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이제 그만

BBK 수사결과가 발표되니까 온 사방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들린다. 항의방문을 가니 촛불집회를 하니 난리가 아니다.

 

검찰의 발표를 믿을만한 구석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될 놈에게 붙어야 산다는 전형적 정치모리배의 태도가 검찰에게서 보이는 것은 행인만의 느낌은 아닐 거다.

 

이번 BBK사건수사발표의 모습은 떡찰본색 그대로다. 삼성에서 떡값 받고 그 "떡값"을 하는 모습이나, 유력 대권후보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고 차후 정권에서 안정적 뒷배를 만들자는 심뽀나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수사기간 내내 이명박과 김경준의 대질심문 한 번 하지 않은 검찰이 같잖아보이는 거다.

 

하지만, 검찰수사발표 직후 갑작스레 한나라당을 제외한 제 정치세력들이 모두 나서 난리 굿을 벌이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언론에 의하면 정동영-이회창-문국현-권영길이 한 목소리로 검찰을 비난하면서 BBK 수사결과에 항의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외에서, 장내에서 이 문제를 대선정국의 본격적 정쟁의 주제로 삼으려고 일치단결하여 움직이고 있다.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보인다. 검찰청에 항의하러 간다는 격문이 돌고 촛불집회하자는 공지가 뜨고 통탄의 목소리가 인터넷의 바다를 격랑으로 몰고 간다. 왜 이럴까? 이건 정상인가?

 

얼핏 보면 불의에 항거하는 몸짓일 수도 있다. 정치모리배로 전락한 떡찰에 대한 엄중 경고일 수도 있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동의가 되지 않을까?

 

검찰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이명박을 지지하던 하지 않던 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재판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또 내일 새벽이면 미국에서 김경준의 누이 에리카 김이 기자회견을 한단다.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은 BBK 특검법을 발의한단다. 이회창은 '민중대회'를 연단다. 이렇게 문제가 제기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검찰의 수사에 이의표시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거다.

 

촛불을 들고 나가던 검찰청 습격을 하던 그거 하시고 싶은 분들은 하면 된다. 그런데 정작 웃기는 것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마치 이 사안을 민주노동당의 대선전략으로 가져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행인의 판단으로 민주노동당은 이 사안에 대해 적절하게 검찰을 꼬집어주는 성명 하나 발표하면 끝난다. 촛불집회는 정동영 지지세력보고 하라고 하면 되고, 군중동원집회는 이회창더러 하라고 하면 된다. 원내에서 특검법 발의하면 적당히 눈치봐서 동의해주면 된다.

 

그런데 왜 민주노동당이 설레발이 치고 앞으로 튀어 나가자고 주장하나?

 

하긴 성남의 어떤 돌대가리는 지난 탄핵정국때에 지가 제일 먼저 촛불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뛰어 나갔다고 보궐선거 선거찌라시에 자랑스럽게 써 놨더라. 그래서 얻은 것이 뭔가?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던 파병반대 이슈가 드러나기라도 했나?

 

BBK 관련해서 촛불들고 나가자고 선동하는 민주노동당 일부 사람들을 보면서 탄핵정국이 생각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탄핵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은 노무현이라는 반민주세력을 민주세력으로 둔갑시키고 그들의 반개혁적 성향을 묻어준 채 개혁세력이라는 호칭을 공고하게 해준 오류를 범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민주노동당이 촛불들고 거리로 나가 부패세력 처단을 주장하게 되면 그 부패세력과 함께 사회를 말아먹었던 가짜 개혁세력, 즉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어 버린다.

 

오히려 지금 민주노동당은 이명박의 BBK 뿐만 아니라 이들이 활개치도록 자리를 깔아주었던 노무현정부와 그 뒤를 잇고 있는 정동영에게 똑같은 무게로 화살을 날려야 한다. 부패세력과 무능세력을 한꺼번에 일소하자고 외쳐야 하는 거다. 도대체가 내용도 없는 코리아연방 운운할 시간에 왜 현재 집권세력이 무능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고, 촛불들고 이 추운 날 사람들 동원할 시간에 차라리 집권여당의 뻘짓거리가 이명박 같은 희대의 사기꾼이 판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고 공격해야 한다.

 

그런데 할 일은 하지 않고, 부패세력 청산을 위해 촛불을 들고 나가자고? 이런 정신머리로 무슨 집권을 하겠다고... 차라리 촛불 들 손에 횃불을 드는 거다. 손에 손에 훨훨 타는 횃불을 들고 오밤중에 한 대오는 검찰청으로 다른 한 대오는 청와대로 진격하는 거다. 너희 썩은 검찰을 민주노동당이 완전히 뒤집어버리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입닥치고 앉아서 뒷전으로는 검찰 조정하며 떡값하라고 추근거리는 노무현에게 반민주세력의 수괴라는 딱지를 붙여주어야 하는 거다.

