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유감

1.

먹고 살기 빠듯한 세상이다. 오죽하면 온 국민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총궐기해 누구 말마따나 "능력없는 남편"을 버리고 "부패한 남편"을 선택했겠나... 전국을 '파란나라'로 만들어버린 배경에는 3.15 부정선거에서 제기되었던 그 유명짜한 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의 21세기형 버전이 놓여 있었다. 경제수치상으로만 보자면 그 당시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 같은데, 우째 이런 일이???

 

신자유주의의 전투적 전도사 노무현마저도 심각한 문제로 인정한 양극화, 빈곤층의 증가, 중산층의 붕괴, 뭐 이런 일들이 옆구리에서 바람 쌩쌩 불며 일어나다보니 체감되는 경제적 곤경의 비중은 훨씬 높아져만 간다. 이래 저래 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동서고금 모든 서민들의 한결같은 아우성은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선거평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어쨌든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눈물겹게 이어진다. '무한경쟁시대'를 달려 나가는 현대 도시인들은 기회만 된다면 자신의 몸을 기계로 바꿔서라도 이 경쟁에서 승리하고싶어한다. 그건 이해한다. 그러나 그 경쟁의 과정에서 망가지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동반몰락이다.

 

이 경쟁의 일단은 거리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오토바이. 택배영업을 하시는 분부터 배달업에 종사하는 분들까지, 암튼 전체적으로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되는 일을 하시는 "배달의 기수"들께서는 어찌되었든 촌각을 다투어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오늘도 힘껏 "땡기며" 돌아다닌다. 생계가 걸려 있는 일을 하시는 입장에서 분초를 줄여서 한 탕이라도 더 뛰시려는 그 마음, 절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분들이 힘든 것만큼이나 오늘도 쌩쌩거리는 자동차 사이를 돌아다녀야 하는 불쌍한 뚜버기들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혹은 면허도 없고 해서 때로는 대중교통 이용하며 거의 대부분의 이동을 두 발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이용해 영업을 하시는 분들, 뚜버기들에 대한 배려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보도로 돌아다니는 오토바이, 횡단보도 신호등을 이용해 보행자와 같이 움직이는 오토바이, 솔직히 무섭다. 도로교통법상 오토바이에게 금지된 행위들이다.

 

바쁘신 거 다 안다. 하지만 제발 덕분에 보도 위로 씽씽 돌아다니거나 횡단보도에서 행인들과 뭉쳐 움직이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생계형 범죄"다 보니 경찰들도 못본척 하는 거 거기까지도 이해한다. 그러나 역시 생계를 위해 걸어다니고 있는 보행자들은 무슨 죄로 항상 오토바이가 달려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사주경계를 하고 돌아다녀야 하나?

 

2.

생계때문에 바쁘게 뛰시는 "배달의 기수" 여러분들은 그래도 이해할만한 사정이라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정도 없으면서 눈쌀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폭주족들...

 

좋다. 까짓거 피끓는 청춘의 분출을 위해 오늘밤도 한 번 땡겨보는 거, 니들 나이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개념 드롭하고 다니는 이 청춘들아... 제발 헬멧은 쓰고 다녀라. 한 판 땡기다가 니들이 골로 가건 평생 침대랑 씨름하면서 살건 내 알 바는 아니다만, 그래도 너덜 바라보며 가슴졸이시는 너덜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하겠냐? 게다가 재밌는 것은 헬멧을 쓴 사람들보다 헬멧을 쓰지 않은 녀석들이 더 심하게 폭주를 하고 광란의 몸부림을 친다는 거다. 그 짓 하다가 엉뚱하게 니들 오토바이 바퀴에 깔리는 사람들은 무슨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거냐?

 

가끔 얘네들 하는 짓보면 어이가 없다. 언젠가 한번은 오밤중에 한강다리를 택시타고 지나가는데, 앞에서 수십명의 폭주족들이 요란뻑적지근한 세레모니를 해가며 질주하고 있었다. 배달용 '핸디'에 온갖 형형색색 네온사인을 붙여 번쩍거리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가 매달린 뒷 좌석에 지들 또래의 여자애를 '싣고' 달리는 넘이 있는가 하면, 지들이 무슨 교통정리하는 사람들인줄 알고 왠놈의 휴대용경광등은 그렇게 많이 흔들고 다니냐... 뭐 거기까지는 용서하는데 그놈의 태극기는 왜 죄 매달고 다니는 건가? 월드컵 응원 준비하는 건가??

