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실제로 원했던 '뉴 노멀'
'촛불'이 왜 퇴락했는지를 묻는 질문은 좀 공허하다. '촛불'이라고 명명된 어떤 사건은 결과론적이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질서, '뉴 노멀(new nomal)'의 출발점이었던 듯 하다. 그 신 질서는 구체제가 가지고 있었던 가치관 중 꽤나 중요했던 것을 폐기하는 것이었는데, 그건 중산층 이상의 계급들이 공유한 삶이 사회적 표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학력 & 고소득 계급이 계급의 대물림을 위해 별도의 연합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그저 생활 그 자체가 바로 그들만의 리그로 나타날 수 있는 그들만의 대동세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촛불’은 그 리그보다 위에 있는 어떤 계급에 대한 분노였다. 자신들은 그래도 돈들여 자식들 교육시키고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 ‘경쟁’을 초월한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이들 고학력, 고소득 계급은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남연맹의 공고한 상류계급의 연대마저도 넘볼 수 없는 대통령의 배후, 그 배후가 인상 한 번 쓰자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은 말을 갖다 바친다. 경쟁이란 것이 왜 필요한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다는 사실에 강남의 고학력 & 고소득 계급이 분노하고 움직였다. 실은 그게 ‘촛불’의 힘이었다.
입법, 사법. 행정, 문화, 교육, 자본 등 모든 영역에서 계급의 동위를 구성하고 살고 있던 자들이 움직였기에 대통령은 탄핵되고 ‘촛불’ 정권이 들어섰다. 이 과정을 거쳤기에 이제 남은 건 ‘촛불’이라는 외피를 쓰고 준동했던 이 고소득 & 고학력 계급들이 공유했던 질서체제가 사회의 ‘노멀’이 되는 것이다. 그들 계급 사이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자녀 교육과정에서의 논문 품앗이며 인턴 두레며 등등이 이 사회의 표준이 되어야 하는 거다.
조국사태로 드러난 이 ‘뉴 노멀’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상당히 우습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우스운 ‘뉴 노멀’을 사회의 진정한 신질서로 만들겠다는 자들이 이번 선거에 대거 등장했다. 그들은 여야로 나뉘어 싸우는 척하지만 그들의 공약은 물론 그들의 행태는 이들 계급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신질서로 안착시키고자 하는 질서체계를 오래도록 작동시켜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조국사태’를 분기점으로 갈린 피아는 실제로는 ‘조국사태’ 이전에 어느 정도 유지되어왔던 사회적 가치관, 즉 지위를 이용하여 반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무시해도 좋으며, 이제 아예 그런 것쯤이야 무시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뉴 노멀을 공유하는 동맹의 구성원들이다. 그들의 싸움은 그저 그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는 시스템 위에서 누가 좀 더 자원을 가져갈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 뉴노멀(new nomal)이 이야기되는 맥락은 우려스럽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말하는 사람들이 선뜻 선뜻 내비치는 저 단어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풍긴다. 코로나19가 몰고올 뉴노멀이 뭘지는 감이 잘 안잡히지만, 이번 총선이 몰고 올 저 고학력 &고소득 계급이 원하는 뉴노멀은 그게 어떤 건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