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에 간 사연
그날은 입사동기 중에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ㅎ의 생일날이었다. 상고를 나온 ㅎ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언제나 8시30분 출근, 6시 퇴근이라는 환상적인(?) 근무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12시간 맞교대 하고 있었던 다른 동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근무시간이 엇갈리는 통에 자주 모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 ㅎ가 생일을 맞은 것이다.
하필 그 때가 뭣같았다. 동기들 중 절반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거나 회사를 그만두었고, 나머지 절반 중 절반이 군대를 갔으며, 하필 그 주에 주간근무조였던 인간이 행인 하나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여자동기에게 그날 하루 충성을 다바치라는 동기들의 압력과 자원지원을 등에 업고 퇴근 후 ㅎ를 만나 불의의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당시 행인, 여자들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하는지 전혀 몰랐던 때다. 특히 남녀가 단 둘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도 잡지 못했고, 더구나 군대 간 친구넘 애인을 어떻게 보필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도 없었던 그런 시기였다. 해서, 결국은 생일축하 해준다는 핑계로 행인이 하고 싶은 걸 해버리고 말았다.
우선, 밥먹기. 해물탕 집에 갔다. 얼큰한 해물탕 시켜놓고 소주 서너병 가뿐하게 빨고 나왔다. ㅎ가 원래 술을 잘 못하므로, 그 덕분에 행인만 호사를 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와서 영화 한 편 감상. 문화분야에는 거의 백지상태와 다름 없는 무취향의 행인은 그저 시간 때우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기에 가장 시간 잘 보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아마도 "인디아나존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편인지 2편인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화 끝난 후 간단히 맥주로 입가심. 집이 꽤 먼 ㅎ, 별로 재밌어 하는 거 같지도 않고 해서 집까지 택시로 바래다 주기로 했다. 거기까지 하면, 동기들로부터의 미션은 완수.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 타자마자 합승을 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다. 뭐 어쩌겠는가?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이넘의 택시운전사, 해도 해도 너무한다. 아무나 막 태우는 거다. 이곳 저곳 빙빙 도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승차인원이 초과되는데도 합승을 시킨다. 성질이 날데까지 났는데, 거의 마을버스 동네순환하는 식으로 돌고 돌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당시 택시 기본요금이 몇 백원 하지 않았던 때였고, 평상시같으면 3000원 정도로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미터기에는 거의 만원에 가까운 요금이 찍혀있었고, 이 운전사 적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5000원만 내란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천원짜리 달랑 하나 내고 내렸다. 이 기사가 눈빛이 달라지면서 지금 장난하냐고 묻는다. 그래서 한 마디 해줬다. "지금 니 눈에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약간 외곽이어서 다시 택시를 타고 나와야 하는데, 택시를 타고 생각해보니 왠지 허전하다. 그넘의 딱 한 잔이 모자란 것이다. 요새 유행어대로 하자면 그넘의 2%가 부족했던 거다. 게다가 앞서 택시기사의 그 같잖은 짓거리에 열도 좀 받아있던 상태였고, 해서 뭐 술 한 잔 더 마실 껀수가 없나 했는데 아무래도 껀수가 잡히질 않는다. 동기넘들도 죄다 야간 근무고, 시간도 거의 11시가 다 되어가니 불러낼만한 사람도 없고, 기숙사로 돌아가야하는데 술 한 잔 더 하면 기숙사 들어갈 시간이 늦어 아예 새벽까지 마셔야 할 판이었는데 마땅하게 갈 곳도 없고...
그냥 이렇게 들어가야하나 하고 시무룩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번개같이 한 사람이 떠올랐다. 워낙 행인과 주고주락(酒苦酒樂)을 같이 하던 부산출신 선배 하나가 생각난 것이다. 이 인간이 주안 네거리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이 형님이 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복합골절 때문이었다. 전사체육대회 축구 예선을 하다가 상대팀의 태클에 정강이 뼈가 부러져 입원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원래 뼈 부러진 환자들, 나이롱 환자들이 많아서 그놈의 병원에서는 허구헌 날 술추렴이 있었다. 한 번은 병문안을 갔더니 족발시켜놓고 소주빨면서 환자들끼리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잘 됐다. 그리로 가자. 그래, 택시운전사에게 그 병원으로 가 줄 것을 부탁하고는 오늘 또 한 잔의 술과 더불어 취침할 곳이 생겼다는 뿌듯함에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동네 가게로 들어가 소주 두 병과 안주거리를 장만했다. 하필이면 비가 추적 추적 내리고 있었다. 때는 10월 말... 찬 기운의 빗줄기가 몸을 적시는데, 생각지도 못한 비라 옷도 얇았고, 우산도 없었다. 어쨌든 빨리 병실로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인 거다. 간호사들의 눈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넘의 병원이 문을 닫은 것이다.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병원 현관 안쪽으로는 지나다니는사람들도 보이질 않았다. 개인병원이다보니 11시가 넘으면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곳이었다. 그걸 몰랐다니... 문 좀 열어달라고 소릴 질러봐도 아무도 내다보지도 않고, 이럴 줄 알았으면 병실 전화번호라도 미리 확인하고 오는 건데, 전화번호도 모르고... 비는 계속 오고 시간은 자꾸 가는데 방법이 없다. 술은 마셔야겠고... 기숙사로 들어가면 되련만은 차비 털어 술을 산 통에 기숙사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
병원 주변을 계속 서성였지만 뾰죽한 해결책이 보이질 않았다. 그 때, 행인의 눈에 절묘한 병원의 구조가 들어왔다. 병원 입구 옆에 배수관이 있었다. 옥상까지 쭉 뻗어 있는 배수관... 그리고 그 배수관 이 병원 현관은 물론 현관 위로 층층이 나있는 복도 창문들 바로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더욱 바람직한 현상은 3층 복도 창문이 활짝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저거다....
