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거리

개인적으로 민중가요 제작자인 윤민석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다. 여러 가지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민중가요라는 명목에 집착한 나머지 '민중'이라고 칭해지는 일군의 무리에게 '가요'라는 범주가 가지는 예술성과는 거리가 먼 노래들을 제작 보급하는 자로 윤민석이라는 사람은 기억된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는 별개로 윤민석이라는 사람의 장점은 시의적절할 때 인구에 회자될만한 곡들을 뽑아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특한 과자' 같은 곡. 매우 기특한 곡이었다. 상황에 적절한 노래를 만들어내는 윤민석의 센스, 이건 다른 모든 단점들을 열거하더라도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할만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여튼 윤민석이 또 한 건 벌렸다. '평양에 가보세요'라는 제목의 이 노래. 아주 기이하고 발칙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일단 가사를 함 보도록 하자.

 

사는게 힘들다 느낄 땐 평양에 가 보세요
어려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있죠

사람의 정이 그리울 땐 평양에 가 보세요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그런 인정이 있죠

평양에 가 보세요 사람이 살고 있는
평양에 꼭 가 보세요 고향가는 마음으로

일단 가사 자체는 그닥 수긍하기 어렵다. '어려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다.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그런 인정', 이거 역시 잘 살펴보면 남한 땅 구석구석 여기저기 많이 존재한다. 돈도 없는 처지에 평양까지 가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치 평양의 관광진흥기관 같은 곳에서 만든 노래 가사와, 70년대 음반마다 끼워져 나오던 '건전가요' 풍의 곡은 그 자체로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게다가 저 노래 가사 중 '평양'이라는 도시의 지명은 그 자리에다가 어떤 도시 지명을 넣더라도 무난하다. 각자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의 지명을 그 자리에 넣어보라.

 

뭐 물론 그 자리에다가 '서울'을 집어 넣는다면 그건 좀 구색이 맞지 않는다. 이명박만 좋아할 노래가 될 것이다. 좀 더 섹쉬하게 보이기 위해 저 자리에다가 '여의도'를 집어넣는다면 아마 정신나간 인간으로 취급될 게다. 다른 가사를 다 바꿔야할 거다. 그러니까 가사에 맞는 그런 지명 넣어보시기 바란다.

 

어쨌거나 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중요하니까 그 얘기나 마저 하자. 윤민석은 이 노래를 만든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의 제단 위에" "마지막 제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윤민석의 기지가 돋보인다. 결국 이 노래는 국가보안법에게 엄청난 딜레마를 안겨주게 되었다.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제1항에 따르면 이 노래는 볼 것도 없이 "반국가 단체 고무 찬양 선전" 행위로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심장 '평양'을 아름다운 곳으로 미화하면서 찬양 고무하고 이 도시를 선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듣는이들로 하여금 국가보안법 제6조제1항 '잠입탈출'죄를 저지를 것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민석은 이 노래를 만든 의도를 적절하게 포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제단 위에" "마지막 제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이유의 설시만 없었다면 윤민석은 곧바로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구속수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제물이 되기를 작정하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 순간,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기가 매우 곤란해진다.

 

국가보안법 제7조제1항의 규정에 따라 처벌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고 있어야 하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필요하다. 물론 대한민국의 법원은 이 주관적 구성요건이 미필적 고의로도 가능하다는 유치찬란한 판례를 고수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이 주관성이 있어야만 범죄로서의 형식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윤민석에게 국가보안법 제7조제1항이 요구하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갖추어졌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애초부터 이 노래를 만든 이유가 북한을 고무 찬양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국가보안법의 허구성을 밝히겠다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본심이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윤민석이 스스로 밝힌 노래를 만든 이유만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러한 논리보다는 보다 공격적인 논리가 필요하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 세력이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시청 광장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김일성 부자를 찬양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국보법 폐지론자들은 "형법으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국보법 폐지론자들이 주장해야하는 논리는 이런 것이 되어야만 했다.

 

"그게 뭐 어때서??"

 

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들고 김일성 부자의 초상을 들고 찬양을 하던 난리 굿을 하던 그 자체가 범죄이어야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무장봉기를 주장하며 주체의 나라 건설하겠다고 총질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어차피 거기 모여서 집회한다고 하면 이명박이 나서서 원천봉쇄할 거다. 지 잔디밭 망가지는 꼴은 눈뜨고 못볼테니까.

