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준비하시나여?

외교통상부의 입장에서는 말이지, 아마도 외국주재 어느 대사관이나 영사관으로 긴급한 전화가 와서 "지금 여기가 어딘데 누가 납치당했어요"라던가, 또는 "폭탄이 터졌는데 한국인 몇 명이 다쳤어요"라는 살떨리는 목소리를 듣게되는 일이 없었으면 싶을 거다. 사실 그건 외통부 외국 주재원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사전예방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던 외통부는 결국 여권법을 개정해서 위험지역으로 선포된 국가로 여행을 제한하는 법률을 올해 1월에 통과시킨 바가 있다. 여권법에 신설된 제9조의2 제1항은 이렇게 되어 있다.

 

외교통상부장관은 천재지변, 전쟁, 내란, 폭동, 테러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해외 위난상황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정 해외국가 또는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하여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 및 체류를 금지할 수 있다. 다만, 영주, 취재, 보도, 긴급한 인도적 사유, 공무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목적으로 하는 여행으로서 외교통상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여권의 사용과 방문 및 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

 

법률에 따른 이 제한을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맞게 된다. 많이 아플 거다. 이달 말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여권법의 규정이 장래 어떤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다른 생각이 있다. 전 세계에, "천재지변, 전쟁, 내란, 폭동, 테러 등"의 위험이 상존하지 않는 지역이 있나?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 여긴 대통령령에 따라 외교통상부장관이 방문이나 체류를 중지시키는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언제나 테러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곳인데. 파키스탄은? 지금 난리가 아니더라. 그럼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인질극이 벌어지는 그 기간 동안에는 파키스탄은 방문할 수 없다는 이야기?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은 영영 못가보겠네? 이스라엘은? 예배당 다니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가고파도 갈 수가 있겠나? 독립다큐멘터리 작가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상을 찍어오고 싶은데, 덜컥 방문제한지역이 되어버리면? 외교통상부장관에게 방문허가를 받아야 하나? 허가받는 동안 꼭 찍어야 할 사람이 죽거나 찍어야할 건물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아 가루가 되어버리면?

 

글쎄... 외통부의 이러한 방침이 적절한 것인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할 듯 한데, 다만 시급한 것은 꼭 이런 식으로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태로 나타날 사안들이 아니라는 거다.

 

외려 진짜 웃기는 일들은 이런 거다. 중국 여행가는 사람들 중에 안산에 주민등록 있는 분들, 앞으로 외통부에 탈북자가 아니라는 증명서라도 받아가지고 가야할 판이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지역코드 25번인 사람들 이야기다. 탈북자가 많이 있다고 알려진 안산지역 주민번호 코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이러저러한 피해를 받고 있단다.

 

중국, 보면 볼수록 대단한 나라인 것이 중국 내에서 돌아다니는 한국 사람들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고 가관인데, 게다가 한국 주민등록번호의 지역코드까지 확인하고서 여행제한을 하고 있다. 한국은? 그저 알아서 조심하시는 수밖에 없겠다.

 

해외여행이 이젠 일상생활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세상이라고 하지만, 뭐 그것도 돈 있는 사람들 이야기지만서도,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내국인 보호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기껏 해봐야 여행지 제한하는 일일 뿐이고 정작 자국국민들의 개인정보 키워드에 대해선 보호대책조차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외통부의 여행제한목적 여권법 개정이 삐딱하게 보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위난에 빠진 여행객들의 전화를 받고싶지 않아서 아예 여행 자체를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닌지? 그 전에 외국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여행객들에게 제대로 조치나 해주고선 이런 일이 생겼다면 모르겠는데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나저나 진짜 내 주민등록번호가 중국에서 돌아다니는데, 이거에 대해선 영 대책을 세우지 않을 심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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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1 08:41 2007/07/1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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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보기엔 대한민국도 상당히 위험한 나라같군요...

  2. 아니여?

  3. 하늘아이/ 이렇게 위험한 나라도 별로 없죠. 미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없는 나라만큼 위험한 나라가 또 있을까요.

    리우스/ 맞아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