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단체의 실상

0.

북한은 반세기 동안 남한의 적이었고, 아무리 평화공존이 논의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현재 역시 북한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남한의 적이다. 적도 그냥 적이 아니다. 도대체 그 실상이 뭔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베일에 싸인 적이다. 155마일 휴전선 이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남한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알 수가 없고, 알아서도 안 된다. 알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알려고 하는 것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1.

원래 감추고 있는 것은 더 궁금한 것이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고이춤에 감추어진 속주머니는 마술상자였다. 손주가 뭐든지 원하기만 하면 할머니는 치마섶을 뒤적거린 후 손주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주었다. 손주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치마를 아이스케키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다보니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해답은 어이없게도 만화책이 알려주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동짜몽"... 일본만화 "도라에몽"의 번역판... 이 만화 동짜몽을 보면서 행인은 할머니가 외계에서 온 동짜몽 종족이며, 할머니의 속곳 주머니는 동짜몽의 배에 달린 요술주머니였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2.

머리가 쬐끔 큰 다음에도 역시 무언가 감추어져 있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없어지지 않는다. 수녀님들이 머리에 쓴 두건. 이걸 두건이라고 불러야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다만은 아무튼 그 수녀님들 머리 위에 얹혀진 그 두건 아래 수녀님들의 헤어스타일은 어떤지 정말 궁금했다. 한번도 수녀님들이 그 두건을 벗어놓고 있는 것을 못봤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다. 그 안에 비구니 스님들처럼 반짝이는 백구머리가 들어 있는지, 아니면 아줌마 파마머리가 들어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러다가 행인은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야 만다. 어린 시절 행인의 이상형 여인네의 헤어스타일은 긴 생머리였다. 그리고 그 헤어스타일을 아마도 전지전능하신 야훼 역시 좋아하시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모든 수녀님의 헤어스타일은 행인의 주관적 판단 하에 모두 다 긴 생머리였다.

 



3.

존재하는 실체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인정할 수 있는데, 그 실체의 생김생김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전혀 알 수 없을 때, 신화는 탄생한다. 금강불괴의 몸을 가진 군신 아킬레스는 발꿈치 근육이 끊어져 죽는다. 진짜루? 안 봤으니 실상을 알 수는 없다.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았던 아킬레스가 죽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죽음이라는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죽을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 믿음은 죽음으로 인해 깨져버린다. 그 믿음이 깨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상 그 믿음을 가졌던 모든 사람들은 닭대가리와 동급의 대우를 받게 된다.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죽음의 이유로 발뒤꿈치 근육이 제기된다. 그리고 그렇다고 믿어버린다. 속편한 일이니까.

 

4.

예수의 가족묘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중동 어느 지역에서 발견했다는 것인데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 그 가족묘가 예수의 가족묘인지도 확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의 시신까지 안치되어있는 가족묘를 인정할 경우 2000년 동안 이어진 부활의 신앙이 종말을 고해야하기 때문이다. 오직 주 예수를 믿음으로써 종말의 그날 육신부활할 것을 믿고 자나깨나 통성기도를 해대던 지구상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사실은 완전한 뻥구라를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경우 과연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차라리 그냥 그렇게 부활을 믿고 사는 것이 낫다. 속편한 일이니까.

 

5.

그렇게 믿고 살면 속이 편하지만 알고나면 속이 괴로운 경우가 있다. 동짜몽의 주머니로만 알고 있었던 할머니의 속곳 주머니가, 사실은 손주놈의 과자값이라도 넣어놓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배추 껍데기를 주어모아야했던 할머니의 고생을 담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행인은 가슴이 아팠다. 수녀가 된 친구가 간만에 만난 자리에 사복차림으로 왔을 때, 곱슬 곱슬 파마가 되어 있는 그녀의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행인은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으로 충격을 받기에는 이미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수녀님들에 대한 선망의 눈초리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물론 이상형이라는 것도 없어지긴 했지만...

 

6.

신화가 이야기거리로만 남아있다면, 그리하여 그 신화가 현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그냥 그건 옛날얘기 정도로 알고 있는 것이 낫다. 아킬레스가 발뒤꿈치 근육이 끊어져 죽었건, 발을 접질려 넘어지다가 돌에 머리를 부딪쳐 뇌진탕으로 죽었는데 그게 와전된 것이건 간에 그냥 재미로 신화를 읽으면 그만이다. 무협지도 읽는 판에 뭔들 못 읽겠는가? 예수가 부활을 했건 살이 썩어 문드러져 뼉다구만 남았건 간에 예수 믿는 신도가 갑자기 등 뒤에 나타나 낮은 목소리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귀에다 바람만 넣지 않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다. 그네들은 그렇게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그만이니까. 그렇다고 행인이 기독교인들에게 교회 좀 그만 다니라고 성질부릴 일도 아니니까.

 

7.

감추려는 자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자들이며, 그 내막을 통해 이익을 누리려는 자들이다. 감추어진 것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자들은 정보가 없는 자들이다. 그 내막을 모르고 있는 자들이며, 감추어진 내막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감추려는 자들은 그러한 실체에 대해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감추어진 것을 보고자 하는 자들은 종내 신화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8.

그러나 감추어 두고 신화를 만들어 좋은 일과 오히려 꺼내고 밝힘으로써 신화를 없애야 좋은 일은 달리 있다. 신화가 이야깃거리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신화로 하여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목을 졸라메는 현상이 벌어진다면, 그 신화는 마땅히 까발려서 산산히 부숴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감추려고 하는 자들의 강력한 힘이 오히려 감추어진 것에 대한 신화를 양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감추고자 하는 대상, 보고자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북한이다. 남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한은 도저히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상하고 신비로운 도깨비 나라 바로 그것이다.

