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소독차...

소독차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 하나...

소위 뚝방이라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뚝방이라는 것은 개천변을 끼고 형성된 판자촌을 이야기하는데 그냥 개천 둑 위를 뚝방이라고 하기도 하나보다. 암튼 이 뚝방의 특징은 판자촌 들어선 지대가 둑 너머 개천의 바닥보다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만 오면 물난리로 온통 난장판이 된다.

 

전염병은 무서운 것이다. 게다가 하천을 끼고 있다보니 모기떼가 또 극성이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소독차가 돌아다닌다. 어릴 때는 그게 소독차인지도 몰랐다. 기냥 뽀얗고 약간은 달뜬 냄새가 나는 그런 연기가 신기해서 마구 쫓아다니던 그런 시절이었다.



행인도 소독차가 꽁무니로 연기를 뿜으며 그 묘한 소음을 내며 지나가면 바로 뛰쳐나가 소독차를 쫓아갔다. 연기를 쫓던 아이들이 순간 연기 속으로 사라지고,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은 차가 저 멀리 떠나가면 마냥 재밌다는 듯이 웃고 떠들며 까르륵 까르륵 거리기 일수였다. 뭐 간혹가다가 둑방 언저리에서 굴러 떨어진 넘, 담벼락에 머리를 찧고 고추장 쏟아놓는 넘, 갑자기 연기와 함께 사라져서 어리둥절 하고 있다보면 웅덩이에서 기어나오는 넘 등 가지가지 백출하는 웃음거리가 또 밤새 집에서 떠들 이야기거리가 된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비온 뒤끝이라 동네가 온통 진흙창이었는데, 그 진흙길 위로 소독차가 지나갔다. 부아아아아아앙~~하는 소독차 소리에 약속이나 한듯이 애들이 죄다 몰려 나왔다. 행인도 물론 뛰어 나갔다. 우와~ 하고 쫓아가는데, 연기가 약해지더니 차가 서버렸다. 연기를 뿜어내던 연통이 칠순 할배 해수병 앓듯이 쿨럭쿨럭하는 기침을 하는 것 같았다. 아자씨 나오고... 아, 참 당시 이 소독차 삼륜차였다. 음... 추억의 삼륜차...

 

아자씨 짜증난다는 듯이 "이넘들아 저리가!!" 하고 애들을 쫓아내고는 연통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주물럭 거리더니 운전석에 있던 아자씨와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다시 차를 출발시켰고, 이제나 저제나 꽁무니에서 연기가 풀풀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던 아이들은 다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넘의 차가 연기는 안 쏟고 기냥 질질 기어간다. 쫓아가고 쫓아가도 계속 그렇게 기냥 갈 뿐이다.

 

애들이 화났다. "아자씨, 연기 안뿜어여?"하는 넘, "고장났데요, 고장났데요~!" 하면서 놀리는 넘, 겁도 없이 소독차 바로 뒤까지 쫓아가서 연기나오는 통을 손으로 퉁퉁 두드리는 넘... 아, 그러고 보니 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 뇬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음 보고싶은 내 동무들...

 

 그러다가 이넘의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쫓아가던 애들 정신 없이 쫓아가고, 아자씨 몸을 삐죽 내밀고 뭔가 하더니 부아아아아아아~앙~! 소리가 나며 다시 연기가 확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야~~~ 우와~~~ 하면서 애들도 신이 나서 뛰고...

 

그런데 갑자기 정확한 그 순간을 포착하지는 못했는데, 연기가 싹 사라지면서 연기 나오던 구멍에서 불이 솟구치고 있었다. 거대한 토치램프처럼... 아니 화염방사기처럼...

 

갑자기 차가 멈춰 서고 아저씨 둘이 차 안에서 튀어 나오고... 판자촌 여기 저기서 물난리 뒷수습하던 할배 할매 아자씨 아줌씨들 다 몰려 오고... 튀어나온 아자씨들 "물 ~! 물~~!! "하고 다급하게 소리치고... 물이 부어지고 사람들이 소릴 지르고... 아비규환이었다. 애들 중 몇명은 그 진흙바닥에 주저앉아 곡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애들 중 상당 수가 벌써 집으로 갔는지 사라져버린 후였다.

 

울고 있던 애들은... 시커먼 검댕에 완전히 그을려 있었고, 옷도 일부 탄 것처럼 보였다. 통구이가 될 뻔 했던 거다... 과열... 아마 과열이 되었었나보다. 행인... 순간 자신의 몸을 돌아본 결과 아... 검댕이가 어찌나 멀리 날랐는지 행인 역시 시커먼스가 되어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물을 퍼다부으면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진흙으로 옷이 범벅이 되어 있었고...

 

행인이 죽을 뻔한 지도 모르시면서 울 외할머니 옷버리고 왔다고 어찌나 뭐라고 하시는지...

아무튼 그 이후 소독차 뒤에 정신없이 따라 다니는 짓은 삼가했다. 그런데 또 그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소독차 뒤꽁무니에서 화염방사기처럼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본 적이 없다...(건물에서 사람이 휴대하고 소독약 뿌리는 기계가 화염방사기로 변신하는 것은 본 적이 있다)

 

담번에 소독차 보면 함 뒤쫓아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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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7 21:22 2004/08/2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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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독차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였군요. 나만의 비밀은 아닌가 봅니다. 행인님의 글을 보면서 늘 누추한 저는 배우는 바가 크답니다. 내공인 부족한 제가 행인님 글을 보면서 추억을 갈구하고 있답니다. 늘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 "칠순 할배 해수병 앓듯이"같은 비유가 나올 땐 '얼씨구, 좋다'라는 장단이라도 넣어야할 듯.^^ 그리고 불꽃이 나와서 위험하기도 했지만, 차가 선 것도 모르고 뒤 따라가던 친구가 연기 나오는 통(끝이 뽀죡함)에 찔려 다치는 일도 있었죠. 생각보다 위험했어요. 근데 진짜 재미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