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면제국의 위상
미국에 비자 없이 가게 될 경우 미국비자발급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의 약 70%가까이가 줄어들 수도 있다. 미국 비자 발급받는데 들어가는 돈만 한 해 약 570억 정도가 된다는데 약 400억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미국 비자 발급받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미 대사관 담벼락 옆에 붙어 서 있어야 할 사람들의 70%가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이 빌어먹을 나라의 관료들은 남의 나라 대사관 담벼락 밑에서 땡볕이나 폭우를 피할 길도 없이 서 있는 국민을 대신에 미 대사관에 항의 한 번 한 적이 없고, 그나마 그 담벼락에 벤치나 차양이 설치된 것도 몇 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대사관을 지켜준답시고 새카만 전경들을 바글바글하게 배치시켜놓고서는 집시법상 그 앞에서는 시위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비자면제국이 되려면 비자발급거부율이 3% 이하가 되어야 한다. 조건이 많이(?) 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국민의 미국비자발급거부율은 3%가 넘는다. 미국이 이처럼 비자발급에 강력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그 위명을 떨치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 무비자를 이용해 대량으로 미국에 들어와 자리잡을까봐 이를 막고 있다는 거다.
실제 미국에 의해 비자면제국으로 인정되고 있는 나라들 대부분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이다. 유럽 각국과 일본 등 현재 30개국이 되지 않는 나라들만이 미국 비자면제국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사람들은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자기들의 소득내역까지 미 대사관에 신고해야 한다. 미국에 틀어박히지 않아도 한국에서 먹고 살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미국 내에서 비자면제국 요건을 대폭 완화해야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비자발급거부율 3%는 너무 가혹하니 10%로 해야한다는 주장도 미국 내에서 있어왔다. 그러나 좀처럼 이 기준은 완화되지 않았고, 911 테러 등을 겪은 후에는 테러의 위협을 방지한다는 미명으로 그 기준이 적절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을 비자면제국으로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들이 계속 전해진다. 미 의회에는 한국 및 동유럽 국가들을 대상으로 비자면제국 혜택을 부여하자는 법안이 올라와 있다. 한국 정부는 연일 한미 FTA체결로 비자면제가 될 수 있다고 떠든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게 정말 희망적인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한국 정부가 떠드는 한미 FTA 체결과 미국비자면제국의 관계. 한미 FTA체결 되면 갑자기 미국 비자발급거부율이 3% 이하로 떨어진다는 이야길까? 아니면 한미 FTA 협상 내용 중에 무비자입국에 관한 장을 따로 마련했다는 이야길까? 원천적으로 전혀 관계 없는 사항을 마치 처음부터 당연전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한국정부의 낯짝두께는 도대체 얼마나 두꺼운 것일까?
미국 비자면제국이 되기 위해서 앞으로는 전자여권, 더 엄격하게 말하면 생체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미국 의회에 계류 중인 법안 역시 이 부분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생체여권을 발급하고 그 정보를 미국과 공유할 수 있어야 비자면제국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방침을 충실히 수용하여 허겁지겁 생체여권을 도입하고자 한다. 벌써 몇 년째 이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금명간 그 실체가 드러날 판이다.
미국 비자면제국이 되는 것 자체는 반대할 일이 아니다. 누구든 어디나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대 원칙이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주장하듯 미국 비자면제국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하겠다는 자세가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미국행 여행수단에 올라타기 위해 내 생체정보를 사전에 국제적으로 공유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한다는 것. 이걸 강요한다. 이건 전기철조망으로 이동공간을 폐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전기철조망이 생체여권으로 바뀐 것 뿐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이유들을 들어가며 미국 비자면제국이 된다는 것을 선전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만큼 아직까지도 이 사회가 쉽고 편하게 미국에 갈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정부의 업적이 될 수 있는 사회임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국제사회에 대한 당당함이 아니라 세계의 패권국가가 뭔가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써 안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광복절날 시청앞 광장에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위대한 아메리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상에서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어이 없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한계를 자신들의 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부의 음흉함이다. 한국만큼이나 미국대사관 담벼락에 수많은 사람들이 붙어 있었던 중국에서는, 중국 정부가 미국대사관에 대해 "당신들은 우리의 인민을 땡볕에 세워 놓을 권리가 없다"며 강력히 항의한 바가 있었고, 이에 뜨끔한 미국대사관측이 비자발급을 위해 찾아온 중국 인민들에게 각종 편의시설을 제공하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그런 일조차 한 적이 없는 한국정부는 그저 미국의 은사가 내리기를 간구한다. 한미 FTA의 그 엄청난 폐해를 미국 비자면제국이 된다는 것으로 은폐하려 하고, 전 국민의 생체정보를 세계 각국에서 이용하도록 하면서도 그것을 미국 비자면제국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수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미국 비자면제국이 될 수 있다면 한국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입장은 사실 '국민'된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쪽팔린 일이다.
이 눈물나는 노력으로 인해서 한국도 조만간 미국 비자면제국이 될 모양이다. 그래도 행인은 미국에 갈 수가 없다. 생체여권을 만들 생각도 없고, 미국 출입국심사대에서 내 지문을 찍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산오리도 망할 놈의 미국에 가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요..ㅎㅎ
개념없는 정부 같아요...
언제쯤 제 정신으로 돌아올런지^^
산오리/ 행인은 미국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닙니다. ㅎㅎ
토토/ 정부가 제정신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은 정부라는 것이 생긴 이후 엄청나게 많았지만, 그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제정신으로 돌아온 정부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ㅎㅎ
대체로 토욜아침에 그 기사보고선 '완전 이거 미친거 아닌가//' 생각했더랬죠....
어쨌든 저도 뭐 별로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생체여권따위를 만들라하면 더욱 가고싶은 마음이 없어지겠군요..
일 때문에 그곳에 비자 받으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을...이렇게 취급해도 되나, 싶어서 한없이 피곤하던 장면들...
한국정부가 한번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니 참 한심하네요
비자면제는 바라지도 않지만, 어떤 절박한 이유때문에 거기서 그렇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부터 사람대접을 받도록 챙겼으면 합니다
미국 비자 받으러 갔다가 굴욕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더럽고 치사해서 안 가고 말지... 쩝-
저도 광복절에 성조기 흔드는 사람들 봤는데 눈으로 보고도 안 믿기더라고요. 태극기 흔드는 것도 비호감이지만 성조기는 놀랍기까지 하더라는 ㅋ
하늘아이/ 부시의 립서비스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그런 일 있을 때마다 삽질하는 언론을 보면 기도 차지 않구요.
나루/ 최소한 그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싶은데 영 가망이 없더만요. "당신들은 우리 인민을 땡볕에 세워놓을 권리가 없다" 이 발언을 하기에는 아직 한국이 약소국일까요... 찝찝하네요.
당고/ 가끔은 제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때가 있습니다. 같잖은 비자를 받기 위해 굴욕을 당해야 한다거나 광복절에 성조기 흔드는 사람들을 볼 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