 

9.

얼마전 독일로 돌아간 송두율 교수가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해가며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주체의 전환을 통해 상대를, 즉 북한을 이해할 것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게, 뭘 알아야 내재적 접근이고 나발이고를 할 것 아닌가? 쥐뿔이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역지사지를 하고 주체를 전환할 것인가?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두가지 밖에는 없다. 지극히 북한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특히 김정일정권에 대한 엄청난 비판을 쏟아붓고 있는 그런 자료 하나, 그 반대로 철저하게 북한을 옹호하면서 북한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포용해야할 그 무엇으로 포장하고 있는 그런 자료 하나.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자 하는 남한의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 둘 중의 하나다. 적이냐, 동지냐.

 

10.

그리하여 신화는 탄생하고, 그 신화에 파묻히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그것은 양 극단의 모두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한 쪽은 북한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목숨을 걸고 수용 옹호하는 일을,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악마의 그것으로 묘사하면서 배척하고 파괴하는 일을 한다. 둘 다 신화에 사로잡힌 몸부림이다.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몸부림들을 양산하는 것은 바로 남한의 정부다. 물론 북한에 있어서는 북한의 정부겠지만 이 논의에서는 생략한다. 남한의 정부는 북한에 대해 계속해서 감추고자 한다. 극단의 신화를 발생시키면서까지...

 

11.

신화를 업데이트하는 장치는 다름 아닌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신화는 계속 이어진다. 쭈~욱. 그리고 계속 남한의 구성원들은 싸움질을 하게 된다. 상반된 신화의 개별적 정당성은 목소리의 크기를 통해 확보되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논쟁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애꿎은 애들은 허구헌 날 전과범이 되고 전과범 만들기에 혈안이 된 극우단체는 시시때때로 성조기를 흔들며 광화문을 점거한다. 이 혼란의 와중에 국가보안법은 멀쩡히 살아서 공평한 법 적용이 아니라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친 부당한 법 적용을 남발하고 있다. 이게 무슨 법이 이런 법이 다있나??

 

12.

법원도 신화만들기에 한 몫 한다. 헌법재판소에 이어 드디어 대법원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북한이 50여년 전에 적화통일을 위해 불의의 무력남침을 강행해 민족적 재앙을 일으켰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고작은 수많은 도발과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향후로도 우리가 역사적으로 우월함이 증명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체제를 양보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이념과 요구에 그대로 따라갈 수 없는 이상, 북한이 직·간접 등 온갖 방법으로 우리 체제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고 할 것이다


한총련 간부들에 대한 유죄판결을 확정하면서 대법원이 판결문에 설시한 이유 중 한 문장이다. 이 판결문에 따르자면 법원은 신화의 창조자이자 신화의 소비자라는 이중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은 판례를 법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성문법주의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대륙법계 국가들 안에서조차 법률과 같은 무게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이 제시한 이러한 이유는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이고 조심해야할 존재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신화는 또다시 강화된다.

 

이와 더불어 법원은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신화에서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경험적 사실로서 도출되는 가능성의 승인, 그리고 그 가능성이 가져오는 위협을 방어해야하는 국가적 차원의 의무 내지는 국민적 차원의 의무. 이 스스로를 왜소하게 만드는 두려움의 원천은 북한이 너무나 위험한 존재라는 신화이다. 그리고 이번 판례는 그 신화에서 우리 법원이 단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3.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인 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다 까발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 방송을 그냥 개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남한 방송을 북한이 개방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개방해야하는가라고 묻는 닭성 발언은 삼가하는 것이 좋다. 북한 방송에서 허구헌 날 흘러나오는 보천보 전자음악단(맞나?)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 줄줄 흘리면서 위원장님과 수령님을 찬양할 사람, 행인이 보기에 남한에 몇 없다. 북한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서 삶의 희열을 느낄 그럴 사람도 별로 없다. 오히려 북한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은 깨지게 될 것이다. 뭐가 두려운가? 지금이 60년대처럼 남한이 북한에 대해 경제적으로 하위에 있는가,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는가? 왜, 무엇이 두려워서 자꾸 감추려고 하고 알려고 하는 자들을 탄압하는가? 더 나가 왜 그렇게 함으로써 신화를 생산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가? 쓸데없이...

 

14.

그리하여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하는 반국가단체는 국가보안법을 찬양하는 자들이다. 북한이 그토록 위협적이고 위험한 집단이라고 계속해서 북한을 추켜 세우는 짓을 국가보안법 찬양자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반국가단체는 국가보안법을 없애면 국가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희한한 뇌구조를 가진 공주병 환자집단의 사람들, 이걸 잘한다고 추임새를 넣으면서 고무하는 찌라시 생산업 종사자들, 여기에 더해 신화창조의 기치 높이 들고 국가보안법 만세를 외치고 있는 헌법재판관과 대법관들. 바로 이들이 반국가단체 조직원들이며, 바로 이들이 소속된 그 집단이 반국가단체이다. 두렵냐? 뭐가 두렵냐? 대한민국 국군을 그렇게 못 믿고 대한민국 국민을 그렇게 못 믿는 이 인간들이 믿고 있는 것은 도대체 뭘까?

 

0-0.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국가보안법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다. 알고 있지 마라. 다친다. 역시 국가보안법의 목소리다. 이미 사문화된 법률이라고 떠들고 있는 어떤 넋나간 국회의원은 지금 이 시간에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위반자가 되고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으며, 이 사람들로 인해 가슴아파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서 신화는 이어지고 그 신화의 이면에서 이들은 자신의 권력을 향유한다. 이들에게 국가안보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상품일 뿐이지 국민을 위한 가치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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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15:49 2004/09/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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