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결렬, 다시금 아쉬움에
몇 해 전에, 이석기 전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그러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당명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성명에서 나는 더 이상 휴전선 앞에서 진보가 멈춰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구절을 넣었다. 남과 북이 갈려 대치하는 상황이 웬만한 사람의 한 평생 살다 간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이념대립으로 형성된 적대는 결국 내부 단속용 무기가 되어 예를 들면 남한에서는 진보 좀 하자고 하면 죄다 빨갱이 내지는 북괴와 한 통속이거나 북괴의 간첩 취급을 당해야 했다. 이석기도 그런 차원에서는 피해자였고. 그래서 더 이상 휴전선 앞에서 진보가 무릎을 꿇지 않기를 간구했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지나가고 나서, 적어도 촛불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현 정부는 그런 의미에서는 조금 나아졌다고 인정한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현 정부가 북한을 여전히 자원조달기지 내지 새로운 시장 정도로 사고하는 자본주의적 발상에서 한 치도 더 나가지 못한 태도는 전임정부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을 보면 이게 어딘가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때로는 최악보다 차악이 나을 때가 있는 거다.
하지만 현 정부는 조금은 성급하다고나 할까, 스스로의 정치적 스탠스를 지나치게 근시안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 있다. 앞서 포스팅에서도 그런 갑갑함을 얼추 이야기했지만, 지금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적어도 미국과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개인과의 파트너십에 연연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연히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이므로, 그리고 그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위하여 전략적으로 대북정책에 자신만의 독특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에 트럼프를 제끼고 대북관계를 궁리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좀 더 냉정을 찾고 장기적인 프로세스를 염두에 둔 관계형성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러나 자꾸만 현 정부가 미국과 함께가 아닌 트럼프와 함께라는 수렁 속으로 휩쓸려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슬아슬하다.
김정은 또는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이 껄쩍지근하게 끝났음에도 김정은은 미리 예정되어 있던 베트남 일정을 그대로 소화한다고 한다. 트럼프가 덕담을 늘어놓는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체면을 살리고 떠났다면 김정은은 나름대로 크게 데미지가 없다는 것을 베트남 일정으로 보여준다. 분위기는 이런데, 실제 어떤 내막으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아직은 북의 입장을 들어야 어느 정도 파악이 될 듯 싶다.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만 놓고 보자면, 어쨌든 양자의 이해관계는 충돌했고 해소되지 않았다. 회담 결과와 관계 없이 트럼프는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계속할 것이고 제재를 이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한다. 김정은도 핵실험이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약속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게 언젠지는 트럼프도 모르고 김정은도 모른다. 체면 구긴 김정은은 북의 내부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지금보다는 강하게 미국을 비난할 수도 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긴 하고.
이 경우, 한국이 할 수 있는 건 북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계경색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율하는 한편 빠른 시간 안에 회담이 개시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트럼프바라기처럼 보이는 태도로는 이러한 역할이 쉽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이 베네수엘라 건처럼 트럼프의 비위를 맞춰줌으로써 북미관계를 끌어보려는 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중국, 러시아 등 남북 관계에 주요한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주시하고 그 외에도 북미간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다방면의 국제적 노력부터 경주하는 게 어떨까 싶다.
한편 현 정부는 남한의 정치적 문제해결을 통해 시민들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북미관계 개선 및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호응을 만들어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수구반동이 획책하고 있는 대결구도에 대해 결연하게 대응하면서, 우군이 될 수 있는 정치세력들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전반적 지지를 높이는 과정이 선재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겠고 여당인 더민당이 애를 써야 할 터이다.
그런데... 결론을 내리다보니 더민당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거 그러고 보면 난망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지금 더민당은 그다지 한국 내부의 정치경제문화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별로 없는 듯 하다. 노동관련 문제나 취업 등 경제문제가 깊어지니 엉뚱하게 자본에 기대고, 정치개혁문제에 대해서는 자유한국당하고 별반 차이가 없이 놀고 있고, 기타 사회문제는 그다지 신경쓰는 거 같지도 않다. 진짜 난망할세...
덧) 베네수엘라 건은 생각할 수록 거시기하네... 아니 그래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고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만들면서, 이젠 점점 도가 지나쳐 국뽕 세일하는 수준까지 가는 마당에, 정작 남의 나라에 대해서는 제국의 내정간섭을 받아들이라는 성명을 내고 자빠진 걸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대한독립은 만세고 베네수엘라 식민화는 땡큐고? 아니 참 나 이런 가치관의 혼란을 국가차원에서 저지르는 사태를 어찌 납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