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세식의 추억

요 전번 글을 올렸더니 정작 하고잡았던 이야기에 대한 댓글은 거의 없고 변에 관련된 사항에들만 관심을 쏟으셔서 아예 이번엔 퍼세식에 대한 글루다가... ㅋ

 

예전 시골 뒷간이야 뭐 뻔히들 아시겠지만 구덩이 파놓고 엄청 큰 독이나 드럼통 묻은 다음 "쪼그려쏴"할만한 공간만 널판지로 발판을 양쪽에 하나씩 놓은 것이 다였다. 옆에는 장작때고 나온 재를 놓아두는 공간이 있었고, 대충 사방 막고 지붕 얹은 다음 들락거리는 문짝엔 거적때기 하나 걸쳐놓으면 뒷간으로 끝.

 

남의 집 가서 똥싸고 왔다고 욕들어먹던 시절에 그 뒷간 쪼그려쏴 발판 앞에는 한줌정도 굵기의 쇠막대기나 나무기둥이 하나씩 박혀 있더랬다. 그 용도가 뭐냐 하면 끝지식 표현에 따를 때 '과둔성대장증후군'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장시간 배변활동 중 오금이 저리고 다리에 쥐가 오르려 할 때 그 기둥을 잡고 힘을 쓰시라고 박아놓은 거였더랬다.

 

시골은 무진장 추웠더랬다. 한 겨울 영하 20도는 기본이고 심할 때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수은주에 어른들도 덜덜 떨기 일쑤였던 그 때, 뒷간에는 항상 길다란 쇠막대기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이 쇠막대기의 용도는 이렇다. 겨울철 혹한에 응가를 하게 되면 이게 쌓이는 족족 금새 얼어 붙는다. 여름철이라면 당연히 용해되어 똥과 오줌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어 출렁거리겠지만 겨울에는 이렇게 얼어붙은 응가들이 점점 그 높이를 높여가며 쪼그려쏴 발판 까지 올라오게 된다.

 

소위 말하는 "똥탑"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묘한 자연의 조화라 할 수 있겠다. 이걸 그냥 두면 쪼그려쏴 자세에서 똥탑의 날카로운 첨탑부가 항문 등 주요 신체기관에 접촉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 바로 그 쇠막대기를 이용해서 "똥탑"을 부셔주면 되겠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 아버지던가? 암튼 그런 격언이 적용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간혹 힘 좋은 소년배들이 이 똥탑을 오줌발로 무너뜨리는 차력쑈를 보이기도 했더랬다.

 

어떤 집에서는 뒷간 그 냄세 가득한 똥통 속에다가 굵은 대나무 통을 박아두기도 했다. 대나무 통은 위 아래로 마디 위쪽을 잘라 각 마디를 막고 있는 얇은 막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노하우다. 이렇게 잘라 넣어둔 대나무 통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맑은 액체가 고이게 되는데, 무지한 중생들은 이걸 똥물이라고 하나 실은 이게 보약 중의 보약이다. 동네 양아치들에게 심하게 두드려 맞거나 지나가는 차량과 신체가 상당한 강도로 충돌해서 골병이 들었을 경우, 또는 어디서 떨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어서 속으로 내상을 입었을 때, 이럴 때 그 물을 쭈욱 한 사발씩 장복하면 바로 쾌차한다는 거 아닌가? 행인은 아직 그렇게 심하게 골병들어본 일이 없어 복용한 바가 없지만 앞으로 그런 경우가 닥치면... 기냥 병원 갈란다...

 

아무튼 이렇게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곳이 바로 우리네 뒷간, 그 옛날의 퍼세식 화장실이었다.

 

언젠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초등학교 저학년때쯤으로 기억되지만, 아무튼 그 때 낚시라는 것을 첨 해봤다. 그것도 다 뛰어난 동네 친구들 덕분이었다. 낚시라고 해봐야 얇은 대나무나 탄력이 있는 나뭇가지 끝에 실을 매달고 그 실 끝에 바늘을 꿴 다음 그 바늘에 미끼를 끼워서 피래미나 '중트리' 혹은 '뚝지' 뭐 이런 것들을 잡는 거였다. 우리 촌에서 부르는 물고기 이름이니 암튼 뭐 그런 것들이 있나보다 하시면 된다. 어쩔 때는 눈 먼 붕어가 잡히기도 하는데, 이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일이고.

 

낚시밥으로 최고인 것은 역시 뭐니뭐니 해도 구더기다. 구더기를 잡는데 가장 좋은 곳은 두엄더미다. 두엄더미를 슬쩍 들추면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구더기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암튼 그 날도 두엄더미를 들추면서 물고기가 좋아할만한 기름기 잘잘 흐르는 구더기를 색출하고 있었더랬다.

 

동네에서 엉뚱한 짓을 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만한 넘이 그날도 어김없이 같이 낚시를 가겠다고 설레발이를 치고 있었다. 두엄더미에서 그럴싸한 것들을 찾고 있는데, 이넘이 영 성에 차지 않는가보다. 계속해서 투덜거리며 큰 것이 없다고 궁시렁 거리더니만 기어코 지는 뒷간에 가서 찾아보겠다고 한다. 가봐야 별 거 없으니까 그냥 여기서 몇 마리 가지고 가자고 했으나 별무소용, 지 혼자 부리나케 뒷간 쪽으로 갔다.