 

이제 촛불은 그만 들자. 이건 뭐 임금에게 상소하러 가는 유생들도 아니고, 언제까지 촛불들고 앉아서 우리 말 좀 들어달라고 하소연하고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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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5 19:15 2007/12/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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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김선일 씨 사망한 후부터 촛불을 들지 않기로 맘먹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추모할 꺼리가 있다고 촛불을 드는 것인지...

  2. 가자~! 범여권 단일화~! -_-;;

  3. 새벽길이 김선일씨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김선일씨 사망사건은 국가에서 전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고 판결했다던데, 난 그 판결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떠나서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도무지 이게 '국가'라는 개념이 있고서야 나올법한 소리인지 뭔지 어안이 벙벙할 뿐..ㅠㅠ

    모처럼 기인~ 행인의 포스팅을 끝까지 읽고 속이 후련해 지는 심정, 또한 왜 행인이 만인으로부터 대리만족을 가져오게끔 하는지 그 포스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뻘짓인가?? ㅋ)

  4. 제가 계속 생각해 오던 탄핵정국때의 민주노동당이 저지른 초대박 오류를 행인님의 이 글에서 확인하게 되니 매우 반갑네요~~ 그래도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군요. 아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답답한 게 많아요. 주위에 온통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가자는 사람들뿐이었거든요. 촛불집회에 가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내 말은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죠.

    진짜 이번에도 그딴식의 오류를 또 저지르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네요.

  5. 초 들고 시위하는 거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함.

  6. 안 가길 잘 한건가... 으음... 역시 행인님은 글을 잘 쓰신다는! 이 글 보고 다시 민노당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사회당 지지해 달라는 분들도 계시지만 아직 잘 모르므로...) 귀가 팔랑팔랑 쿨럭;;

  7. 어젯밤 뉴스보다가 촛불든 인간들 보면서, 참으로 초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는데... 민주노동당에도 그런 류의 조류들이 있다니...
    에이, 산오리보다 못한 조류들 같으니라구..

  8. 새벽길/ 저도 비슷해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이상한 구도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촛불집회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고민 많이 했더랬죠. 새만금같은 경우에는 뭇 생명들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촛불을 들었다지만 파병문제가 걸렸던 사안에서 촛불 들고 가거나 탄핵 때 촛불 들고 나갔던 사람들, 아직도 좀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있어요...

    not/ ㅋㅋㅋ 범여권만 단일화해주면 좋을 텐데,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에게까지 또 기어들어가라고 하면 우짠다냐... 에혀...

    멒/ 글쵸. 그 판결 보고 착잡합디다. 원인을 무시한 채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거... 오랜 악습인데 참여정부 역시 마찬가지고, 법원도 변한 게 없군요.

    ScanPlease/ 탄핵 촛불집회가 한참일 때 저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탄핵저지국민행동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 보면서 기가 막혔어요. 그들이 주장한 "친노=민주, 반노=반민주"는 완전한 궤변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때 민주노동당의 옷을 입고 깃발을 든 사람들이 앞장서서 달려가더군요. 그거 보면서 거의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죠. 참여연대 사무실 앞에 쌓여있는 촛불더미며 모금함 보면서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구요.

    그해 연말 국보투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초부터 그런 식의 국보철 운동은 결국 수구세력에게 도움만 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결국 국회앞에 장사진을 치고 삭발이다 단식이다 아주 난리가 났었죠. 그 덕분에 탄핵정국으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만 기사회생했고 국가보안법은 지난 12월 1일로 제정 59주년 생일상을 받아먹었습니다. 완전 개코메디죠. "나 이만큼 열심히 했다"는 식의 운동은 운동을 말아먹고야 만다는 사실을 빨리들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운동"이라는 것은 실상 말 그대로 이념을 달리하는 집단과의 전쟁인데, 이렇게 낭만만 먹고 사는 사춘기 감수성으로 무슨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요...

    말걸기/ 아무래도 국제적 양초제조업자들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해...

    에밀리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셔도 되고 사회당을 지지하셔도 됩니다. 오직 에밀리오님의 굳센 심지 하나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어디든 관계 없다고 봅니다. 물론 김영삼처럼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어쩌구 하다가 고양이꼴 나는 경우는 에밀리오님처럼 현명한 분들에겐 해당되지 않을 거니까요. 언제나 힘찬 에밀리오님 보면서 희망을 가집니다.

    산오리/ ㅠㅠ 감히 저 조류를 산오리님에게 비교하시다니요... 아무튼 초가 아까운 짓들 좀 고만 했으면 좋겠어용...

  9. 집회장서 촛불을 켜면, 그야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되버리곤 하죠. 깃발도 다 내리라고 하고, 쳇. 쉣이에요 쉣.

  10. 박노인/ ㅎㅎ 효순이 미선이 때 교보문고 옆에서 촛불집회하던 당시 "민주노동당 깃발 내려주세요"라고 사회봤던 이가 지금 중앙당 간부에요. 이러니 말 다한 거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