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후보자의 자세
인사권자 : 후보로 이름을 올리려는데 청문회를 거칠 것이다.
후보자 : 알고 있다. 준비하겠다.
인사권자 : 인신공격을 비롯해 온갖 말이 다 나올 거다. 각오해야 한다.
후보자 : 알고 있다. 각오하겠다.
인사권자 : 여당과 보조를 잘 맞추고 언론에 잘 대응해야 한다.
후보자 : 알고 있다. 조절하겠다.
인사권자 : 다 필요 없고, 20일만 눈 딱 감고 버틸 배짱 있으면 되는데, 가능한가?
후보자 : 뭐 20일 그까이꺼...
하긴 이제 100살 평균수명을 바라보는 시대에 고작 20일 쯤이야 어떻게든 못 버티겠나? 인사권자만 뒷배 든든히 밀어주면. 물론 때론 이런 게 필요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냥 이게 당연한 수순이 되어버리는 듯해서 영 뒷맛이 개운칠 않네... 이럴깝사 청문회를 왜 뒀는지.
헌법학계나 정치학계에서 한국 헌정질서 상 정부구성의 원리는 대통령제 중심에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했다는 개구라를 정설처럼 이야기한다.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하는 근거 중 하나가 의원들이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을 겸직할 수 있게 해줬다는 거.
이건 그냥 국회랑 행정부가 짬짜미할 여지를 만들어줬다는 것이고, 오히려 3권분립의 원리에 반하는 거라고 본다. 그런데 의원을 국무위원으로 만드는 게 그다지 반발이 없는 것이, 정권 차원에서는 자원을 쉽게 보충할 수도 있고 내 사람 갖다 쓰기 편한 측면도 있는데다가 의원으로서는 경력에 굵은 줄 하나 남는 거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
게다가 실무적 차원에서 이런 현상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의원을 각료로 쓸 때에는 청문회 절차가 아주 스무스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거. 동업자 정신이 발동해서인지는 몰라도 의원이 장관될 때에는 별 큰 소동이 없었다고 기억된다. 이것들이야 말로 '또 하나의 가족' 정신을 발휘하는 것들이다. 공적 지위에서 맡은 바 책무를 수행해야 할 자들이 사적 동류의식에 쩔어서 팔이 안으로 굽는...
그러다보니 현역 의원 또는 전직 의원이 각료가 되고자 할 때의 자세와 그딴 거 없는 사람들, 예컨대 학계나 시민사회에서 추천되어 각료 후보가 된 사람들의 자세는 완전 다를 수밖에 없을 거다. 최소한 인사권자의 전폭적 후원이 명백한 경우에는 20일 정도 개가 짖나보다 하고 참을 요량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어설프게 전직도 없는 사람을 후보에 올렸다가는 정치적 뒷감당 힘들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가 냅다 팽개쳐버리는 일이 생긴다. 그 덕에 뭔가 한자리 할 줄 알고 나섰던 사람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되면서 그걸로 사실상 관운은 종치는 일이 대부분이고.
즉 한국사회에서 국무위원 쯤 되려는 자는 일든 인생에서 20일을 지울 깡다구 정도는 갖춰야 하는 자들인데, 실은 그것도 뭐 하고 있던 자이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거. 세상 쉬운 게 없다.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