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골목길은 아주 다양한 추억의 회로였다. 이 길로 가면 지름길, 무서운 개를 피하기 위해선 저 길로, 요 골목에는 친구네 집, 조 골목에는 맛있는 떡볶이 가게... 어느 골목길 안쪽에 살던 얼굴 희던 여자아이는 동네 꼬마들의 관심사항이기도 했다. "너 그 애 좋아하지?"라고 물었을 때, 기억으로는 한 명도 그걸 인정한 넘이 없었지만, 그 골목길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던 넘들도 그 골목길로 드나드는 현상도 생겼었다. 그걸 어찌 아냐고? 당연히 행인도 그 골목길로 슬금슬금 돌아다녔으니까.
가끔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싶거나 빨래가 밀렸을 때 방문하는 같이 일하는 연구원들의 자취방을 가다보면 골목길을 돌아다니게 된다. 층층이 불이 켜진 아파트단지들 뒤로 돌아 다닥 다닥 붙은 연립주택들을 돌아나가야 그 집에 당도한다. 가다보면 골목길 귀퉁이에 평상을 내놓은 구멍가게에는 동네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좁아터진 골목길이지만 애들이 공도 찬다. 지난번에는 추억의 "오징어가이상"을 하는 아이들도 봤다. 가끔 비석치기도 한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을까?
어두운 골목길에 어떤 여인이 앞서 가면 어떻게 해야할지 요즘도 망설여진다. 뒤에서 뚜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면 불안해할텐데, 그렇다고 휙 앞질러 가면 깜짝 놀랄 수도 있고. 그렇게 가다가 방향이 바뀔만한 골목길이 있으면 잽싸게 다른 길을 택한다. 왠지 그래야 서로 마음이 놓일 것 같으니까. 이래 저래 골목길이라는 이 좁은 통로는 그래서인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 동네에 재개발 현수막들이 주렁주렁 걸렸다. 아마도 거의 동네 전체를 다 뒤집는 일대 공사가 벌어질 모양이다. 예쁜 단층집도 많이 있고, 멀쩡한 빌라도 제법 있는데 이걸 다 뒤집고 나면 거긴 뭐가 들어설라나. 당연히 "이 뻔한 세상"이나 "뾰루지오"같은 아파트들이 죽죽 들어서겠지. 아니면 초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서려나...
골목길은 다 없어지겠지. 발정난 수컷의 그것같이 위로 위로 솟아오른 대형 건물들 옆으로 큰 길이 들어서고, 자동차가 다니고, 대형마켓이 들어서고, 어쩌면 멀티플렉스가 들어설지도 모르겠다. 공을 차고 비석치기를 하고 오징어가이상을 하던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 어느 귀퉁이에 마련될 놀이터에서 골목길에서 놀던 놀이를 할까?
그리움이 남는 곳이라고 조용필이 노래하던 서울에서, 골목길에 얽힌 추억은 아마 다음세대부터 사라질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바로 자기 집 현관으로 들어설 수 있는 편리함과 맞바꾼 골목길의 추억. 글쎄, 그게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와..저도 골목길 보면 요즘 이런 안타까운 생각 많이 하는데...그나저나 정말 "오징어가이상"이나 비석치기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단 말예요?
나도 어릴때 막 하고그랬는데요... 나이먹기, 골목축구, 술래잡기 등등...
근데 편리함이 가져간 것은 단순히 추억만이 아니지요... 온갖 파괴와 소외 등 여러가지가 있겠죠..
케산/세르쥬// 그러게요. 애들 그거 하는 거 보니까 막 하고싶어질 정도였다니까요. ㅎㅎ 정말 궁금한 것은 걔들이 어디서 그런 놀이를 배웠을까 하는 거에요. 요샌 학교나 유치원에서 혹시 가르쳐 줄까요?
하늘아이/ 그렇죠. 그 파괴와 소외 속에서 같이 추억을 공유했던 동무들은 뿔뿔이 흩어졌죠. 그런데 추억거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닌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