 

윤민석의 이번 노래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는데서 의미가 있다. 그냥 그렇게 떠들도록 놔둬도 남한 사회 아무런 이상 없다. 아니 오히려 계속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생겨야 한다. 솔직히 북한이 좋은지 나쁜지 제대로 아는 사람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되겠나? 뭘 알아야 비판을 하던 싸움질을 하던 할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도 "평양"이 사람 살만한 따뜻한 정과 인간미가 넘쳐 흐르는 동네라고 알리는 윤민석의 행위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번 기회에 윤민석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평양 말고 대동강이나 압록강 근처 외지에 살면서 중러국경을 수시 월경하여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도 다녀와 노래말로 소개 좀 시켜달라는 것이다. 평양이야 뭐 지금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기사나 사진만 스크랩해도 꽤 깨끗하고 잘 꾸며진 도시라는 거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린 평양이 아니라 북한이 궁금한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 소개하는 노래가 많이 필요할 거다. 아무튼 윤민석의 앞으로 행보에 기대가 크다.

 

이야기가 옆으로 샌 경향이 있는데, 어쨌든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기 위해서 주장해야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다. 정치사상의 자유라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라던가 "우리 대통령 만세"라는 범주 안에서만 용인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 부자에 대한 고무 찬양도 함께 인정될 수 있을 때에만 그 존재가치가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진짜 김일성 부자가 고무찬양될 대상인지는 검증과 분석을 통해 얼마든지 확인될 수 있다.

 

자, 국가보안법, 이제 윤민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잡아 넣을 것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하고 결국 "국가보안법의 제단 위에" "마지막 제물"을 만들어낼 것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행위의 결과로 볼 때 완벽한 국가보안법의 위반이다. 그러나 그 의도로 볼 때 국가보안법 상 고무찬양죄를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구성요건이 영 엉뚱하다.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이 공갈빵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윤민석을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윤민석을 처벌하게 되면 이놈의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자 어쩔 것인가? 어쩔 것인가?

 

(뱀발) 옛날 한 성의 왕이 성문으로 들어오는 외부인들이 이 성에 들어오는 이유를 밝히도록 하고는, 그 이유가 거짓이라고 판단될 때는 그 자리에서 죽이도록 법을 만들었다. 그러자 어떤 이가 이 성을 들어오면서, 자신이 이 성에 들어온 이유는 죽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자, 이 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여야 하는가, 아니면 살려야 하는가?

 

(뱀발바닥) 사실 윤민석이 노래를 만든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제물 운운한 것은 씁쓸한 일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윤민석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경찰이나 검찰이 군침을 흘리기는 하겠지만 얘네들은 정치권의 향방이 어디로 흐를지에 따라 움직이는 애들이라서 별로 걱정할 것은 없다. 윤민석처럼 센스가 뛰어난 사람이 이런 상황을 판단하지 못했을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노래를 만든 이유를 그렇게 밝힘으로써 국가보안법의 마지막 희생양이 될 여지는 사라졌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윤민석에 관한 딜레마는 시작된다. 정말 처벌 받기 위해 만든 것인가? 아니면 처벌받지 않기 위해 이유를 밝힌 것인가? 흐흐흐흐흐....

 

(뱀발바닥의 때) 윤민석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서도 이 노래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게 된다면 난 또 그를 변호할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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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5 03:53 2005/01/05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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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뱀발)에서, 만약 형이라면..??

  2. 정양/ ㅋㅋㅋ 저같으면 저런 씨잘떼기 없는 법은 애초부터 만들질 않습져. 네.

  3. zzz

  4. 오마이에 들어갔더니 그새 윤민석이 기사 하나를 올렸더구만... 지 노래 제목이 평양찬가가 아니라누만...
    http://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200&no=204733&rel_no=1
    암튼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 다 만들어 놓고 무신 마지막 제물을 운운하는지... 재밌는 현상이여...

  5. (뱀발자국) 행인,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것 같아요

  6. 이러나... 그게 구라거덩여...

  7. 저도 '기특한 과자'는 기특한 노래라고 생각해요. 사실, 문정현 신부님이 애창하셔서 그나마 따라부르는 노래이기도 하죠.
    국가보안법 얘기를 하셔서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저는 노래가사 참 불편하네요. 어려워도 웃으면서 살자, 좋은 말인데 왜 지배계급이 던져주는 아편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에구, 오바하나 보다. ㅡ.ㅡ;;

  8. 사실 윤민석의 이번 노래는 대단히 웃기는 노래죠. 평양이 그렇게 따스한 곳이라면 북한 주민들, 탈북을 하기보다는 평양방문을 했어야 맞겠져.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인정이 넘치는 평양은 제쳐두고 찬바람 부는 만주벌판 지나 남의 나라로 들어가려는 탈북자들은 왜 그런지 윤민석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북한을 무척 따사로운 나라로 포장질 하죠. 그리고 그렇게 포장된 노래를 민중가요라고 내놓고 있습니다. 도대체 윤민석이 생각하는 민중은 어떤 민중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