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교육

행인이 다니던 국민학교(초등학교)는 서울에서 속칭 "변두리"로 불리던 곳이었다. 이촌향도의 거대한 엑소더스가 막바지에 달하던 때인지라 서울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어느 한 자락에 자리를 잡았던 사람들이 중심가의 개발로 인해 쫓겨온 곳이 변두리였고, 언젠가 서울 중심으로 진입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일단 정착하던 곳이 이 변두리였다.

 

당시 변두리 목동 뚝방촌에 살던 행인의 집도 뚝방촌의 일대 정비작업에 휩쓸려 졸지에 철거되고 밀려간 곳이 국민학교 다니게 된 그곳이었다. 변두리라고는 하나 처음 이사갔을 때만해도 그곳은 개발된 근대와 근대 이전의 삶이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 나중에 큰 도로가 들어선 곳에 대장간이 있었는데, 그 대장간 앞에 불과 몇 년 후에 실내 수영장이 들어설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처음에 행인이 들어간 학교는 M 국민학교였는데, 주변에 국민학교가 없어서 그 지역 사는 또래 애들이 전부 그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2학년 때는 수업을 3부제로 나누어 시행했는데, 행인의 반 학생 수가 무려 130명을 넘었다. 교실에는 책상 사이에 통로가 없었고, 책상 하나에 3명의 학생이 앉아야 했으며, 교실 뒷편 출입문은 아예 이용할 수조차 없었다.

 

3학년이 되었을 때 주변에 국민학교가 많이 지어지면서 학생들이 분산되었고 행인도 M 국민학교를 떠나 D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학급 인원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옮긴 학교에서 역시 한 반에 70명을 훌쩍 넘는, 말 그대로 "과밀학급"이었다. 게다가 새로 지어진 학교는 전에 있던 학교보다 더 열악한 지역에 설립된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같이 다니던 급우 중에 잘 사는 집 애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억하기로 행인 주변에 자기 방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는 열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물론 번듯한 자기 집에 사는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단칸셋방에 사는 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판자촌에 사는 친구도 있었고, 보육원에서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절간에서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사는 처지는 서로 많은 차이가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가 친구들을 사귀는데 장애가 된 적은 없다. 소소하게 다투고 말썽도 피우고 싸움질도 하고 했지만, 뭐 원래 애들이 다 그런 거고, 그 와중에서도 서로 잘 살고 못 사는 거 가지고 차별하고 따돌리는 일은 없었다.

 

물론 입고 다니는 옷이나 싸가지고 다니는 도시락 반찬,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는 횟수 등을 통해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드러나기는 했다. 그러나 평소에 그런 것에 신경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잘 사는 집 애에게 잘해주는 선생들을 보면서 기분 나쁘기는 했으되,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와 사이가 나빠지지는 않았던 거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없이 사는 친구들을 위해 형편이 좀 나은 집의 부모들은 옷가지도 챙겨주고 도시락도 하나 더 싸주고 그랬다. 그런 친구들과 잘 놀라고 일러주었고, 절대 가난한 친구들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기도 했다.

 

애들은 부쩍부쩍 잘도 큰다. 행인은 예외였지만... ㅜㅜ 아무튼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애들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옷가지였다. 불과 한 두달 사이에 옷이 작아져 버리는 거다. 생각을 해서 좀 여유있는 크기의 옷을 산다고 할지라도 때론 그 배려가 무색하게 애들은 쑥쑥 커버린다.

 

곤란한 것은 보육원이나 판자촌에 사는 조손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옷을 살 돈은 없고, 체육복 같은 것은 또 안 갖춰 입으면 혼이 난다. 이럴 때에 형편이 좀 낫고 형제가 있는 집의 부모님들이 한 역할을 한다. 그 때는 형들이 입던 옷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놔뒀다가 동생들이 물려 입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체육복도 마찬가지. 잘 보관해두었던 체육복을 깨끗하게 빨고 수선하고 해서 아이들의 손에 들려보낸다. 친구 가져다 주라고. 새거나 다름 없는 체육복이다보니 입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고, 받는 친구들도 고맙게 생각했더랬다.

 

오죽하면 보육원에서 다니던 한 친구는 이제 체육복 그만 줬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그 친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건 행인이 어릴 적 주변 어른들은 잘 살고 못 사는 것으로 동무들을 가르고 차별하는 것은 아주 못된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고, 당신들 스스로 서로 아끼고 돕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아침 전철 안에서 불현듯 예전의 일들이 생각난 것은 순전히 신문에 실린 기사 한 꼭지 때문이다. 어느 지역의 "명품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아이가 다닐 학교에 보육원생들이 다니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운동"씩이나 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이 "명품 아파트" 사는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옆에 신설된 초등학교에 자기 자식들을 보내야 되는데, 알고 보니 이 학교에 근처 보육원의 원생들이 무려 "43명"이나 같이 다닌다는 것이었다. 학교 물이 흐려져 교육에 차질이 생길 것을 염려한 이 부모들, 일심동체 일치단결하여 보육원생들을 학교에서 축출하려고 운동을 하고 있단다.

 

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 "결손 가정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낼 수 없다."

 

- "결함이 있는 아이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면 우리 애들이 안 좋은 물이 들게 뻔하다."

 

- "아파트 값이 떨어질 텐데 걱정이다."

 

- "00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입주하는데 동네 학교도 이에 걸맞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마땅하다."

