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죽음

삼국지 연의에서 가장 장대한 전투씬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적벽대전이다. 이 적벽대전에서 보여지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면면들은 소설의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요소다. 바람을 불러옴으로써 전세를 뒤집겠다는 공명, 공명의 재주에 대해 지극한 위기감을 느끼는 주유, 지략으로 연환계를 성공시키는 방통, 살을 바르고 뼈를 부러뜨림으로서 계략을 성공시키는 황개, 한 때의 은혜를 갚겠다는 명분으로 조조를 살려주는 관우, 패전을 한탄하며 곽가를 그리워하는 조조...

 

조조의 오만함과 공명의 계략과 주유의 통솔이 어루러져 만들어낸 이 장엄한 대서사시의 연출과정에서 주군을 잘못 만난 위군 100만은 장강의 물고기밥이 된다. 연의가 소설이다보니 적절한 뻥이 섞여 병력의 숫자가 10배 이상 과장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어쨌건 간에 100만이 되었건 10만이 되었건 무수한 병사가 사망했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은 왜 죽었을까? 조조를 위해? 명예를 위해? 아니면 전리품을 위해 전쟁에 참여했다가??

 

2003년 3월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이 2500명에 달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전투 중 사망자는 1972명, 각종 사고로 528명 사망. 부상자는 18490명에 이른다고 한다. 침략당한 이라크에서는 이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민간인에 대한 조직적인 학살도 있었다고 한다. '미라이의 학살'은 40년 가까운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이렇게 재현된다.

 

백악관은 미군 사망자들에 대해 애도를 표시하면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그들이 헛되게 죽은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이라크 이샤키시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대해 현지 미군 대변인은 범행을 자행한 미군들은 당시 알 카에다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던 중 공격을 받았으며, 이 작전 중에 발생한 9명의 민간인 사망은 "있을 수 있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침략군에 동원된 미군들의 죽음은 가치있는 죽음이었다. "헛되게 죽은 것"이 아니므로. 반면 이라크 민간인의 사망은 그저 재수없어서 일어난 일일 뿐이다. 이라크인들의 목숨은 애초부터 "부수적인 것"이었을 뿐이니까. 입만 열었다 하면 이라크 인민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던 조지부시의 발언들을 고려할 때, 이라크 침략미군 대변인은 자국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말씀을 개소리로 알고 있는 듯 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들어 이라크 인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침략군을 보낸 부시는 얼른 이 대변인의 혓바닥부터 뽑을 일이다.

 

백악관이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할지라도 이라크에 파병되어 사망한 미군들이나, 그 미군들에 의해 "부수적"으로 죽어간 이라크 인민들의 목숨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들은 그냥 희생되었을 뿐이다. 정권과 자본의 이해에 의해 서로의 목숨을 그냥 뺏겼을 뿐이다. 생명의 무게는 천명의 무게든 한명의 무게든 동일하다. 누구의 죽음은 가치가 있고 누구의 죽음은 부수적인 것일 수가 없는 거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자기 멋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거다.

 

공공의 적이었나? 과학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그저 깜으로 범인을 찍고 악으로 들이대는 스타일의 '수사'를 하는 꼴통같은 경찰 하나가 범인을 잡으러 가면서 후배와 통화를 한다.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조또 암 것도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을 이유 없이, 재미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안다..." 그렇다. 꼴통도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조지부시나 그 똘마니들의 대가리는 뭘로 채워져 있는 걸까? 아니, 이 쉑덜이 인간이기는 한 걸까?

 

"죽은 놈만 불쌍하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딱 그짝이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개죽음을 당해야 할까? 포스팅을 하는 도중 들려오는 소식에는 미 상원이 이라크 주둔미군의 철수안을 부결시켰다고 한다. 그래,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이넘들은 인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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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6 11:57 2006/06/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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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멍멍." 엇, 개는 학살을 안하지... 멍멍이들아 미안해...

  2. 정말 화가 나지요. 따지고 보면 일제시대 때 나라 잃은 우리 조상들도 같은 이유로 저항했을텐데, 누구는 독립투사로 불리고, 누구들은 테러리스트로 부르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도 열받을 노릇이구 말이죠. 여튼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 일들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받아들이는 걸지... 아... 데스노트 어디 안 떨어지나 ㅠ.ㅠ

  3. 말걸기/ 사람만 학살을 하쥐... 뒌장... 사람이라는 것이 이렇게 찝찝할 수가...

    에밀리오/ 헉... 데쓰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