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캬비크는 희망인가, 뽕팔이인가?

북미정상이 하노이에서 손 털고 일어서자 이후 진행의 예측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예상은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진행했던 회담과 유사한 경로를 걸으리라는 전망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 좋겠냐만은 막연한 희망을 현실성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건 아니지 싶다. 12일간 진행된 레이캬비크 회담이 결렬된 후 또다시 세계가 핵전쟁의 암운 속에 갇힌듯 했지만, 이 회담은 결국 이듬해 겨울 양국의 중거리미사일 폐기협정 체결과 1991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체결의 계기가 되었다. 이 회담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북미가 과거 미소의 경우처럼 궁극적으로 좋은 회담결과를 내기를 바라기에 이런 예를 든 것일테다.

레이캬비크 회담의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소가 궁극의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 과정과 배경은 북미와 사뭇 다르다. 기본적으로 당시 미국은 소련과 체제우위경쟁 과정에서 군비대결에 상당한 비중을 둔 상태였고, 레이건이 집권한 80년대에 그 상황은 더욱 격화되었다. 전임이었던 카터가 겨우겨우 마련한 미소 대화의 창구를 레이건 행정부는 막아버렸고, 무기체제를 우주로 옮기는 방안(전략방위구상, SDI)까지 구상했다. 이에 대해 소련 역시 더욱 강한 무기경쟁에 돌입했고, 양측의 대결은 국제사회의 불안을 가일층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가 아주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관련기사: 프레시안 - 레이건의 '두 얼굴'과 고르바초프의 혁명

레이캬바크 회담 직전직후의 상황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링크를 건 정욱식의 글에는 이러한 상황의 일단이 나타나 있다. 즉 레이캬바크 회담 직후 미국의 정치지형에 요동이 생겼는데,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함에 따라 SDI예산 확보에 난항이 발생했고, 이란-콘트라 사건이 터짐에 따라 레이건 행정부의 외교능력에 문제제기가 있었고, 강경파들이 물러나고 협상파들이 힘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소련은 미국의 대소강령론을 누그러뜨릴만한 여러 조치를 단행했고-예컨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가택연금 해제- 핵군축 협상과 SDI를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레이건이 이미 80년대 초부터 핵전쟁에 대한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선제적으로 미소회담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83년 칼 007기 격추사건을 계기로 레이건은 한 순간의 오해와 실수로 전 지구고 공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레이건은 미소간 핵 군축에 대한 경로를 준비했고, 그 과정에서 레이캬비크 회담이 열렸다는 거다. 이러한 내용들과 함께 레이캬비크 회담이 이루어지던 순간의 숨막히는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볼만하다.

관련기사: 한겨레21 - 김연철의 협상의 추억: 실패했으나 성공한 협상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열린 레이캬비크회담은 비록 미소 양 정상이 빈손으로 일어났지만 결국 서로가 원하는 것을 상세히 확인하는 과정이 됨으로써 이후 발전적인 협상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선례에 비추어볼 때 이번 북미 정상회담 역시, 지금 당장은 뭐 별로 남는 거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확인하였으므로 향후 중요한 결과를 낳을 밑천이 될 것이라는 게 이 레이캬비크회담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희망을 가지는 건 좋은데, 이게 약을 파는 것이 되면 안 된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착각은 레이건과 트럼프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거다. 레이건이 왕년에 말 등에 앉아 쌍권총 차고 서부를 누비던 카우보이 웨스턴 영화배우이고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하더라도, 트럼프처럼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해도 표만 얻으면 된다는 수준은 아니었다. 레이건은 최소한 대중정치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공화당의 전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았으며, 유권자들로부터도 상당한 지지를 받아 초선 때보다도 오히려 재선 때 더 여유있게 당선이 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지금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최고의 내정과 외교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당장 외교정책에서 레이건 집권 후기의 굵직한 외교성과-미소 군축을 포함한-를 거두는데 직접적 역할을 했던 조지 슐츠가 있었고 알렉산더 헤이그가 있었다. 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는 레이건 이후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레이건에게는 잘 훈련된 뛰어난 정치인들과 막강한 보좌진이 있었다. 트럼프는? 물론 트럼프 옆에도 유명짜한 스탭들이 있다. 코털을 날리면 전 세계에 분쟁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존 볼턴이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도 있다. 그리고 또?