 

암튼 이넘들이 하도 길을 다 막고 게다가 좌로 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앞을 막아버리니까 택시기사께서 짜증이 좀 나셨는지 몇 차례 눈치를 보다가 얘네들을 추월했다. 그리고서 조금 속도를 내려고 하는데, 갑자기 폭주족들이 대거 달려들더니 택시 앞 뒤를 막고 휴대용경광등으로 택시를 탁탁 때리면서 욕지거리를 한다. 별 쌍욕을 다 하는데, 이 넘들이 왜 이러나 어이가 없기도 하고 성질이 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하나 좀 궁리도 되고 하는데, 오히려 기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계속 나간다. 조금 있으니 애들도 별로 재미가 없었는지 다시 지들끼리 뭉쳐 갈 데로 갔다.

 

잠깐동안의 소란이 지난 후에 이 기사께서 한 말이 거시기 했다. "저 쉑덜 그냥 밟아버렸음 속이 다 시원하겠는데..." 아, 그런 거다. 아닌 말로 이 기사께서 성질이 조지부시급쯤 되어 갑자기 훽 돌아 저넘들 그냥 받아버리면 어땠을까... 한강다리 위에서 공중부양된 애들 몇 명은 검푸른 한강수에 몸을 싣고 서해로 흘러갔을 것이고, 어떤 놈은 차 바퀴 밑에 들어가 쥐포가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놈은 지들끼리 엉켜 남의 오토바이에 얻어맞는 일을 당했을 수도 있고, 괜히 짱깨집 옵빠 배달용 오토바이 노란바구니에 올라타고 기분내러 왔던 뉘집 딸래미는 고대로 바구니에 실려 응급실로 배달되는 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헬멧 쓰고 도로교통법 지키면 그게 무슨 폭주족이냐, 이렇게 항의할지 모르겠다만 오밤중에 대형태극기 꽂고 돌아다니는 얘네들 모습이 어디 제정신이냐... 제발 부탁인데 사고 좀 치지 마라...

 

3.

다시 마라톤에 재미를 붙인 것은 순전히 강변풍경때문이다. 한강 따라서 쭈~욱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동안 보이는 그 풍경들은 벼라별 골치아픈 일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뇌를 이완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보다도 좋은 것은 매연 푹푹 내뿜는 자동차들이 없다는 점이다. 맑은 공기는 아닐지라도 강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빌어먹을 서울에서 사는 도시 서민에겐 그나마 그럴싸한 사치니까.

 

그런데, 여기도 어김없이 오토바이들이 돌아다닌다. 분명히 강변 조깅코스에는 오토바이가 다닐 수 없다는 안내판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그러나 그런 안내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토바이는 여기 저기 어디라도 들어가 맘대로 휘젓고 다닌다.

 

런너의 입장에서 한강변의 조깅코스가 최적의 조건은 아니다. 앞뒤로 자전거와 인라인이 쌩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기 때문에 언제라도 앞뒤를 잘 살펴야 한다. 자칫하면 대형사고가 벌어질 염려도 있다. 특히 인라인은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자전거는 일단 직선으로 달리는데다가 여차직하면 바로 속도를 줄여주는데, 인라인은 좌우로 흔들고 달려드니 저넘과 내가 교차되는 순간 저 쫘샤가 좌로 갈지 우로 갈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고 한참 속도를 내서 달려오던 인라인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급정거를 하지 못한다. 사고가 나면 대부분 인라인을 타고 오던 넘덜이 신경질을 낸다. 방귀 뀐 넘이 성질낸다더니 딱 그짝이다. 인라인 타시는 분들, 좀 메너에 신경써주면 감사하겠다.

