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어제 위성정당 관련 대응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간담회를 가졌다. 다들 화도 많이 났는데 어찌 대응할 방안이 뾰족하지 않으니 갑갑할 수밖에 없었다. 위성정당관련 각종 소송진행상황을 공유하고 특히 중선위의 위성정당 비례명부 수리를 취소하라는 헌법소원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이 있었다. 선거 끝나기 전에 할 숳 있는 일이 있을지, 선거가 끝나면 뭘 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다. 역시나 확연히 뭘 할 것인지가 정해지진 않았다. 아마 지금 상황을 보는 사람들의 심경이 다들 이와 같을 거다.

어쨌든 선거 후 위성정당의 문제점과 현행 선거법의 문제점을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데는 다들 동의했다. 모인 사람들이 뭔가를 해보자는 이야기도 큰 이의 없이 넘어갔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간담회의 논의 중 했던 생각을 정리는 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해두기로.

난 가끔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특히 법이나 정치 전문가, 정당활동가 등이나 그 중에서도 진보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있는데,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정당의 상을 전제하고 그에 맞추어 정당정치를 논하거나 정치관계법을 논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이상적 모델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고, 이상적 모델은 말 그대로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어떤 이상적 형태를 향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런데 그 이상적 형태가 정말 이상적인 것인지도 문제려니와 굳이 그런 이상적인 모델을 설정하려고 노력할 이유가 있는지도 문제다.

예컨대 헌법재판소가 정당의 표지라고 설정한 7가지 기준이 정당을 이야기할 때 간혹 이야기되는데, 난 도대체 그 표지를 볼 때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나 재판연구관들이 정당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이라도 해보고 그런 지표를 이야기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어떤 표지라는 게 일종의 강학적 기준이라면,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혹은 현실에서는 어떤 것들이 정당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중히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의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정당의 지표, 즉 정당은 “1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또는 헌법질서를 긍정할 것, 2 공익의 실현에 노력할 것, 3 선거에 참여할 것, 4 정강이나 정책을 가질 것, 5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할 것, 6 계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을 구비할 것, 7 구성원들이 당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할 것”이라는 이 지표들 중에 과연 정당이 갖추어야 할 혹은 실제 정당들이 갖추고 있는 지표라는 게 어떤 걸까?

정당은 선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자체적인 정강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당원의 자격 등이 정해져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헌재가 말하는 1번, 2번, 5번, 6번 같은 지표는 정당의 지표라기보다는 선거 때 유권자가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의 한 항목일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거나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정당은 어차피 선거에 안 나온다. 정당 등록도 하지 않을 거고. 이러한 정당은 정치관계법에 어차피 해당되지 않는다. 미래통합당이 얼마나 공익의 실현에 노력했는지 모르겠다만 정당으로서 잘 버티고 있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지 않으면 선거 때 나오지도 못한다. 하다못해 혁명배당금당이나 기본소득당 조차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한다.

그런데 여기서 “계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을 구비할 것”이라는 건 왜 튀어나오는 걸까? 만일 이 지표를 승인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정당법이나 공직선거법을 고쳐서 선거용 정당연합이나 연합정당을 구성할 수 없게 된다. 초단기적 정당은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지표의 취지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도대체 어느 정도나 오랜 기간 동안 계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하나?

이 이상한 지표기준들을 비롯해서 헌법 제8조 제2항 같은 조항은 사실 있으나 없으나 별 문제가 없거나 오히려 있음으로 해서 문제가 야기되는 기준들이다. 헌법 제8조 제2항은 전단에서 정당의 목적, 조직,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왕정복고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내부 질서를 왕조시대의 그것으로 규율하고 있다면 이건 바로 위헌정당으로 해산되어야 하나? 형식적으로는 해산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제8조제2항의 규정은 바로 제4항 위헌정당해산규정의 재판규범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상의 왕정복고당이 현실에서 어떤 위법한 행위를 했는데 그러는 건가?

사실 위성정당 따위나 만들어내고 있는 미통당이나 더민당은 오히려 목적과 조직과 활동이 민주주의를 왜곡함으로써 반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마치 자신들이 그러한 위헌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민의를 어지럽히고, 그럼에도 한국사회의 정치적 자산은 살뜰하게 둘이 나눠먹고 있다. 이들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해산할 수 있을까?

아 뭔 말 하려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배가 산으로 가벼렸는데, 암튼 그래서 난 향후 어떤 운동을 한다면, 운동을 기획하는 주체들 스스로가 어떤 교과서적인 정당의 이상을 전제하고 거기 맞춰서 제도를 정비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컨대 지금 헌재가 이야기하고 있는 정당의 7가지 표지 따위는 그것이 표지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거기에 얽매이는 순간 정당운동이라는 건 물거품이 된다는 거다. 더 많은 자유가 아니라 더 많은 규제를 요구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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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0 13:36 2020/04/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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