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떨고 있을까?

오래된 드라마 '모래시계'의 대단원이 가까왔을 때, 한 마디의 유행어가 제조되었다. 사형을 앞두고 있었던 조폭 보스가 검사인 친구에게 했던 바로 그 대사. "나, 떨고 있니?"

사실 이 대사가 유행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쳤기 때문일 뿐 별로 큰 이유가 없었다. 끝까지 가오를 잡고 체면을 유지하려는 주먹의 마지막 자존심. 그건 좋게 말하면 오기고 솔직하게 느낀 바대로 말하면 주접이다. 지가 무슨 독립운동하다 잡혔냐?

 

아무튼 이 대사 정말 오래 유행했다. 뻑하면 "나 ,떨고 있니?" 라는 말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다. 이 대사의 변형도 많이 발생했다. 대표적인 변형사례는 이것이다.

"너, 싸고 있니?" - 화장실에서 -

화장실에서 안 싸면 뭐할까?? 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별 얘기할 거 없고.

 

밤길에 돌아다닐 때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양아치들을 만났을 때 떨린다. 내가 떨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분위기상 공포를 느끼면서 떨게 된다. 몇 대 주어 터지고 지갑이라도 털리면 그 때부터는 분노에 떨게 된다. 암튼 떨고 있는 거다. 한맺힌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자 신고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 떨림을 풀고자 하는 거다.

 

날이 추워지게 되면 또 떨림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따땃하게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는 그 떨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는데, 옷이라도 제대로 껴입지 못한 채 찬바람 부는 겨울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추위에 몸이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경우 떨림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모래시계의 조폭같은 경우는 왜 떨었을까?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때문이라면 가장 인간적인(?) 떨림이었을 것이다. 또는 자신의 죄에 대한 회한으로 몸을 떨었다면 성불이 가까와졌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아니면 구원이던가. 그나저나 이야기가 왜 자꾸 이렇게 곁가지로 새나...



그런데 부쩍 요즘들어와서 눈에 띄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름 아니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과 대법원의 대법관들이다. 이 사람들 무척 떨고 있다. 하도 떨다보니 나름대로 떨림에 대한 변명을 하고자 판결문에 근거도 희박한 이야기들을 열거해놓는다. 뭣때문에 떠는가? 다름 아니라 국가보안법 철폐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던지 폐지하던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입법권의 행사범위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왜 사법부가 이렇게 떨고 앉아있나?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바로 모래시계의 조폭처럼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예사형의 위협이 현실로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자신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양산해왔던 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무릎을 꿇고 죄를 빌어야할 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두렵기도 할 것이다.

 

저 높은 법관의 자리에 앉아 재판봉 휘두르면서 위압적인 목소리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에 대한 훈계를 해왔던 그들. 반세기에 걸쳐 국가보안법 하나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해왔던 그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국가보안법이 사실은 아주 아주 안좋은 악법이었다는 사실이 공인되기 직전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자행해왔던 지금까지의 법원판결이 사실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론이 나올 판이 되었다는 거다.

 

이건 쉽게 말해서 이렇다. 예수가 사실은 부활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역사적, 과학적으로 입증되게 될 경우,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하면서 신도들에게 믿음을 요구했던 성직자들은 하루 아침에 거짓말장이로 전락하면서 쪽박을 차고 앉게 되는 거다. 부처가 성불했다는 것이 사실은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면, 그동안 목탁두드리며 불법을 전파했던 스님들은 졸지에 땡초로 전락해버린다. 지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앉아서 재판봉을 휘두르는 고명한 판사 나으리들, 과거에 국가보안법에 따른 간첩만들기, 반국가단체 만들기의 죄과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성경처럼, 코란처럼 받들어 모시던 국가보안법이 철폐될 위기에 처했고, 그 이유가 인권의 침해와 정권의 안정도모 등 법으로서 응당 갖추어야할 원칙적인 내용들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판사님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업적을 송두리채 무너뜨리는 것이며,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사법부의 존치를 위해 공범의 역할을 감내해왔던 모든 판사들에게 "너희들의 죄를 알렸다"라는 추상같은 불호령으로 다가올 것이며, 국민들로 하여금 "판사같지도 않은 것들이 잘난척 하기는"이라는 비아냥을 받기에 충분한 결과가 될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을 소냐?

 

그래서 이 법관나으리들이 지위에 걸맞잖게 지금 떨고 있는 거다. 아주 심히, 부들부들 부들부들... 뭐 그렇게 해서까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고 싶겠지만은 글쎄올시다. 그게 과연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될지 그건 심히 의문이다. 그만 떨고 모든 걸 털기 바란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언능 맞고 마는 것이 속 편하잖겠는가? 에효... 애들도 아니고 왜 그냥 떨고만 앉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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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17:27 2004/09/0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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