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고종국장을 재현한다고?

쏠쏠한 재미로 '소확행' 한꼭지를 훌륭히 수행하고, 블로그에 기록까지 남긴 후 뉴스를 좀 살피다 아연실색할 일을 발견했도다.

관련기사: 뉴시스- '고종황제 국장절차는?'

국립고궁박물관이 3월 내내 고종황제 국장기록을 전시한다고 한다. 전시할 수도 있는데, 이게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게다가 오늘 고종의 국장행렬이 재연되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노컷뉴스- 고종황제 국장 연출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면서 이게 가당한 일인지 싶다.

나는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입장이 있다. 물론 33인이 서명한 선언의 내용이 과연 혁명에 부합하느냐는 회의론도 있고 여러 측면에서 혁명성을 부정하는 입장도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3.1운동은 선언서를 누가 낭독했냐의 문제로 국한할 것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주권자가 황제 1인에서 전체 인민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관련하여 왕정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반제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자주독립투쟁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고종황제라니? 그것도 국가가 돈들여 국장을 연출한다고? 이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이러니 아직 한국은 조선시대의 연장선에 머물렀다는 냉소가 나온다. 지폐에 찍힌 얼굴도 다 조선시대 인물이고, 광화문 그 큰길에 차지하고 있는 인물상들도 죄다 조선시대 사람이고, 하다못해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수도라는 게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관습헌법이라고 못박았다. 이젠 그것도 모자라 고종 국장을 재연해?

신민이기를 거부하고 시민으로 스스로를 승격시킨 사람들을 기린다는 측면에서도 3.1절은 기념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전히 어떤 감수성은 시민의 자주성을 기피하면서 신민의 종속성을 추수하는 경향이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경향성을 보여주는 일군의 집단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이따위로 하다보니 박근혜가 탄핵당하자 "마마 용서하시옵소서"를 외치며 길바닥에 나자빠지는 사람들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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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1 18:58 2019/03/0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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