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 통의 서간문이 올라왔다. 수신인은 열우당 당원. 노무현이 직접 작성했단다.

 

우리 모두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

 

읽는 내내 말 그대로 '안습'이다. "대통령의 직분이 무엇이고 그 책임과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노무현은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면서 읍소한다. 자신이 하려는 모든 일을 '한나라당'이라는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고, 사태가 이렇게까지 흘러온 원인은 한국 정치지형의 고질적인 "여소야대"라는 구조때문이란다. 이쯤 되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그의 말마따나 "정치권이 대통령에게만 혼자 책임을 다하라고 몰아 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국정의 혼란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노무현의 좌충우돌과 용두사미때문이었다. 여대야소를 만들어주었을 때는 뭐했나? 탄핵정국까지 가는 도박정치의 상황에서 그가 던진 승부수에 국민들이 손을 들어 주었을 때, 로또당첨같은 그 결과물을 가지고 도대체 뭘 했나?

 

노무현 추종자들은 이 대목에서 또다시 감읍한다. "권위"를 놓아버린 대통령의 본심을 알아달라며 자신들의 무현성령충만함을 타인에게까지 겪으라고 울부짖는다. 권위를 놓아버려서 그렇다고? 대중들에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권위없는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한 번 물어보라. 노무현? 천만에 말씀이다.

 

적어도 행인 주변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노무현과 같은 성을 쓰는 노태우를 꼽는다. 물태우가 괜히 붙여진 별명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꼽는 자가 DJ, 그리고 그 다음이 YS다. 노무현의 권위적 성격은 행인 주변에선 YS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는 평가다. "이제 막가자는 거죠?"라며 웃통 벗어 젖히기 이전부터 그는 권위적이었다. 지지자들이 그의 뚝심을 경이롭게 여기며 "바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지만, 그는 레토릭으로서 "바보"가 아니라 실제 좀 모자라는 행태를 보였다. 지금 올라온 저 편지를 보라. 권위를 놓아버린 자의 허허로움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데서 오는 비애가 절절이 흐르고 있지 않은가?

 

한나라당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비정규직 3대 개악안은 직권상정으로 잘도 올려 한나라당과 실질적인 연정의 힘을 과시했다. 절차중시 운운하면서 "박물관으로 가야할" 국가보안법을 "천천히"라는 한마디로 온전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 노무현이다. 그 때는 어째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듣기 싫어 그렇게 하루 아침에 맘을 바꿔먹었던 것인가?

 

지난 4년 동안 내내 이모양이다. 조중동 때문에 못해먹겠어요, 야당이 매사 발목 잡아요... 대~한민국에 야당이 한나라당 하나냐? 민주노동당은 뭐 재야냐? 여소야대 때문에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과거 3당 야합하면서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을 만들었을 때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민주적 정치구조를 인위적으로 깨니 어쩌니 하면서 거품 물었던 것이 누구였던가? 거기서 "이의 있습니다"하고 이를 악문채 주먹 불끈 쥔 손을 치켜들었던 자가 누구였나? 그랬던 사람이 이제와서 "여소야대"때문에 암 것도 못해먹겠어요, 이러면서 징징거리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읍소정치로 일관하려는지. 정작 울어야 할 사람들은 닭장차를 동원한 원봉으로 울지도 못하게 막으면서 저 혼자 이렇게 감성에 호소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주제에 뭐가 더 필요한 걸까? 정말 뭘 더 가져야 뭔가를 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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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16:16 2006/12/0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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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작 울어야 할 사람들은 닭장차를 동원한 원봉으로 울지도 못하게 막으면서 저 혼자 이렇게 감성에 호소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주제에' 라는 말씀 완전 공감합니다!!! 여대야소일 땐 뭐하다가 이제와서...

  2. 딴소리: 어쩜 그 길 한복판에서 딱 마주칠 수가 있대요 @.@

  3. 행인님..안습의 정확한 뜻이 뭐예요? 저희 남편 직장의 모든 통장이 남편 명의인데 인터넷 뱅킹을 신청하다보니 우리집 생활비 통장도 거기 한데 묶여서 봤대요. 그러면서 '안습'이라던데...뭐 안쓰럽다는 그런 뜻인가요?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아서....OTL도 사무실 후배한테서 며칠 전에 그 뜻을 들었어요. 주변에 물어볼 데가 없어서....

  4. rmlist / '안구(眼球)에 습기(濕氣)차다'를 줄여 안습인거죠.
    짐작하시는 바 대로 안쓰럽다는 뜻과 비슷한겁니다.
    강조형으로 '안구에서 폭포가 흐른다'의 안폭이나 '안구에 쓰나미가 몰려온다'의 안쓰가 있습니다.

  5.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OTL 은 정확한 뜻이 뭔가요? 제 후배 말로는 '내가 너에게 무릎을 꿇는다'--> 뭐 두손 두 발 다들었다 뭐 그런 뜻이라고 하던데 인터넷 상의 글들을 보다보면 문맥이 잘 안통하더라구요.

  6. 에밀리오/ 글게 말여요...

    정양/ 나도 딴소리 : 그러게...@_@

    알엠/ 앗! 저 대신 taidje님이 답변을! 감사함돠 ^^ 안구에 습기차다를 줄인 말인데요, 애들은 여기다가 접두사 "캐"를 붙이기도 합니다. "캐안습"이다... 흔히 욕에 붙는 접두사 "개"를 강하게 발음한 건데, 무진장, 엄청, 뭐 이런 뜻 대용이기도 하구요...

    OTL은 해부학적으로 문자를 바라봐야 합니다. ^^;;; O는 머리, T는 가슴, 배 부분과 팔, L은 엉덩이와 다리... 즉, OTL은 '좌절'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로서 팔을 짚고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는 자세를 나타내죠.

    http://blog.naver.com/otl_man

    여길 가보시면 쉽게 아실 수 있을 듯... ^^

  7. 와~ 친절하신 설명. 너무나 감사~~

  8. 별말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