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새벽 산행
3.1 운동100주년 기념으루다가...는 뭐 기냥 명분이고, 짝꿍의 연휴를 맞이하여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일출을 보기로. 새벽같이 출발해서 정수사 뒷편 등산코스로 참성단을 향해 올랐다. 시간관계 상 가장 짧은 코스를 잡은 것이었으나 아뿔사, 이게 짧은만큼 약간 험해서 깔딱고개가 있는데다가 워낙 새벽에 올라 작은 랜턴 하나로 길을 비추다보니 여기가 길이여 아니여 헷갈리기가 일쑤였다. 무난히 잘 타고 올라간 건 마니산 산신령이 보우하시었다고 여기기로 한다.
워낙 새벽에 길을 나선 참이다보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해서 중간에 앉아 꿀맛같은 참을 먹다보니 시간이 흘러버렸다. 참성단이 손에 닿을 듯 보이는 지점에서 일출맞이. 결국 참성단에 가서 해를 영접하지는 못했으나 어차피 참성단은 시간이 맞지 않아 개방이 안 되는 판이니 그게 그거라고 자위하고, 해맞이를 했다. 그나저나 먼지가 어찌나 심한지 이건 해가 먼지 위에 얹힌 것처럼 보이네...
산행은 잘 마무리했다. 마니산 바로 아래 헬기장 어름에는 고양이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곳이 산행객들이 주로 쉬는 장소이다보니 뭐라도 좀 먹을 게 있기 때문인듯 하다. 우리도 거기서 좀 쉬려고 앉아 주섬주섬 먹을 것들을 꺼내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서 눈치를 본다. 삶은달걀을 조금 떼어 흔들어주니 영 올 생각을 하지 않아 슬쩍 던져줬더니 냄새를 맡다가 그냥 내려간다. 이것이 던져줬더니 삐졌나... 이러고 있는데 이내 새끼고양이를 한마리 데려와서 지는 밑에 그냥 있고 새끼를 위에 올려보낸다. 새끼는 별반 눈치도 보지 않고 두리번 거리다가 던져진 달걀쪽에 다가가 냉큼 먹어치우더라... 아하... 고양이도 제 새끼를 먼저 챙기는구나... 새끼만 먹게 두고 어미는 종내 올라오지 않았다.
오는 길에 길상면 온수리에서 잠시 멈춰 밥도 먹고 목욕도 하고 동네 구경도 했다. 이 동네에는 원래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반선'이라는 집이 있는데 오늘은 어째 게장이 땡기질 않아 다른 먹거리가 뭐 없을까 싶어 주변을 배회했다. 눈에 띄는 곳이 마땅하게 없어서 돌고 돌다가 어느 골목길에 들어갔는데, "밥이 맛있는 집"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문은 열려 있는데 어째 영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질 않아서 빼꼼이 고개를 디밀고 밥 하냐고 물었더니만, 아 글쎄 이 쥔장 아지매가 여긴 백반은 안 팔고 병어조림만 파는데 많이 비싸니 저 밑에 백반집으로 가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빈티나게 보였으면 그러시나 싶어 약간 존심이 상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집에도 대형 병어가 기다리는 통에 굳이 그집에서 병어조림을 먹을 이유는 없어 발길을 돌렸다....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진짜 거 참 내가 그렇게도 없어보인단 말인가...ㅠㅠ
밥은 반선 건너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보니 소담골이라는 옥호의 갈비집이 있다. 겉으로봐선 갈비가 전문인지 막국수가 전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들어가보니 아무래도 돼지갈비집인듯 하다. 기왕 들어온 거 기냥 먹자고 해서 돼지갈비를 먹었는데 꽤나 준수한 편. 그런데 실은 주종목보다도 밑반찬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얼핏 보니 주방에 계시는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찬모이신듯 한데, 이분이 장금이셨나보다. 점심시간이라는 시간적 특수성이 있기는 했어도 공휴일인데다가 관광객도 잘 안 오는 듯 한데 오히려 동네사람들이 계속 찾는 곳인듯 했다. 암튼 잘 먹고 나왔다.
바로 근처에 작은 목욕탕이 있다. 여관(모텔이라고 되어 있긴 한데)에 딸린 목욕탕인데 온천수를 뽑아서 쓴단다. 목욕탕 이름이 약수천모텔사우나... 떡 들어갔는데 오호.. 일단 첫 인상은 왜 예전에 그 동네 목욕탕들이 한참 사우나 바람 불때 대충 리모델링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동네 목욕탕이었던 딱 그 수준. 옛 생각도 나고 해서 정감이 돋았다. 물도 괜찮다. 보들보들한 것이 물은 진짜 온천수인듯. 좋은 건 여기까지.
안타까운 것은 이 목욕탕이 도대체 언제 내부수리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낡았다는 것. 사우나에 들어갔는데 명색이 황토사우나이지만 벽에 일부 황토의 혼령이 남아 있을 뿐이고, 천정에 박아놓은 숯은 다 떨어져 바닥에 파편들이 굴러다니고, 방열판 앞에 매달아놓은 양파망 안에는 10년은 더 묵었을 듯한 도대체 뭔지 모르겠는 것들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그 지린내... ㅠㅜ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온천수의 수질이 괜찮다보니 시설만 좀 고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안타까운 건 돈 들여 리모델링을 해봐야 수지타산이 맞을까 싶다는 거. 동네에 사람들이 없는지 목욕하러 오는 사람도 뜸하고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봐도 새로 건물 짓고 있는 곳도 더러 있던데, 정작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 몇몇 어르신들이 오고가는데 죄다 연로하신 형편이다.
목욕하고 나와서 이렇게 목욕탕이 애잔해보이는 건 또 처음이다. 그나저나 그 사우나에도 걸물이 있던데, 5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한 중년이 그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가 한참을 있다가 나와 냉탕에 한 번 몸 담근 후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고, 또 한참 있다 나와 냉탕에 몸담그기를 몇 차례나 반복한다. 아주 걍 살을 다 삶을라고 작정을 한 것인가... 남탕에서 일보시는 분은 사람 들어가니 문앞에 와서 맞아주시고 나가려고 하니 문까지 나와 배웅해주신다. 이 목욕탕이 잘 되어야 할텐데...쩝.
3.1절 100주년이라 그런지 산행하는 동안에 날이 밝자 이마을 저마을에서 "아, 00리 주민여러분" 이런 전원일기 양촌리삘 나는 방송이 나오면서 태극기 달아라, 행사 나와라 안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먼지는 뿌옇고, 미래도 역시 잘 안 보이는데 이렇게 시간은 흘러 100주년이 기념된다. 마니산의 정기가 뻗쳐 좋은 기운만 넘쳐나길 빌면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