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이 있다고 했는데...

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조금 웃기기도 해서 남긴다.

오마이에 뜬 기사 하나가 재밌다. 어차피 오마이 기사라는 것 중 대부분이 개인적 의견을 정리해놓은 수준에 불과한 것이 많지만, 나름 그래도 언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글 쓰는 이들도 '기자'를 자처하고 있으니 기사에 대한 기대를 안고 보기도 하는 매체이다보니, 여기 올라온 '기사'들이 간혹 수준미달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약간은 김이 새기도 한다.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게 어디 쉽나...

암튼 그런 건데, 이번에 본 기사는 기자가 아마도 현직 교사쯤 되나본데, 3.1절을 맞아 학생들에게 설문을 했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결론적으로 아이들에게 배운 게 많다 뭐 이런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이야 뭐 무난하다고 할 수 있겠다만, 이 사람이 설문을 진행한 걸 보면 내용전개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 태극기부대 주제가 된 애국가, 고등학생들의 엄청난 제안

이 기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들 70여 명에게 카톡을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해결이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과제를 묻는 '주관식' 질문이었다. 아이들이 보내준 답변들을 그러모아 나름 주제를 정하고 수업지도안을 만들어볼 요량이었다.

질문이 워낙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해 온갖 다양한 답변이 쏟아질 줄 알았다. 남북 화해와 평화, 지역 갈등과 경제적 양극화 해소가 우선 거론될 것이고, 최근 들어 이슈가 된 5.18 역사 왜곡 문제도 다수 등장하리라 여겼다. 그것들이 100년 전 3.1운동, 임정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발표와 토론 등을 통해 씨줄과 날줄로 엮어보려 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답변은 서너 명을 제외하곤 입이라도 맞춘 듯 한결같았다. 친일 잔재의 청산. 그것도 해방 뒤 친일파가 처단되기는커녕 그들의 후손들까지 독재정권에 빌붙어 승승장구하면서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는 후기를 예외 없이 덧붙였다. 쑥스럽게도 계기수업을 통해 가르치고자 했던 '모범정답'을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들켜버린 셈이다.

좀 길게 인용했는데, 이건 기자가 "온갖 다양한 답변이 쏟아질 줄 알았다"라고 하기엔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을 요구하고 있는 질문 아닌가? 아니 그래, 질문이 애초부터 "3.1 운동과 임정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라고 질문제시의 이유가 전제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정답찾기에 특화된 현재 교육풍토 속에서 자라난 학생들이 기자의 예상처럼 "남북 화해와 평화, 지역갈등과 경제적 양극화 해소... 5.18 역사왜곡 문제" 뭐 이런 걸 답이라고 내놓을 줄 알았다는 건가?

'질문에 답이 있다'라는 고래의 경구가 있다만, 이 경우는 아예 답을 유도해놓고 이런 답이 나올 줄 몰랐다고 하는 거여서 씁쓸하다. 선생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나머지 내용도 그닥 뭐 새롭거나 심도 있는 내용이 아니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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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10:09 2019/02/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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