일단 배수관으로 다가갔다. 배수관 배출구로 빗물이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배수관을 붙잡고 흔들어보았다. 상당히 견고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비록 플라스틱 재질이지만 왠만한 충격에도 깨지지 않을 것처럼 튼튼해 보였다. 좋다. 가자~~!!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이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이질 않는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양 손으로 배수관을 붙잡고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빗물때문에 배수관은 상당히 미끄러웠다. 그러나 인간의 놀라운 의지는 척박한 사막에도 꽃을 피우는 법!! 술병과 안주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입에 물고 손가락과 발가락에 온 힘을 다 쏟고는 배수관을 끌어 안고, 벽돌들의 틈에 발끝을 집어넣으며, 위로 위로 올라갔다. 중간에 미끄러움 때문에 위험한 일도 있었지만 그건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현관위를 지나 2층 창문 옆에 도달했다. 창문을 보니 안으로 잠겨 있었다. 아깝도다... 이게 열려만 있었다면 이 고생이 쉽게 끝날 수 있었을 것을... 하지만 애초부터 창문이 열려져 있었던 3층을 목표로 한 것이므로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다시 힘을 내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3층까지 도달했다. 창문은 역시 열려있었다. 희열이 저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창문에 손을 뻗어보았다. 바로 안쪽으로 손목이 꺾여 들어간다. 이정도면 그냥 발 뻗어 몸을 들이밀면 되는 정도였다. 드뎌 창문 안쪽으로 손을 집어 넣어 단단하게 벽을 잡은 후 다리를 들어 창문 안쪽으로 반쯤 몸을 집어넣게 되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강렬한 빛이 얼굴로 쏟아지면서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이게 뭐여?? 놀라서 내려다 보니 강한 빛 때문에 뭐가 잘 보이지는 않는데 누군가가 내려오라고 소리를 치고 있다. 배수관을 붙잡고 버티기도 힘든데, 아 쉬 도대체 뭐여??? 하고서는 자세히 보니 정복을 한 순경 둘이 빨리 내려오라고 성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줸장... 입에 비닐봉지가 걸려 있으니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어렵게 올라왔던 배수관을 타고 다시 내려가야 했다. 이 두 순경 나으리들, 불문곡직 순찰차에 행인을 밀어넣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병문안 왔다고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병문안을 요새는 담치기로 하냐면서 서에 가서 이야기하잔다. 그래 결국은 서까지는 아니고 근처 파출소로 끌려가고야 말았다.
파출소에서 조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비닐 봉투에 든 소주며 안주를 보여주고 사정 설명을 하고 오밤중에 병원에 전화를 해서 그런 이름 가진 환자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나서야 오해가 풀렸다. 비는 계속 오고, 신경질은 퍽퍽 나고... 그래봐야 뭔 소용이 있겠나? 당직 서고 있는 순경을 꼬셔 사온 소주 한 잔 씩 나눠 먹고, 파출소 소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룻밤 정이라고 같이 소주 마신 그 경찰이 새벽에 통근버스 다니는 곳까지 백차로 데려다 주었다.
백차가 도착하기 직전 출근버스가 출발하려했다. 저거 놓치면 회사 못간다고 하자 이 민중의 지팡이, 백차를 출근버스 앞에 세워주었다. 허겁지겁 내려서 버스를 타자 안에 있던 동료들이 너 또 뭔 짓을 했냐 어쩌구 하면서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뭔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 별 거 아니라고 하고서는 빈 자리 찾아 뒤로 들어가는데 마침 ㅎ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원래 이 버스는 7시 출근자용이라 ㅎ이 탈 일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ㅎ이 일직을 서는 날이라서 같은 버스를 타게 된 것이었다.
경찰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이 ㅎ...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우 쒸...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하니까... 이 ㅎ가 하는 말이...
"너 어제 그 택시기사랑 싸웠지?"
오해는 오해를 낳는 거다....
술 끊을 만 하군요..ㅋㅋ 넘 재밋어요..
요즘 짜증만 나실텐데, 계속 술 드시고, 재밋는일 많이 만드세요!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