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공화국 다큐멘터리 제전

춤추는 대수사선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가볍지만 또 나름대로 일본 경찰의 애환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그럭 저럭 재미라는 것이 있어서 1편 2편을 다 보았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할 것이 없고, 얼마 전에 본 이 춤추는 대수사선의 2편 한 장면이 새록 새록 생각나는 요즘이다.

 

기업 간부들에 대한 엽기적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중앙 경찰청에서 해당 지역 경찰서 내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다. 그리고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던 어떤 시스템을 가동한다. 그 시스템은 다름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를 구석구석 들여다볼수 있는 CCTV 관제센터... 수십개의 모니터에서 수백개의 섹터로 나뉘어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화면에는 시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온갖 군상들의 백행백태가 속속들이 나타난다. 담당을 맡게 된 경찰이 사생활 침해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런 이의제기는 이야기거리도 되지 못한다.

 

하여튼 그 화면에 나타나는 온갖 장면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준다. 그리고 중앙관제센터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요원은 그 모습들을 속속들이 지켜본다. 우리 법제에 따르면 완전한 불법이다. 시민들은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영화에서 보여줬던 이 희한한 시스템이 우리 현실에서 나타났다. 강남구라는 곳에서 말이다. 신문이고 방송이고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범죄예방을 위해 무진장 좋은 일이라며 시민의 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찰관계자는 카메라빨을 의식하면서 표정관리에 열심이다. 좋기도 하겠다. 왜 안 좋겠나? 원 풀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중앙통제실이다 ^^;;;




그러면서 경찰은 어떤 통계자료 하나를 내놓았다. 2003년 본격적으로 CCTV를 가동한 이후 강남지역 범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말이다. 자랑 무지하게 하고 싶었을 게다. 얘네들 통계를 보면 이렇다.

 

강남서 관할 범죄 추이

 

여기서 나타난 숫자들은 2002년에 대비해서 확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5대 강력범죄는 전년 대비 37% 줄었고, 강절도는 41% 줄어들었단다. 강도 절도 사건이 무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니 이건 정말 획기적인 범죄 급감이다. 이 대목에서 일단 박수 함 쳐준다. 짝짝짝...

 

그런데 이 통계와 동시에 또 우리는 살펴보아야할 통계가 하나 더 있다. 뭐냐 하면 강남구 말고 대한민국 전체의 강력범죄들의 발생빈도변화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하는 거다. 요거 간단하게 알아보자.

 

2002년도 발생한 전국의 5대 강력범죄는 475,369건이었는데 2003년도에는 497,066건으로 늘었다. 전년보다 4.6% 늘어난 수치다. 강도는 5,906건에서 7,292건으로 23.5% 늘어났으며, 절도는 175,457건에서 187,352건으로 늘어 6.8%의 증가율을 보였다. 강절도 사건을 합쳐서 계산하면 전년대비 7.3%의 범죄증가가 있었다. 근데 뭐가 문제냐고?

 

이건 이렇다. 강남구에서는 강절도 사건이 무려 절반 가까운 수치만큼 줄어들었는데, 오히려 전국의 범죄발생은 늘어났다. 강남구에서 줄어든 사건이 실제적 가치를 가지려면 강남구에서 줄어든 만큼의 범죄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도 전체범죄발생율은 후다닥 올라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가지가 나온다.

 

첫째, 강남구에 설치한 CCTV는 전체범죄감소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둘째, 강남구에서 일어나지 않은 범죄는 다른 지역에서 벌어졌다. 즉, 강남구에서는 범죄발생율이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는 강남구에서 줄어든 만큼의 범죄발생율이 증가했다는 것이다(실제로는 그 이상).

 

결국 강남구 주민들의 안전보장수준은 높아지는 대신 다른 지역 주민들의 안전보장수준은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남주민들에게 그 책임을 돌릴 이유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어차피 범죄의 발생이라는 것은 절대적 또는 상대적 수치로 통계화하는데서 그 의미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경찰은 강남의 범죄발생율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도 왜 전국적인 범죄발생비율의 증가에는 입을 다무는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그건 절대 아니다. 얘네들은 그저 CCTV설치회사와 중앙통제센터 시스템 구축업체의 이익이 중요한 것이지 사실상 안전 어쩌구는 의미가 없다. 이거 설치하는데만 80억 들었단다. 그 80억 누가 다 먹었을까?

 

더 큰 문제는 경찰이 그저 앉아서 사건해결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거다. 얼마전 주섬주섬 이야기 꺼냈다가 된통 뚜드려 맞고 쑥들어간 불심검문 거부자에 대한 처벌, 경찰 총기휴대조건 완화 등의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경찰의 편의주의적 발상이 끝간데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고, 이번 폐쇄회로티브이 중앙통제시스템 구축은 그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얘네들이 편하게 일하려고 하는 통에 결국 시민들은 자기 일상을 그대로 경찰이 관리하는 모니터에 비추어주어야 하고 그 데이터를 보관토록 해야한다. 강남주민들의 다수가 이 시스템 설치를 찬성하였다고 하는데 강남 거리에 강남 주민만 돌아다니냐?