 

암튼 이렇게 그렇잖아도 신경을 쓰며 달려야 하는데 거기에 오토바이까지 나타나면 아주 깓뗌이다. 요즘은 아예 두어명씩 짝을 지어 오토바이 몰고 나와 강변 구경하면서 달리는 넘덜이 있는데 쫓아가서 주어패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난 니들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을 마시려고 이 아까운 시간에 강변 나와 씩씩 거리며 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공원관리소의 직원들이 한강 그 긴 거리를 전부 관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지킬 것을 지켜주는 센스가 필요한 거다. 그러나 이렇게 물 흐리는 일들이 있어 간만에 머리 좀 식히려 나온 사람들이 되려 스트레스 이빠이 받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들어서는 더 자주 오토바이들이 돌아다닌다. 강변으로 낚시하러 오는 분들 중에도 이런 분들 많은데 기왕 즐기러 오시는 거라면 혼자만 즐기지 마시고 남들 생각도 좀 해주셨으면 싶다.

 

4.

오토바이 이야기 나와서 하는 말인데, 특히 "배달의 기수"들의 경우 본인들이 서두르는 경향도 있지만 고객들의 재촉에 시달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분들 많다. 예전에 어느 학교에서 교내 배달오는 오토바이들이 규정속도를 위반할 경우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던 곳이 있었다. 즉 교내 규정속도 위반이 3회에 걸쳐 발각된 업소들은 앞으로 교내배달을 막겠다는 것이다. 벌써 몇 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후 몇몇 학교에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학교가 아직까지도 이 제도 그대로 유지하는지 모르겠다. 아는 학교 한 곳은 이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는데 그 이유는 오직 하나, 배달되는 짜장면 면발이 제도 시행 이전보다 많이 불어서라나 어쨌다나...

 

짜장면은 업소 매장 안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행인이라고 할지라도 배달시켜 먹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뭐 좀 갖다 달라고 전화하면서 제발 이 말만은 하지 말았으면 싶다. "빨리요~~!" 뭐가 그리 급한가? 택배를 불러도 "빨리요~!", 음식을 시켜도 "빨리요~!", 수퍼마켓에 배달을 시켜도 "빨리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와서 가장 빨리 배우는 단어 중의 하나가 "빨리 빨리"란다. 나머지 동급최강 빨리 배우는 단어는 욕설들이고... 필리핀에 다녀온 사람들이 놀라는 게, 한국인이라고 하면 "빨리 빨리"라는 말을 하더란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열라 쪽팔렸단다. 그러게, 쪽팔렸으면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나 쪽팔림은 한 순간일 뿐, 어김없이 이 사람도 배달시키면서 "빨리요~!"를 말한다.

 

"빨리요~!"라고 해야할 급박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빨리"라는 말을 아무런 의식없이 사용하는 것, 이건 좀 고쳐야할 것 같다. "빨리요~!"라는 추임새가 사라지면 오토바이들이 좀 점잖게 다니게 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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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11:37 2006/06/0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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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 상관 없는 이야긴데... 고등학교 때, 현란한 장식 오토바이에 선글라스 끼고 운동장을 질주해오던 철가방 아저씨를 보고,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이 "싸랑해요 밀키스" 하면서 단체로 손흔들고 비명지르고... 근데 그 아자씨 화들짝 놀래가지고 오토바이 뒤집히고, 짱께 다 쏟아지고.... 우리는 다 도망가구 ㅜ.ㅜ

  2. 행인님 신행 잘 다녀왔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먼길 달려와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행인님 때문에 결혼식장 분위기가 100% 더 후끈 달아오른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나중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3. "100% 더 후끈 달아오른" 혹시, 거기가서 불쑈라도..??

  4. 홍실이/ 헉... 밀키스... 윤발이형 요새 뭐하시나 궁금하네요. ㅎㅎ

    자일리톨/ 워~~~~ 깨소금 물씬 풍기는 이 간지러운 댓글은... 그날 비도 오고 날도 서늘했었는데 제가 뭐 후끈 하게 했겠습니까? 좋은 날이니까 기분이 좋으셨던 게죠. 암튼 다시 한 번 축하축하축하축하축하~~~~

    정양/ 불쑈는 아니고 생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