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진영에 충실하길

임미리 교수가 다시 경향에 글을 올렸다. 

경향신문: [정동칼럼] 더 많은 정치를 위하여

그냥 정치학자다운 글이다. 학문으로서 정치, 올바른 이상적 정치를 이야기하는 수준이다. 신문칼럼에서 소화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수준의 계도성 충고라고나 할까. 숱한 말들을 만들어내며 필화사건에 준하는 대형 사건으로 터질뻔 했던 지난 "민주당만 빼고"와는 완전 다르다. "정당과 정치인이 못한다면 국민이 하면 된다"는 식의 정의라든가, "국민의 힘으로 더 많은 정치를 계발하자"던가라는 건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공자님 말씀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이렇게 됐냐고요... 국민의 힘으로 뭔 정치를 더 계발하나? 이건 그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 뿐이다.

이런 류의 우아한 말씀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가루가 되고 있는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노컷뉴스: 정봉주, 손혜원, '위성정당' 창당 군불 ... 민주당 속앓이

정봉주의 손혜원의 공통점이라는 건 정치를 그냥 게임 정도로 생각한다는 거다. 이런 자들은 허경영보다 악질적이다. 교주 허본좌를 따르는 숱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 사람들은 어제도 그제도 내가 지나다니는 골목에 나와 "국가혁명배당금당"의 찌라시를 내 손에 쥐어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숫자는 아마도 신천지 교인들 숫자보다 적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그냥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또는 심하면 맛이 갔구나라고 생각한다. 웃고 넘어간다는 거다.

그건 허경영 자신이 취하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자신의 아이큐가 430이라거나, 자신의 눈을 바라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공중부양을 한다거나, 안드로메다와 교신을 한다거나, 박근혜와 결혼할 사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해대면 대중들은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왠만큼 정신박힌 사람들이라면 그게 다 구라라는 걸 안다. 구라를 풀면 웃어주면 되는 거지 그걸 각주 달아가며 매달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손혜원이나 정봉주 같은 케이스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대의(큰 뜻...아, 이거 진짜 진보블로그는 한자지원을 포기했나...)로 포장한다. 자신들이 시대정신을 대의('대의정치'의 그 대의... 한글전용 만쉐!)한다고 주장한다. 이건 거의 사기나 마찬가진데, 허경영이 대놓고 "난 사기 치는 거 맞아.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닭!"이라고 하는 거와는 반대로 이들은 "난 지금 진지하게 정치를 이야기하는 거라구!"라며 사기를 친다. 전자는 코미디지만 후자는 범죄다.

이런 와중에 선거는 치러진다. 그 선거 자체를 보이콧하면 모를까, 유권자들은 이 허망한 자들이 포함된 수많은 정치세력들 가운데 자신의 뜻을 대의할 사람들을 선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대중들은 망설이게 된다. 이성은 임미리 교수가 하는 말에 동의한다.

"노동권을 신장하겠다는 약속을 믿지 말고 강남역 철탑의 김용희씨가 땅으로 내려 왔을 때 비로소 표를 주자.",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상식을 주장한 이를 선택하자", "'을'들을 위해 분투한 정치인과 재벌에 영합한 정치인을 공개해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임미리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투표함 앞에서 유권자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결국 임미리 교수의 말대로 하자면 이따위 대의정치는 집어치워야 한다. 김용희씨가 땅으로 내려올 때까지는 모든 선거를 보이콧하자!

뭐라고?... 도대체 그가 언제 땅으로 내려올 수 있겠는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상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는 선거를 보이콧하자!

이런... 차라리 임미리가 다시 선거에 뛰어들던가. 그런데 임미리는 진영논리에서 완전 자유로운가? 좌파라메?

정치인들의 행적을 완전 공개하기 전까지는 어떤 선택도 하지 말자!

사실상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행적이 대부분 까발려지는 자들은 정치인들이다. 이미 어떤 자가 이재용을 핥았고 어떤 자가 '을'들을 위해 빡시게 뛰었는지 대부분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 중에 누가 '을'들을 위해 빡시게 뛴 거지? 그 기준은 뭐고?

이러다보니 저 손혜원이나 정봉주 같은 자들이 다시 정치판에 뛰어들어도 유권자들은 그들을 과감하게 내치는 것이 아니라 갈등하게 된다. 유권자들이 "더 많은 정치를 계발"하는데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건 좌우가 공히 똑같다. 임미리 교수의 글은 최소한 깨시민 이상으로 조금은 더 진보적인 사람들을 전제하고 씌여졌다. 하지만 그 반대는? 예를 들면 자유시장의 가치가 너무나 소중해서 떼법만 믿고 덤비는 '을'보다는 오히려 이재용을 밀어줘서 경제적 파이를 키우고 싶은 유권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 역시 "더 많은 정치를 계발"하는 차원에서 낙후지역 투자를 통한 개발이익을 거두는데 모범을 보인 손혜원을 찍을지, 그냥 딴 생각 하지 말고 재벌 밀어주자는 미통당을 찍을지 망설이는 거다.

정치학자로서, 게다가 글 한 번 올렸다가 호되게 경을 친 입장에서 뭔가 중립적이고 좀 더 폭이 넓은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민주당만 빼고" 식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아니면 그냥 그까짓 일로 고발씩이나 하고 자빠진 더민당이나 실컷 까든가. 어차피 자신의 입장과 태도가 진영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다는 걸 임미리 교수는 잘 알고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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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11:23 2020/02/2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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