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과 가까이 하지 마라...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떠~억 하니 버티고 서있는 충무공의 동상. 긴 칼 옆에 차고 날카로운 눈매로 경복궁 방향으로 달려오는 차량들을 지켜본다. 물론 물경 400여년 전의 이냥반,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저렇게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했단다. 그 때는 앉아나 있었지, 지금은 사시사철 연중무휴 매일 24시간 꼬박 저리 서 계시니 그 두다리 튼튼도 하셔라...
광화문을 지키고 계신 이순신 장군... 오밤중에 잠도 못주무시고...
* 이 글은 molot님의 [광해군 그 다음은 정조?] 에 관련된 글입니다.
박정희가 청와대 들어 앉아 경복궁 너머 서울 시내를 관조할 적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리석은 백성이 배를 쫄쫄 굶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을 걱정하며 단군이래 최초로 가난에서 벗어나보자는 굳은 의지 다지면서 '시바스 리갈' 한 잔 쭉 빨고 있었을까? 정치적 혼란을 일소하고 부정부패를 근절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청사에 길이 남을 지도자로 우뚝 서길 바라면서 나즈막한 목소리로 '동백아가씨'를 불러제끼고 있었을까?
그 속을 어찌 알겠는가 만은 혁명군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던 불세출의 영웅 박정희는 자신의 영웅적 행동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는 백성들을 매우 측은하게 보았음은 분명한 것 같다. 어찌 영웅을 몰라보는가? 이건 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영웅이 없었기 때문이로다. 그리하여 박정희, 부르던 '동백아가씨' 중간에서 중단하고 마시던 '시바스리갈' 술잔을 내려놓고 대성으로 일갈한다. "영웅 창조~!"
영웅의 반열에 오르고자 했던 육군소장 박정희...
그리하여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세워진다. 어디 광화문 네거리 뿐이랴. 온 천지 사방에 있는 국민학교(초등학교)마다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다. 국민학교 운동장을 삥 둘러가며 우리의 영웅 이순신장군이 등장하는 거다. 이순신장군만 등장하면 이분 심심하시다. 그러므로 급이 같은 영웅들 함께 자리를 해야한다. 해서 세워진 동상들, 세종대왕 동상, 유관순 동상 등.
이 영웅적 업적을 남긴 조상들의 동상 틈바구니에 아직 마빡에 새똥도 벗겨지지 않은 어린애의 동상까지 가세한다. 이승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힘차게 외치다가 공비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반공소년. 이 소년은 북한괴뢰의 수괴 김일성의 악날함을 알려주고 반공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해마다 때만 되면 이승복 어린이를 주제로 한 포스터그리기, 표어만들기, 반공웅변대회...
민족의 태양으로 승격한 이순신 장군. 사실 박정희는 지가 민족의 태양이 되고 싶었을 게다. 김일성도 민족의 태양으로 지가 알아서 승격했는데, 박정희가 생각해도 스스로 김일성과 동급이 되는 것이 부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영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형 민주주의"를 창안해낸 지도자가 민주주의 제껴두고 지가 태양이라고 광고한다는 것은 좀 쪽팔린 일이니까.
상무정신의 발현을 기치로 내건 박정희, 그리하여 고려가 몽골기병대에게 무릎을 꿇은 이유가 무를 억압하고 문을 숭상했기 때문이라는 기발한 이론을 이데올로기로 전파하고, 조선이 왜넘들에게 주어터지고 떼넘들에게 들들 볶인 이유 역시 문이 무보다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공식을 개발한다. 그래서 결론은? 당연히 "군바리 만쉐이~!"로 귀결되는 거고... 그렇게 해서 영웅들의 이름 뒤편에 이들을 불러낸 지도 영웅이 된다.
죽어 귀신이 된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은 목적이 있어서이다. 그냥 단순히 순진무구하게 그 분들에게 감사인사 올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란 거다. 일군의 황건적들이 느닷없이 광해군을 불러내 그 영명하심을 찬양하게 되는 배경에는 이라크로 침략군을 보내는 지들의 두목을 변명하기 위함이다. 졸지에 21세기 황건적 두목은 광해군의 반열에 올라버린다. 그리고 그가 보낸 침략군은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광해군만으로는 부족하다. 박정희도 이순신만 영웅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하물며, 박정희보다도 민주적 정통성이나 기타 분야에 있어 몇 수 위에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 21세기 황건적 두목은 더 그럴싸한 영웅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야만 한다. 해서 동원되는 그 사람, 유홍준 교수가 불러낸 그 사람은 정조다. 수도 천도의 계획과 실패 등의 부분에서 정조와 비슷하다는 유홍준의 비교를 보면서 박장대소하고야 말았다.
다행이로다. 노무현이 박근혜 등등을 비롯한 정적들을 과감히 숙청했다면 태종으로 추앙받을 뻔 했다. 왕권강화에 혁혁한 공이 있다는 이유로... 이러다가 개헌논의라도 시작되어 개헌 진행되면 역성혁명을 성공으로 일컬었던 태조까지 나오게 생겼다. 21세기 황건적들의 찬양받을 신출귀몰한 능력을 생각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다. 그런 의미에서 현존하는 가장 웃긴 사이트는 서프라이즈일 것이다.
죽은 자들을 자꾸 무덤에서 끌고 나오는 짓은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수백년 전에 죽은 자들까지 끌어내지 않아도 지금 도처에서 노동자가 분신하고 서민들이 투신하고 노숙자들이 죽어간다. 죽은지 사반세기가 넘은 박정희의 유령도 아직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 어디 광화문 문패만 문제던가? 우리 살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법이고 정치고 사회고 문화고 군대고 간에 박정희의 숨결이 견결하게 살아 숨쉬는 모습이 한 두 가진가?
광해군이고 정조고 끌어다 좀비를 만드는 짓거리를 중단하고 죽은 박정희의 혼이라도 편안하게 보내줄 일이다. 죽은 자와 자꾸 놀면 자칫 빙의 들리기 십상이다. 혼백이 빠져나간 자리에 죽은 자들의 혼이 꾸역 꾸역 들어와 난리 굿을 치게 된다. 고만 할 때도 되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라고 했던가? 유홍준 교수... 아는 게 많다보니 보아서는 안 될 저승의 그림자마저 보는갑다. 책이나 잘 팔고 인세관리나 잘 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행인님의 [죽은 자들과 가까이 하지 마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별게 다 붐이다. 부시가 민영화를 골짜로 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데, 반대가 장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