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잘 삭혀서 들어야 할 말
관점을 달리하면 답이 달라진다. 다른 말도 있다. 고 이재영이 내게 해준 말, 이게 어떻게 하다보니 만화 '송곳'에서 언급되면서 유명해진 말인데, 누가 최초로 이런 고급진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재영이 형에게서 최초로 들은 말인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보는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이 아마도 그런 뜻이렸다. 하긴 마음 한 번 돌리면 피안이 여기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겠지. 고로, 이 말들을 다 달리 뒤집어보면, 문제가 잘못되면 답이 잘못된다는 거.
링크를 건 이 칼럼은 그런 의미에서 문제를 잘 짚지 않은 결과 전혀 엉뚱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조목조목 잘 짚어주고 있다. 서울대에서 과학정책을 전공하는 어떤 교수가 조선일보에다가 이공계 다 죽게 생겼으니 서울대에 지원해라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는데, 김우재 교수가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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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교수는 "선진국일 수록, 대학원에서 사제 관계는 노사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노사관계로의 이행은,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의 귀결이다."라는 아주 중요한 선진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난 한국의 일부 교수들이 대학원생을 '사제관계'라는 허울로 옭아맨 후 가차없이 부려먹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그러면서 그러한 관계를 끈끈한 인정으로 포장하는 꼴을 볼 때마다, 왜 노동권은 '인정'의 범위 바깥으로 내쳐져야 하는 건지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동권은 인권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사람이 일을 하면 일에 대한 댓가를 줘야 한다는 건 그거 자체로 인정이 아닌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떠맡기면 안 된다는 것도 인정이고, 누구나 하기 싫어하고 고달픈 일을 어떤 연유에서든 떠맡은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인정 아닌가? 자칫하면 계약지상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긴 하지만, 너랑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인데 운운하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주고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더 훌륭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이의 글에 대해 김우재 교수는 아주 훌륭하게, 그러면서도 따끔하게 문제의식을 고취시켜주고 있다. 가끔은 이런 글을 보게 되기에 글 읽는 재미를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