 

마침 두엄더미와 뒷간이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해서 남은 녀석들끼리 우리도 여기서 몇 마리 잡고 뒷간에서 큰 거 몇 마리 줏어가자고 시시덕 거리고 있을 때였다. 뒷간으로 갔던 그넘, 그저 열심히 줏어담고 있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어이쿠" 소리가 나면서 "철퍼덕"하는 진한 효과음까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어라? 이녀석 똥깐에 빠졌나보다 하고선 후다닥 달려갔더니... 이 멍청한 녀석,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쪼그려쏴 발판 바로 위로 발만 보이는 것이었다. 놀란 어린 녀석들, 쥐고 있던 낚시대고 구더기 통이고 죄다 던져버리고 냉큼 달려들어 이놈을 꺼냈다. 마침 똥통이 거의 다 찬 때였기에 망정이지 두엄만든다고 똥통을 비우기라도 했었더라면 진짜 큰 일 치룰뻔 한 상황이었다.

 

끙끙거리며 이넘을 꺼내 뒷간 밖으로 끌고 나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다음 상황은 더욱 기가 막혔다. 거꾸로 쳐박혔던 넘이 숨을 쉬는 것 같지 않은 거다. 무릎 아래를 빼곤 온통 똥 범벅이었고, 잡으러 들어갔던 구더기들이 온 몸에 꼬물꼬물 기어다니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얼굴은 된통 똥물 천지고...

 

일단 집 마당 함지에 있던 물을 퍼다가 얼굴에 좍좍 부어주긴 했으나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어디서 줏어 들은 거는 있어가지고 누군가 인공호흡을 해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말을 했는데, 아무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인공호흡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아무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설령 알았더라도... 조금 전까지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똥물이 범벅져 있던 그 입에 누가 마우스 투 마우스를 하겠는가...

 

어린 마음에 차마 손을 못대고 발로 배와 옆구리를 문지르면서 어떤 넘이 어른들 불러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할 때, 마음이야 당장 모셔와야겠지만 그랬다가 어떤 불벼락을 맞을지 몰라 선뜻 그러자고 하지도 못하고... 불과 2~3분 상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다들 정신이 나갔다. 그러다가 천만 다행으로 이넘이 콜록거리면서 일어난다. 웨... 콜록거릴 때마다 뭔가 튀어나오는데... 웨...

 

어른들에게 들킬까봐 이녀석이 정신 차리자마자 냇가로 튀었다. 낚시대고 구더기고 벌써 잊어버렸고, 얼른 가서 옷 빨고 몸 씻어야 낮동안 햇볕에 말리지. 그넘이 옷 입은채 물로 들어가 훌러덩 옷을 벗어 빨아 바위 위에 얹을 때까지 우린 아무도 냇가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넘 옷에서 나온 똥물에 묻을까봐. 해는 뜨겁고 낮은 길고 물은 시원하다보니 개구쟁이들이 마냥 기다릴 일은 없고. 결국 모두 홀라당 벗고 뛰어들어 물놀이하다가 피래미 잡는 일은 다 까먹고 그렇게 해떨어지고 나서 집으로들 갔더랬다. 물론 그 다음부터는 잡히지도 않는 낚시질은 제껴두고 족대들고 돌아다녔다.

 

요샌 시골도 집 안에 다 좌변기더라... 학교도 다 양변기고... 똥통에 거꾸로 빠질 일은 없어졌다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뒷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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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08:49 2007/06/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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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보블로그에 '똥 포스팅' 대유행? ㅋㅋ

  2. 헉... 실시간 댓글... 아무래도 유행시켜야할 듯 하네요. ㅎㅎ

  3. 쳇, 변에 관련된 사항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행인님이 아팠던 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라고요(-.-+). 흐흐흐. 그런데 이 글 재밌어요(^.^)- 엇, 또 늦었다. 빨리 나가보아야겠다. 랄랄라-

  4. 어제 그 뒷간에서 똥누고 왔는데, 모기한테 똥꼬나 고추 물릴까봐 모기향 피워서 엉덩이 뒤에 두고 똥 눴다는... 그리 그립지 않은 뒷간이라우..ㅎㅎ

  5. 내친구는.. 거대한 소똥탑..그거이 다 말라서 굳었는줄 알고, 뛰어 올라가다가. 꼭대기 부근이. 겉만 말라서..푹. 하고 한짝 다리가 빠졌는디..
    그 한짝 다리에 똥독이 올라서. 한동안. ㅡ.ㅡ;;;; 왕따신세였다는 ;;;;;
    뭐..
    지금은 두 딸의 아빠가 되어.. 열심히 초딩 선생님으로 잘살고 있소만.. ㅡㅡa
    가끔 술먹다 오른쪽 다리를 긁는다오

  6. 음음... 우리집도 예전엔 퍼세식이었는디.... 요즘은 좌변기...
    특별히 그립다고 할것까진 없지만.... 거름이었던것이 지금은 쓰레기로 인식되는것이 문제가 많다고나 할까나...

  7. 무한한 연습/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ㅎㅎ

    산오리/ 모기향 피워놓고 변 보는 것, 그것도 있었네요. ㅎㅎ

    삼순/ 그거이 아주 동네마다 그런 넘들이 하나씩 있어요. ㅋㅋ

    하늘아이/ 똥을 물로 씻어 버리는 거... 이거 예전에 남의 집에서 볼일 보고 왔다고 혼내시던 어른들 입장에서 본다면 큰일날 일이죠.

  8. 아 싫어ㅠㅠㅠ 괜히 읽었다 우웩

  9. 뎡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