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좀 전에 대학원을 주제로 하는 칼럼 하나를 링크했는데, 그러고보니 대학원이라.

좀 오래 된 이야기지만, 난 대학원 진학을 할 때 몇 가지 고비가 있었다. 우선 대학원 진학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학부 4학년에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원에 가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더랬다. 애초에 대학이라는 곳을 늦게 들어간데다가 몸과 마음이 완전 연소되는 통에 1년을 휴학까지 했었기에 일단 나이라든가 뭐 그런 것이 워낙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문제였는데, 공장 다니면서 모아놨던 돈은 애저녁에 이미 다 썼고, 학부 2학년부터는 거의 노가다를 병행하면서 여차저차 학교 장학금을 좀 뜯어 먹은 통에 버티긴 했지만 아무튼 빈털털이였던 처지라 진학이 어렵기도 했다. 집안 문제도 그런데, 홀어머니가 연세는 들어가시는데 계속 봉제공장 다니시면서 어렵게 가계를 꾸려가시는 걸 보면서 대학원 가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대학 진학할 때도 내 욕심만 차리는 것 같아서 참 어렵게 말을 꺼냈었는데.

아무튼 이런 제약들을 뻔히 보면서도 대학원 진학을 결행했던 이유는 사실 뭐 별 거 아니었는데, 학부 4년 동안 학교를 다녔는데 전공에 대해 그닥 아는 게 별로 없더라는 걸 깨닫고는 완전 자존심이 상해버렸다는 거다. 결정적 계기는 행정법이었는데, 물론 행정법 강의시간 거의 대부분을 강의실 밖에서 보낸 결과이기도 했지만, 도통 이놈의 법은 뭐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행정법에 대한 이해는 이후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각종 행정소송을 진행하다보니 아주 기냥 쉽게 이해가 되긴 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법분야다. 어쨌든 이런 존심 꼬이는 것에 대단히 민감한 성격인지라, 누가 너 법대 나왔는데 이러저러한 법률 문제에 대해 좀 이야기해봐라라고 할라치면, 물론 내가 뭐 변호사나 기타 법조관련 자격을 가진 처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대충 어느 정도는 무슨 말이라도 해줄 요량이 생겨야 하지만, 막상 졸업을 앞두고 보니 쥐뿔이나 뭐 아는 게 없더라는 거.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일단 결정했다. 4년 뺑이치고 뭔 짓을 해서라도 학교를 다녔는데 까이꺼 2년 못다니겠나. 결심을 굳힌 후에는 어떤 전공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게 또 큰 고민거리였는데, 어떤 전공을 할 것인지는 어느 선생님을 찾아갈 것인지와 직결되고, 어느 선생님을 찾을 것인지는 어떤 학교 어떤 지역을 갈 것인지와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공장다니던 게 있기도 하고 워낙 학부 내내 쫓아다닌 게 노동현장이다보니 일단 노동법을 전공하고픈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학부 다니면서 흥미가 돋게 된 분야가 헌법이었다. 학부 헌법 수업은 주로 두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한 분은 끝내 박사과정까지 함께 한 지도교수이고 다른 한 분은 어쩌다보니 현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되어 진박노릇 하고 있는 어떤 분이었다. 암튼 정치적 경로는 둘째 치고 좋건 나쁘건 간에 두 분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그러다보니 헌법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노동법으로는 00대학의 P교수를 떠올렸고, 헌법으로는 XX대학의 K교수와 모교의 그분을 물망에 올렸다. 그때만 해도 노동법 전공의 교수님들을 그다지 많이 아는 편이 아닌지라 이름을 많이 들었던 분을 생각했던 거였고, 헌법은 나름 흥미가 있어 이래저래 찾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주로 시뻘건 쪽)를 많이 다룬 분들을 찾게 되었던 거다. 그런데 외람된 말이지만, P교수는 이미 그 당시에 노동법보다는 뭐 인문학쪽으로 많이 빠져버리셨던 통에 좀 빠르게 궁리를 털었고, 아쉬운 점은 K교수께서는 정년이 코앞이라고 하기에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담보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후보에서 제외하게 되었다. 이 외에 몇 분을 검토하긴 했지만, 두 분과 함께 가장 최고의 후보로 올랐던 지도교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야 뭐 이분 덕분에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격이 되었지만, 언제나 지도교수께는 죄송하게도, 제자 하나 잘못 만나서 내내 여기저기 불려다니시느라 고생만 하시게 만들었다.

