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기 어디있나???

그건 꼬맹이들에게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보여준 그 사람은 영웅이었다. 그 영웅의 모범을 따라 수업이 파한 학교 운동장 한 구석 모래밭 위에서는 이넘이나 저넘이나 죄다 '자반뒤집기'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뒤집기 한 판 성공하고 나면 마치 지가 이만기가 된 것처럼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그래, 그 영웅은 이만기였다.

 

시골 동네 어르신 중 한 분이 딱 그랬다. 키는 겨우 160을 넘길까 말까 한데 가슴둘레가 자기 키만큼 되던 냥반이었다. 한끼 밥으로 남들 열명은 먹을 만큼의 밥(요즘 서울사람들로 치자면 열 댓명 분은 되는 분량)을 자시고, 남들 하루갈이 밭을 반나절이면 뚝딱 치우고 오는 분이었다. 큰 씨름판에서 장사 상품으로 데려왔던 송아지가 몇 마리는 된다던 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어린 시절에 씨름이라는 것은 작은 넘이 큰 넘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희망의 스포오츠였고, 김일의 박치기가 작렬하던 프로레슬링 다음으로 꼬맹이들을 신나게 했던 오락이었다. 덩치로 보나 뚝심으로 보나 더 힘 좋을 것 같던 이준희,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키의 이봉걸을 뒤집기 한 판으로 물리치고 가마에 올라타고 환호하던 이만기를 보는 건 묘한 쾌감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씨름판이 사라지고 있단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 아쉬울 것도 없다. 도대체 씨름 보면서 어릴적처럼 꿈과 환상을 가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 컸기 때문에? Oh, No~~!!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아직 성장기의 행인, 꿈과 희망마저 모두 놓고 사는 것은 아니다. 아쉬울 것이 없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사실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고, 지 앉은 자리, 그거 남의 자리를 깡패처럼 주어 패고 얼러서 강탈한 자리라 언제 지같은 넘 나타나 총질을 해댈지 불안한 거라. 게다가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고. 그래 이 덜떨어진 대머리가 한 짓이 바로 3S 정책이었다. Screen, Sex, Sports...

 

Screen과 Sex는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Sports에서만큼은 대박을 터뜨린 것이 분명하다. 남의 집 곁방살이 하며 하루 먹을 양식을 걱정하던 행인의 마빡 위에도 오비 베어스 모자가 씌어져 있었으니까. 프로 스포츠 르네상스의 도래와 더불어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씨름 온갖 스포츠가 허구헌날 텔레비전을 수놓았다. 봉황대기 고교야구나 mbc 신인왕전이 스포츠의 모든 것으로 알고 지내던 얼라들, 눈이 헤벌레 하게 풀어지고 말았다. 아, 물론 박치기 김일, 꿀밤먹이기 김신부, 가라데 춉 이왕표 등이 날렸던 프로레슬링도 있었지만, 그거 순 짜고 치는 고돌이라는 소문이 돈 후 텔레비전에선 사라졌고...

 

그러는 동안 다른 스포츠, 말도 많고 탈도 많아도 어느 정도 현대화 되어가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넘의 씨름은 20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컨셉이 똑같다. 소싸움판 같은 모래판에 팬 서비스라고는 물빠진 뽕짝가수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장사 한 번 나오면 "에라, 디여어~~"하는 창이나 타령이 전부고... 아무리 '전통' 스포츠라지만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그리하야 관중석에는 무료 초대된 동네 어르신들만 자리를 차고 앉고, 유료 관람객은 날이 갈수록 줄고, 광고도 제대로 되지 않고, 떡대만 남산같은 애들이 튀어나와 허구헌날 잡치기로 승부나고, 아님 밀어치기나 하던가. 이게 쓰모지 씨름이냐... 말 나온 김에 일본 쓰모 경기 함 보자. 얘네들 요꼬즈나 경기 같은 거 달랑 한판 승부로 쑈부친다.