 

암튼 이렇게까지 개인정보에 대한 침해가 일어나는데도 정작 시민들이 "내가 죄 짓지 않으면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이번에 설치된 카메라, 줌기능이 달려 있으며, 180도 회전이 되고 화상인식에 의한 식별이 가능하다.

 

쓰레기 버리러 나온 아줌마의 일상이 계속 녹화되면서 저 아줌마는 항상 몇시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다. 만일 그 아줌마가 제 시간에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휴가 갔나? 어느 아자씨가 항상 술만 퍼먹으면 자기 집 앞에서 드러누워 잔다. 만일 그 아자씨가 그 시간에 드러누워 자고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술을 안먹은 거지 머...

 

죄 지은 거 없으면 아무 문제 없다고? 죄 지을 놈은 알아서 카메라 피해 다닌다. 강남 아닌 딴 동네 가서 사고를 치던지 아니면 카메라의 사각지대 확인한 후에 사고를 치던지. 문제는 진짜 죄 없는 사람들이다. 죄 없는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계속 화면에 잡히고 정보가 축적된다. 끝끝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람들의 데이터가 장기간 축적되고 특정행동에 대한 프로파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행인이 말이다. 강남주민이라고 치고. 맨날 맨날 다니던 길로 다니지 않고 갑자기 빙 돌아서 순간 카메라에서 사라졌단 말이다. 그런데 그 때 마침 그 길 근처의 한 집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증거는 없다. 증인도 없다. 그런데 오직 그 시간에 그 길 근처에서 평소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서 지나가던 행인이 사라졌다.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경찰 윗선에서는 사건 빨리 해결하라고 난리를 친다. 그럼 경찰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당시의 상황을 점검할 것이고, 화상분석으로 행인임이 밝혀진 행인은 평소의 이동경로에 대해 분석당할 것이고, 그리고 그날 하필이면 이 인간이 평소 안하던 짓을 했음이 밝혀지게 된다. 경찰이 어떻게 할 거 같나?

 

행인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 잡을라고 만든게 이 시스템이다. 당연히 용의선상에 행인이 걸려 들었는데, 가만 둘리가 있나? 행인은 스스로 무죄를 증명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이 시스템이다. 공상소설 쓰냐고 할 사람들 여럿 있다. 그런데 이게 공상소설이 아닌 걸 어쩌냐? 감시카메라 촘촘히 박아놓고 있는 곳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인 것을. 1984년이라는 조지오웰의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도 바로 이거다. 평소에 보여야할 곳에서 보이던 놈이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때, 바로 그넘은 관리통제의 범위에서 벗어난 넘이고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넘이다. 이거 어떻게 설명을 해야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강남 주민들이 총출연하는 초호화 다큐멘터리 필름이 공개될 것이다. 어쩌면 수시로 공개될 수도 있다. 거기에서는 술먹고 오바이트 하는 고등학생(집에서 알게 되면 주어 터질거다), 앞집 과부 몰래 만나는 어떤 아자씨(역시 집에서 알게 되면 된통 주어 터질거다), 집에서 자린고비 짓 하면서 오밤중에 룸쌀롱에서 기어나오는 어떤 남자(자식들에게 눈총 꽤 받을 거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음료수 들고 나오면서 계산 안하는 짜바리... 이거 징계 먹을라나? 암튼 이런 인간군상들의 백태가 고스란히 나오게 되면 그 때 강남주민여러분 출연료 달라고 할라나, 우짤라나??

 

이번에 언론이 공개한 CCTV 중앙통제시스템 구조설명에는 행인도 등장한다. 다음 그림을 보라.

사건 해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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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5 18:36 2004/08/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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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잘 봤습니다. 전체보기 하위메뉴가 문제가 있군요. 저도 문제가 있어 해결하였습니다. 블로그 관리에 들어가 스킨을 적용하기를 다시 해보세요 해결되요. 이웃주민으로서 내가 어렵게 안 것을 가르쳐줌..^^

  2. ???? 암 문제도 없는디???

  3. 오호!! 글쿤염... 고맙슴돠~!!!

  4. 오오 이미 행인은 경찰 요주의 대상이군요. 요렇게 맨날 경찰을 갈구니 백만원짜리 벌금이나오죠..

  5. ㅠㅁㅅ/ 맞아요... ㅠㅠ 이미 요주의 대상이랍니다... 그런데 행인이 맨날 갈궈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경찰이 행인을 못살게 해서랍니다. 백만원짜리 벌금이나 때리니 안 갈굴수가 있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