안식년 떠나신 지도교수의 연구실로 쳐들어가 주인도 없는 연구실을 내 연구실처럼 꾸며버린 일이나, 이후 로스쿨 등으로 인해 견해가 갈리면서 상당히 서먹해졌던 시기도 있었고, 암튼 대학원 진학 이후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일이 거푸 벌어졌다. 게다가 처음에는 대학원조차 생각도 없었던 게 나중에 박사과정 진학까지 하게 되었으니 사람 일이라는 게 알 수가 없는 거다. 공고 나와서 공장 다니다가 박사학위까지 따게 될 줄은 나도 몰랐고 주변의 아무도 몰랐고, 며느리고 시엄씨고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일이었으리라. 암튼 그 파란만장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공부하는 양과 질이 완전히 예상을 넘어섰다는 거다. 대학원 진학하자 아, 이거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그 방대한 학습량에 치어 거의 돌아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다.

난 워낙에 기초적인 학습이 되어 있지 않아서 학부 내내 고생을 하긴 했었다. 예를 들면 영어같은 건데, 머리 털나고 영어공부를 한 적이 없는 처지인지라 학부에서도 꽤나 영어때문에 고생을 했고, 대학원 진학할 때도 영어시험이 최대 난제였다. 수능공부할 때도 영어는 도통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서 접속사와 관계대명사만 열 몇 개 외워서 수능을 쳤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해 수능이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독해고 뭐고 죄다 접속사와 관계대명사만 알면 거의다 풀 수 있는 문제들로 출제가 되는 통에 '우수한(!)' 성적으로 영어점수 획득. 그런데 그 이후 또다시 영어공부는 손을 털었더랬다. 그런데 석사 1학기가 되자 뭔 놈의 원서를 그따위로 많이 보는지... 수업시간에 슬쩍 눈치를 보면 내 교재는 한 줄 한 줄마다 그 줄만큼 단어 숙어 찾아서 밑에다가 써놓는 통에 책장이 온통 까만대 다른 학생들 책을 보면 아유, 걍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는 거라...

이놈의 단어는 몇 번을 찾아도 언제나 처음 본 듯 새롭고, 문법이라는 건 또 왜 그리 험한지 대학입시때도 제대로 안 봤던 교재들을 뒤져가며 외워도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러다보니 9학점 듣는 학기 내내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없었다. 이건 석사2학기 마칠 때까지 그랬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도 더 어려운 건,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일정한 과제를 내주고 그에 대해 검토를 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가 할 공부를 아예 처음부터 내가 찾아내야 한다는 거였다. 이건 내가 머리털 난 이후 겪었던 공부의 방식이 아니었던 거다. 하긴 뭐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공부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그건 예외로 치더라도, 학부에서도 별로 내 흥미 위주로 공부를 계획한다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 흥미라고 하면 그냥 어디 가서 술 처먹거나 데모질 하는데 쫓아다니거나 하는 거였으니 그렇기도 하다만.

아무튼 이래 저래 학습의 강도는 높았고, 나는 공부라는 걸 진짜 대학원에 가서야 비로소 해봤던 듯 하다. 그렇게 따지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공부라는 게 뭔지 잘 모르고 평생을 보냈을 수도 있을테니 그것만 해도 무리해서 진학한 게 여간 잘 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해본다. 위안은 시간이 지났으니 하는 거고, 암튼 그 당시에는 아주 기냥 쎄가 빠지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나마 주변에 동생들이 워낙 많이 도와줬고, 그 어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고쳐줬던 교수님들 덕분에 잘 견뎌냈다고 본다... 만은 다시 가라면 아마 30일 밤낮은 고민하다가 때려치지 않을까 싶다.

앞서 링크걸었던 글을 쓴 김우재 교수는 예전에도 대학원 가지 말라고 일간지에 칼럼을 올렸던 적이 있다. 워낙 센세이션했던 글인지라 사람들 사이에서 돌기도 많이 돌았고 나도 그걸 보면서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고개를 끄덕거린 적이 있다. 이공계 대학원을 주제로 한 이야기인지라 사회과학 분야하고는 조금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다. 특히 공부가 재밌어서 대학원 진학하는 나처럼 덜떨어진 인간들이야 그닥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진학을 하는 입장이라면 불쾌할지는 몰라도 현실이 그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뭐 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대학원이 힘들긴 했더라는 거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짝꿍이 대학원 진학을 했다. 이제 내일부터 석사 1학기 학사일정 최초의 수강이 있을 예정이다. 나이 50을 코앞에 둔 처지에 큰 결심을 한 것도 대단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관심을 더 면밀히 조탁하고자 하는 그 궁리에 찬사를 보낸다. 그건 그렇고, 짝꿍이 석사 1학기를 너무 쉽게 예상하는 것 같아 약간은 불안하다. 하긴 나보다 훨 똑똑하고 치밀한 사람이고 준비도 꽤나 하는 듯 하니 내가 오히려 과도하게 걱정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만.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짝꿍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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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20:38 2019/03/0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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