 

그래, 그 긴장감 하늘을 찌른다만 사실 경기하는데 들어가는 시간 얼마 안 걸린다. 그런데, 쓰모 경기장 찾은 사람들, 요모 조모 볼거리 보느라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뭐 요새는 K-1에 많이 밀린다고는 하지만 쓰모 경기장에서만 볼 수 있는 뭔가가 있기에 사람들이 거기로 몰려간다. 그런데 얘네들, 훈도시 차고 나오고 심판이란 넘은 야스쿠니 신사 신관같은 옷차림으로 우리 나라보다도 더 지네 전통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쑈 진행하는 거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얘네들, 관중석이 바로 선수들 코앞까지 몰려가 있다. 이게 예를 들자면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축구경기 보는 거랑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경기 보는 거랑의 차이가 있다. 살 디룩디룩 찐 쓰모 선수들 뱃대기로 기름낀 땀방울 흘러내리는 것까지 고스란히 볼 수가 있다. 게다가 메인 이벤트 외에 뭔 넘의 쑈쑈쑈가 그렇게 다채로운지. 걔네들 거기서 허구헌날 샤미센 뚱땅거리면서 가부키 십팔번 뽑고 앉았나 하면 그거 절대 아니다. 현란한 테크노도 가끔 펼쳐지고 온갖 사회 저명인사들을 그 자리에 불러 개인기를 펼치게 한다.

 

쓰모다... 저 관객들 표정 좀 봐라... 침넘어가는 소리 들리지 않나??(엠파스 이미지)

 

우리나라 씨름협회, 지금까지 뭐하고 있었나? 관중석 채워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허벌나게 큰 체육관 빌려다가 무료관객이나 유치하고,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젊은이들 돈 쓸 만한 볼거리 하나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았다. 누가 씨름판에 구경가나? 차라리 유선방송 ESPN 틀어놓고 King of Cage를 보지...... 그러더니만 이제와서 그 모든 책임을 개별 씨름단에 떠 넘기고, 먹고 살기 어렵다는 핑계로 씨름단은 해체되고...

 

키 218cm, 몸무게 160kg에 육박하는 거구를 가지고, 승리를 거둘 때마다 그 큰 몸 비비꼬고 흔들어대며 테크노 댄스를 추던 씨름선수 최홍만이 K-1 데뷔전을 치룬단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서 그 좋아하는 운동 계속 할 수 있다면야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꼭 성공하길 빈다. 그나저나 참으로 아쉽다. 저보다 훨씬 큰 선수를 뒤로 메다 꽂아버리던 자반뒤집기의 명수 이만기... 몸이 작아도 지구를 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던 어린 시절 우리의 영웅은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건가...

 

뱀발 : 그나저나 최홍만, 쓰모선수출신 K-1 일본 대표와 한 판 붙는 것은 좋은데, 거기서 조국의 명예 어쩌구 하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쓰겠다. 어차피 돈 벌려고 그러는 거 잘 해서 돈이나 많이 벌길 바란다. 돈놓고 돈놀이 하는 판에서 갑작스레 조국의 영광 운운하면 그거 진짜 쌩뚱맞은 짓이다.

 

뱀발의 때 : 좌우당간, 심심해서 대형 쿠션을 껴안고 자반뒤집기 연습 한 번 하다가 골로 가는줄 알았다.... 아직 성장긴줄 알았는데, 허리가 뒤로 젖혀지지도 않다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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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5 01:32 2005/01/25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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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들이 격투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가끔 케이블채널을 돌리다 괴성을 내지르며 땀에 절은 근육질의, 본능에 충실한 행위의 그들을 보면 볼수록 이해불가...

  2. 헙.. 앞서 리버미가 저런 말을 해놔서..
    나는 이종격투기 보는거 즐긴다는 말 하기가 차마 쑥쓰럽군요, 아흐.. 특히, 내가 미치는 부분은 헤비급의 날렵한 타격기를 볼때라는;;

  3. k-1은 재미있게 보는 편이지만 King of Cage는 그닥... 션~한 맛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종교와 격투기가 흥하기 시작하면 그 동네 망한다는 고금의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지구종말의 시기가 가까워진 것이 아닐지... ㅋㅋㅋㅋㅋㅋ

  4. <역도산>영활 보면 전후일본이 패전의 컴플렉스를 미국레슬러를 이김으로서 애국주의에 기대 자국민을 열광하게 만드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안에는 레슬링이라는 스포츠를 띄우기 위해 "역도산"이라는 스타만들기도 한몫을 하는 거대시스템을 보여주는데....최근 경제불황과 격투기띄우기?는 그런 밀월관계는 아닐까 하는 생각.
    여튼 정양님이 잼있다니 나도 함 빠져볼까요?^^;;(알고도 빠지면 몰까?에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