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임기 막판이라지만 이건 좀...
이건 증거보존을 해놔야겠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일부법률개정안에 찬성한 의원들 명단이다. 당일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심상정을 제외한 정의당 의원 전원이 찬성했다. 민중당의 유일한 의원도 찬성. 더민당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동안 법률안 모니터링을 하지 않다보니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이제와 뒷북을 치는 건 부끄럽지만, 이건 정말 이후에라도 곱씹어봐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이 법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다음 글에 잘 설명되어 있다.
미디어오늘: 기어코 '삼성보호법'을 만들어낸 국회의원들께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자운 변호사의 기고문이다. 임 변호사도 지적하고 있듯이, 이 법안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규정은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선 안 된다(9조의2)", "산업기술을 포함한 정보라면 적법하게 취득했더라도 그 취득 목적 외로 사용, 공개해서는 안 된다(14조8호)"라는 규정이며, 이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조항을 뒤에 두고 있다.
문제는 이 규정들이 반올림에서 그동안 삼성과 싸울 때 삼성측이 삼성반도체의 노동환경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사용했던 논리들이라는 거다. 반올림을 비롯한 삼성의 피해자들이 그 수많은 세월을 싸워 법원까지 끌고가 삼성의 행위가 부당함을 확정받았던 사건들에서 삼성이 저지른 위법행위들을 이제 합법화시켜준 게 이 규정들인 것이다. 이 법은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의 문제점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놓은 글이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산업재해 문제제기 틀어막는 산업기술보호법, 국회의 반성을 촉구합니다.
법률규정 자체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 법률개정에서 노동정치를 하겠다고 제도권 정치에 뛰어든 정당들이, 그리고 그 정당들에 속한 의원들이 여기에 대해 덜컥 찬성을 해주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적어도 이 정도 사안이라면 이미 문제제기가 있었을 터이고, 특히 삼성과 각을 세워왔던 진보정당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이 법안을 저지했어야 한다.
민주당이야 워낙 삼성친화적 정당이므로, 그리고 이 정권이 여전히 삼성과 한 몸이 되어 있는 정권이므로 이들에게 기대한다는 건 애초 어불성설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삼성을 한국재벌문제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는 진보정당들은 좀 더 면밀하게 고민했어야 하지 않은가?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질 무렵, 우리는 진보정당운동의 원칙 중 하나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하여 제도권 정치를 수단으로 노동계급의 대표자들을 의회로 보내고, 이들이 법률 제개정, 행정부 감시, 시민사회와의 네트워크를 하면서 노동정치를 실현하도록 만들었다.
그게 뭐 별다른 게 아니다. 바로 이따위 법률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막고, 삼성이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도록 압박하고, 그들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행정부를 독려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뭔 꼴인가?
임자운 변호사는 위 글에서 "이제라도 솔직하게 미안하다, 몰랐다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앞으로 어쩔 건지, 이 악법을 어떻게 되돌려 놓을지,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라고 읍소한다. 뒷북일지라도 이제 다시 몸싸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못하나?
법안 통과 된 날이 지난 8월 2일이다. 한참 일본과 '전쟁'이 발발하던 시기다. 조국 민정수석이 '극일'을 외치며 결사항전을 독려하던 그 시기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삼성의 반도체가 망한다고 난리가 나던 바로 그시기다. 바로 그 시기에 그동안 삼성이 저질러왔던 위법행위를 합법화해주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촛불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면서 스스로 노동친화적 정권이라고 했던 정부와, 그 정부와 한 몸이 되어 국정을 운영하는 더민당에 의하여 이렇게 노동자들이 죽어 나간다. 거기에 진보정당이 부화뇌동한다. 가관이다.
누가 그랬던가? 자본가들이 일으킨 전쟁에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고. 촛불정권이 장악한 오늘의 한국에서 바로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