고르바초프와 김정은 역시 완전히 다르다. 고르바초프가 했던 역할을 김정은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 주변에는 김씨 일족의 '선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김정은은 그 조부나 부친과 마찬가지로 조국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신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는데, 난 그런 믿음을 가진 그들을 보면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마음을 가지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김정은이나 그 일족이 처한 위치에 대해 오히려 객관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조선이 김씨 일족이 왕족처럼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체제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지에 상관없이 그냥 김정은이 통일하자고 하면 통일하는 그런 수준일까?

인물뿐만이 아니라 배경에 있어서도 상당히 다르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상대할 때, 소련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 가지고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이건 그냥 누가 먼저 단추를 누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제 맞다이를 뜨더라도 양패구상 아니면 답이 없는 싸움임을 뻔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총질만...이 아니라 미사일을 날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확실히 양패구상이 되어가는 군비경쟁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 지금 미국은 조선을 보고 군비확장하는 게 아니다. 이건 그냥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하는 구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해도 망하긴 하겠지만. 이미 조선은 더 이상 군비경쟁 해봐야 표도 나지 않으면서 먹을 것만 딸리는 상황이 도래했다. 미소관계처럼 누가 먼저 죽든 한 번 해보자는 악에 받친 결기가 언제든지 가동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현재의 북미에서는, 글쎄다... 그게 보이나?

더구나 트럼프를 둘러싼 미국의 정치상황은 레이건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레이건은 그나마 재선을 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의 지지를 확실하게 등에 업고 정치를 했고, 그로 인하여 그의 정책이 대중들로부터 외면되지 않을 수 있었던 상황이 있었다. 그가 아무리 신자유주의 대통령이고 뭐고 해서 비난받아 마땅한 정책을 취했던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대소 외교정책을 펼치는데 있어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건 중요한 조건이다. 반면 트럼프의 대북정책은 그런 정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게 민주당이 트럼프가 미워서 딴지 걸기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일부 식자층이 일종의 착시를 하고 있는 게 이 부분인데,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전쟁을 피하려 했다는 걸 다시금 인식하길 바란다. 이 부분은 나중에 좀 정리가 되면 따로 포스팅을 해야겠다...지만 할 수 있을라는지는 모르겠고.

두 나라 사이에 낀 중재자의 역할을 누가 하는지도 관건인데, 레이캬비크 회담 막전막후에서 프랑스의 미테랑이 나섰고, 닉슨 전 대통령이 나섰다. 이러한 중재자들이 적극적인 중재로 회담을 이끌었고 이후 회담을 끌어냈다. (이에 대해선 위 링크 정욱식 글 참조) 지금은? 시진핑이 그 역할을 하고 있나? 오바마가 하고 있나? 문통이 그 역할을 하겠다는 건데, 이게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문통은 중재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사자에 가깝다. 북미회담이 마치 한국을 떼어놓고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도 북미회담에서 나오는 결과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당사자는 바로 한국이다. 

트럼프가 재선할 가능성이 있다면야 모르겠는데, 당장 탄핵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입지는 위태롭다. 비록 하노이에서 손 털고 출발한 다음날 보수단체 집회에 가서 인기를 확인했다고도 하고, 오히려 지금 지지율이 약간이나마 상승했다고 하니 또 어떤 이야기가 돌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지금까지 미국 내 상황 돌아가는 게 트럼프에게 결코 좋지가 않다. 대중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 정책에 대한 대중적 동의가 없는 상황에서 레이건 당시의 결과가 재현될 것인가는 의문이다.

당연하게도, 레이캬비크 이후 이루어졌던 좋은 결과가 이후 북미 간에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다른 배경, 다른 조건, 다른 인물, 변화된 시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면밀한 수준의 대안이 준비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일이지, 그저 흘러가는 상황이 그때랑 비슷하다고 해서 그때와 같은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건 그냥 약을 파는 일일 뿐이다. 계속 이야기하는 거지만, 한국은 특히 트럼프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걸 넘어서 미국과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트럼프 한 사람을 어떻게 잘 엮으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기대는, 어쩌다 재수가 좋아서 바랐던 결과가 일부 나온다고 할지라도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졸지에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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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10:06 2019/03/0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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