전취하는 반면 남성들은 그마저도 어찌 할 방법이 없다고 느끼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굴레로 닥쳐오던 '여성됨'을 걷어 차고, "우리가 가오가 없냐!"고 여성들이 외치게 되는 반대편에서, 기득권의 획득으로 항용 인식되던 '남성됨'이 고루한 것이 되는 바람에 "우리가 가오가 없냐!"고 외치는 게 오히려 가오 빠지는 일이 되어버린 20대 남성들은 그나마라도 자신들보다 조금은 더 누렸을 윗 세대에 대한 갈 데 없는 분노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단지 이번 정부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듯하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지금 이 상태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분노하는 20대가 윗세대가 된 후, 그리하여 지금은 없는 다음 세대가 어떤 '됨'의 구태를 극복하게 된 후에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싶다. 이것은 세대론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세대론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지금 20대가 왜 우리 세대랑 다를까라거나 하는 분별로는 설명이 곤란할 것 같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데 왜 여기서 성에 따른 태도의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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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7 09:54 2018/12/2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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