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말헥산의 추억

행인이 두 번째 취업을 한 곳은 인천에 있던 한 식품공장. 대한민국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름만 들으면 "아, 그 회사~!"하고 바로 알 수 있는 사업체다. 이 회사 소속 공장 하나에 취업을 하게 된 행인 발령받고 도착한 곳은 인천. 작업장은 연안부두 방면으로 들어가다 100주년 기념탑 안쪽으로 해안 철책선 방향으로 달리고 달려 들어가 옛날 석탄 하치장 안쪽으로 들어가야 입구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주로 생산하는 제품은 식용유와 사료(입사하고 얼마되지 않아 냉동식품공장이 들어섰고, 또 몇 년 지나서는 바로 옆에 세제공장이 들어섰다)였다. 왜 식용유공장과 사료공장이 같이 있는지 의아하신 분들이 있을 거다. 그런데 제품생산공정을 이해하고 나면 이 두 공장이 같이 있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제부터 식용유 생산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음... 치떨리는 과거가...

 

보통 기름을 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열압착식, 다른 하나는 용제추출식이다. 참깨나 목화씨 같은 경우 원료인 씨앗에 유분 함량이 매우 높다. 참깨의 경우 정제되지 않은 원상태의 기름인 '조지방' 함유량이 60%를 넘기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참깨는 뜨거운 불판에 올려 가열을 한 후 압착기에 넣고 기름을 짜낸다. 그렇게 짜낸 기름이 바로 참기름, 기름짜고 난 찌꺼기를 깻묵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식용유는 콩기름이다. 식용유 포장지에 "대두 100%"라고 표기된 것을 보실 수 있는데, 이거 보면서 이 식용유 먹으면 머리통이 100% 커질 것이라고 믿는 분은 없을 거다. 콩 100%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콩이라는 넘이 가지고 있는 조지방의 함량은 15%를 밑도는 수준이다. 볶고 짜서 기름빼기에는 좀 거시기한 성분함량이다. 그래서 이 콩에서 기름을 빼는 방법이 따로 개발되었으니, 그것이 유기용제를 이용한 용제추출법이다.

 

우선 원료인 콩을 적당한 크기로 부순다. 물론 그 전에 콩과 기타 다른 잡곡류나 불순물들을 제거하는 공정을 거친다. 원상태의 콩보다 반 또는 1/4 크기로 깨진 이 콩들은 롤러로 들어가 플레이크가 된다. 우유에 말아먹는 콘플레이크와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납작하게 눌려서 표면적을 왕창 키운 플레이크들은 유기용제로 샤워를 하게 된다. 플레이크를 적신 유기용제는 플레이크 안에 있는 지방성분을 녹여서 같이 빠져나오게 되고 기름이 좍 빠진 플레이크는 뜨거운 가열기 안으로 들어가 유기용제를 날려버린 후에 찜통에 들어가 찌꺼기로 뭉쳐져 빠져나온다. 이게 깻묵하고 같은 것인데, 이걸 대두박이라고 한다.

 

대두박은 단백질 덩어리다. 엄청난 영양공급원인 것이다. 그래서 이 대두박은 동물들의 사료에 아주 중요한 원료가 된다. 대두박을 잘 갈아서 특별한 공정을 거쳐 조직을 형성시키면 그게 소위 '콩고기'가 된다. 공장 안에서는 TSP(Textured Soybeans protein 이거 맞던가...)라고 불린다. 깻묵도 사료원료로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그래서 식용유 공장이 사료공장과 같이 있게 되는 거다.

 

유기용제는 휘발성이 강하고 가연성인지라 매우 위험하다. 한번 기름빼는데 사용된 유기용제는 그 강력한 휘발성을 이용해 기름과 분리시킨 후 냉각시켜 다시 사용한다. 유기용제의 수율을 확보하는 것은 원가절감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기용제와 처음으로 분리된 기름은 끈적끈적하고 불투명하며 특유의 향취를 가지고 있다. 이 원료기름은 공정에 들어가 탈검 -> 탈산 -> 탈색 -> 탈취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먹는 "깨끗하고 고소한" 식용유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때 사용하는 유기용제가 바로 노말 헥산(n-Hexan)이다. 피부에 바르면 피하지방이 하얗게 녹아나온다. 살 뺀답시고 이거 바르는 정신나간 짓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만큼 지방용해성이 강하다. 게다가 이거 많이 흡입하면 환각현상이 일어난다. 일단 공중으로 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 심하게 맡을 경우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나중에 구토와 어지럼증이 발생하게 된다. 폭발성이 강해서 노말헥산을 다루는 공장에서는 정전기만으로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한번은 추출공장 안에서 몇 시간 작업을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헥산타워의 밀폐장치가 고장나 헥산이 다량 유출되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헥산 냄새가 진동을 하는 탓에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작업을 하고 났는데 갑자기 심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조차 없었다. 겨우 겨우 공장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하면서 창자끝에 매달렸던 X조각 까지 입으로 밀려 나왔다.

 

현장에서는 비용문제로 인해 노말 헥산을 사용하지만, 실험실에서는 빠른 실험을 위해 에틸 에테르 같은 용제를 많이 쓰는데, 어디서나 유기용제에 노출되기는 마찬가지다. 이거 많이 흡입하면 폐도 녹는다고 한다. 그런데, 공장생활을 했던 그 몇 년 간 현장에서 유기용제 흡입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하고 작업을 했던 기억은 없다. 기껏 주는 게 쓰리엠 방진마스크... 이거가지고 무슨 유기용제 흡입을 막는다는 건지...

 

유기용제에 상시 노출된 생활을 한 사람들은 마취가 되지 않는다. 같이 근무하던 선배 하나는 이빨 하나 뽑으면서 마취제를 10대나 맞았다. 결국 나중에 마취제가 돌기 시작하면서 이빨을 뽑았는데, 10대나 맞은 마취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 선배 그로부터 며칠동안 입 주변의 근육을 놀리지 못해 밥도 못먹고 침만 질질 흘리면서 지내야 했다. 행인은 공장생활을 하던 중 맹장수술을 했는데, 수술 시작과 동시에 마취가 풀리는 바람에 거의 죽다 살아났다... 줸장...

 

태국에서 돈벌러 왔다가 결국 '앉은뱅이'가 되어버린 노동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문제가 남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방명록에 간장공장이 노말헥산 마루타가 된다고 하는 글을 남겼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그거 진짜 위험한 일이니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건 '수퍼사이즈 미'하고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제발 위험한 일은 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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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9 12:39 2005/01/2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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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헉, 그럼 형 아직도 마취 소용없어요??

  2. 최근에는 마취해본 적이 없어서리...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