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섭냐면
계속해서, 나는 '합법'이라는 말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실감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거냐면 다음 기사로 확인할 수 있다.
뷰스앤뉴스: 청 반발 "2~3일 청문회, 대통령 법적 권한 침해"
간단히 말하면, 청문회법 상 8월 30일까지 청문회가 열리지 않으면 그 다음 수순은 대통령 마음이라는 건데, 이렇게 법에 규정된 절차를 무시하고 여야 합의로 9월 2일~3일 이틀간 청문회를 한다는 건 법 위반이라는 게 청와대 주장이다. "법을 지켜라~" 내지는 "법대로 해라~!"가 청와대 주장의 요지다.
법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나온다. 그리고 한 번 형성된 법은 구성원 전체에 대하여 적용된다. 그 법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변경되지 않는 한 생명력을 유지한다. 따라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청와대의 문제제기는 전혀 하자가 없다. 법대로 한다는 게 뭐가 문젠가?
법대로 하자면, 청문회 진행 후 청문결과가 청와대에 보고될 최종 기한이 9월 2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야가 이 일정을 몰라서 지금까지 쌈박질을 한 게 아니라는 거다. 자한당의 깽판도 그렇지만 더민당이 적극적으로 청문회를 진행할 의사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적거리다가 끝내 정치적 합의를 통해 잡은 일정이 9월 2~3일인데, 청와대의 반발로 인해 의회의 정치적 결정이 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산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경우, 청와대는 내심 일정대로 청문회가 진행되지 않음을 빙자하여 국회에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기회는 찬스니 이대로 인선 강행하겠다는 빌미을 원했는데, 눈치 없는 이인영이 우유부단하다가 걍 밀려서 다 된 밥 똥통에 빠뜨린 것처럼 되어버린 것일 수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 보자면 이거 뭐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이런 짝이 된 건데.
난 이 경우, 법적 절차가 과연 9월 2~3일 청문회를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여지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현행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제6조제3항은 임명동의안 제출 20일 이내에 청문절차가 완료되지 않을 경우 인사권자의 재량으로 이를 10일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든가 말든가는 전적으로 인사권자의 판단에 의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에는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여 충분히 시한연장을 고려할 만하다. 즉 청와대가 국회의 합의를 존중한다면, 연장 기간에 걸쳐 있는 9월 2~3일 청문회를 받을 수도 있고, 적어도 법적 하자를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면 3~4일로 변경을 제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단 법 위반임을 천명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할 정도면 이 안을 철회하라는 요구임이 분명하다. 법을 안 지키면 정치고 뭐고 없다!
기실 청와대 역시 법은 일종의 면피용 핑곗거리고 정작 중요한 건 지금 밀리면 안 된다는 정치적 셈법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건다는 점에 아이러니가 있다. 집권 딱 절반이 지나는 상황에서 집권 후반기를 도모하기 위한 분절점인 현 시기에 야당에 밀리면 만사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이 작동한다.
일각에서는 아직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문재인 정권이 벌써부터 레임덕을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 내년 4월 총선은 여야 모두의 입장에서 대회전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이 판국에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는 향후 정국을 휘어잡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현재 여야의 구도, 정권과 야당의 대립각을 염두에 두면 윤석열-조국 라인이 구성되었을 때 현 정권이 움직일 여지는 한층 넓어지게 된다. 이쯤 되면 법은 그냥 빌미일 뿐이다.
이 정치적 대회전에 임박하여, 결국 법은 정치논리에 의하여 정치보다 우위에 서는 기이한 입장이 된다. 재미있다기보다는 무섭다. 난 법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