 

- "우리 애들을 그 아이들과 섞어 생활하게 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대세"

 

- "어떻게 문제있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로 통학구 조정을 할 수 있느냐?"

운운...

 

이쯤 되면 엽기다. 애들 교육을 걱정한다면서 하는 짓이 가관이다. 말로는 교육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의 지위를 걱정한다. 애들을 핑계로 아파트 값을 걱정한다. 이 사람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의 장래가 아니라 지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값이고 결국 돈인 거다. 그럴 거면 차라리 돈을 껴안고 살지 왜 애들은 낳았을까?

 

이 부모들, 분기탱천해서 "운동"까지 한답시고 포털사이트에 까페까지 개설했단다. 그 까페에 너도 나도 한 문장씩 올리고 있나본데, 지들 부모가 올린 이 천박한 글들을 보면서 애들이 뭘 배울까? 아,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시는구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럴까?

 

아니면 역쉬 돈 없는 쉑덜은 죽어야 돼, 근본도 모르는 보육원생들이 우리랑 같이 놀려고 그래? 그런 것들은 사회의 물을 흐리는 암적 존재들이얌... 이런 거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이 세상은 돈으로 이루어져 있고 돈이 있으면 뭐든 다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식들에게 좋은 거 가르친다. 이 골은 텅텅 빈 채 "명품 아파트"에만 눈이 먼 닭대가리들이 하는 짓은 어찌 이해를 해보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입으로는 맹모삼천을 흉내내지만 하는 짓은 돈, 돈, 돈 얼쑤 돈이 최고여라는 허황된 굿판이다. 교육을 황폐화하고 자기 자식들을 반교육적 환경으로 내모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보육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의 가슴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건 자기 자식을 위해서였다는 핑계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명품 아파트"에 산다고 명품이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천박하고 저열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명품이 아니다. 슈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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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7 11:16 2007/12/0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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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옛말에 배우고 있는 것들이 더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좀 집값 나간다는 아파트에서는 아줌마들이 다짜고짜 애들 상의 목덜미 쪽을 까 본답니다. 그래서 유명한 상표의 옷을 입히지 않으면 그 아이의 집에 가서 항의한답니다. 집값 떨어진다고요... 그것들은 슈렉(슈렉을 욕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 아니라 쓰레기인 거죠!

  2. 곰탱이/ 그러게요. 어쩌다가 이정도로 가치관이 뒤집어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불과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말이죠. 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존의식과 배려가 더욱 필요한 시대인데, 사람들은 자꾸 거꾸로 가고 있는 거 같아요. 안타깝습니다. 도처에 쓰레기네요.

  3. 저 부모들한테 이 말을 해주고 싶군요.. ㅈㄹ하네..ㅡ.ㅡ;

  4. 정말 ㅈㄹ들하는군 -_-;

  5. 채경★/ 거시기 하지만 ㅈㄹ하네가 정답인듯 해요...

    바리/ 역시 글쳐? 에궁...

  6.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들이니, 사람이 아니군요. 저 종자들은.

  7. 박노인 짱~!!! ^^

  8. 의외로. 이런류의 사람들이. 많더라는. 평소엔 아닌것처럼 보이기도하는데. 자기가 문제와 관련되어지면. 본색이. 싹. 그리고 의외로. 조금 어린 사람들은 그런류의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그 속에 끼고 싶어하더란. 그래서 더 난감하단. ㅠㅠ

  9. 음... 저런 것들은 명품 아파트에 가둬서 아무데도 못가게 해야 해. 전화선 인터넷선 TV케이블 다 끊어버리고 약간의 물과 전기와 가스만 공급하는 거야. 늬이들끼리랑 자알 사알거라이~. 언능 PT독재나 하자. 치.

  10. 후덜덜... 자기 자식만 귀한줄 아는군요... 이런 교육 받고 자란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 될지... 그리고 부가 되물림 될 때 이런 아이들이 만들 세상이라는게.. 끔찍해지는걸요 ㅠ.ㅠ

  11. 요즘은 그냥 아파트만 있는게 아니라 주변에 성곽을 칩니다. 천한 것들은 아파트 이전에 아예 성벽 바깥에서부터 들어오지 말라구요. 덕택에 가로지르면 몇 분이면 갈걸 수십분 걸려서 빙 돌아가곤 합니다. 참 대단들해요.

  12. 박노인/ 그러게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 웃기는 현상을 어찌 치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멒/ ^^ 행인도 "박노인 짱~!!!"에 원츄!

    조지콩/ 그러게요. 말씀하신 부분이 더 사람을 힘들게 하죠. 간혹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혹은 나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구요.

    말걸기/ ㅎㅎㅎ 그러지 말고 교육을 시켜야지. 교육을. 서로 아끼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말야.

    에밀리오/ 그렇죠. 그런 부모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배워 세상에 나올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만들게 될지가 더 두렵죠. 안타깝고 걱정됩니다.

    rausch/ 우리 민법에는 "인접교통권"이라는 것이 있죠. 요즘은 대형 빌딩을 지을 때도 그 빌딩으로 인하여 가로막히는 통행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것이 고려되는데요.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진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아파트의 "성곽"화는 심각한 문제더라구요.

  13. 있는 새끼들이 더해요..

  14. 에고, 슬프다.

  15. pillory/ 그러게 말이에요... 쩝...

    만행/ 저두요. ㅠㅠ